먹거리 받으러 왔다가 복지제도까지···‘그냥드림’이 낮춘 제도의 문턱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사랑나눔푸드마켓 1호점에 있는 그냥드림 코너에서 한 시민이 전시된 물품들을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
90대 노인 A씨는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가 있었지만, 고정 수입이 없어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생활비로 써 온 지 오래였다. 은행과 카드사의 빚 독촉이 이어졌지만 자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자녀 역시 실직한 뒤 고시원에 살며 기초생활보장 급여로 생활하고 있었다.
A씨는 지난 1월 집 근처인 경기 광명시 광명푸드뱅크마켓센터의 ‘그냥드림’ 코너를 찾았다. 복잡한 신청 절차를 거치거나 소득·재산을 증명하지 않아도 먹거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센터 직원은 A씨에게 라면과 즉석밥, 반찬 등이 담긴 꾸러미를 건넨 뒤 안부를 물으며 상담을 권했다. A씨는 상담 과정에서 “너무 괴로워 죽고 싶은 생각도 했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직원은 A씨에게 생필품뿐 아니라 정신건강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A씨는 지방자치단체 복지상담을 거쳐 광명시 마음건강센터의 도움을 받게 됐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그냥드림 사업이 기존 복지제도 밖에 놓여 있던 위기가구를 찾아내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냥드림 사업장에서는 기존 복지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푸드마켓에 연결해 끼니 문제를 해결해주고 청년 일자리 사업을 소개해주거나 기초생활수급 서비스를 연계해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범사업 형태로 시작된 그냥드림은 생계가 어려운 사람이 소득·재산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지 않아도 약 2만원 상당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우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사업이다. 첫 방문 때는 이용자가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고 자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면 물품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부터는 현장 인력이 기본 상담을 하고, 필요한 경우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이나 다른 복지자원으로 연결한다. 세 번째 이용 때 추가 상담을 거쳐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물품을 계속 지원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까지 약 21만명이 그냥드림 사업장을 이용했다. 이 가운데 4만4712명이 복지상담을 받았고, 2만2367명은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에 연계 의뢰됐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이나 긴급복지지원 등 실제 복지서비스를 받게 된 사람은 4437명이었다. 전체 이용자의 약 21%가 복지상담을 받았고, 약 2%는 실제 복지서비스 지원까지 이어진 셈이다.
지난 14일 복지부가 공개한 그냥드림 운영 사례를 보면 노인부터 청년까지 다양한 위기가구가 먹거리 지원을 계기로 다른 복지제도와 연결됐다. 노인 B씨는 노인 일자리가 중단돼 수입이 크게 줄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설 연휴 사흘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지내다 광명푸드뱅크마켓센터를 찾았다. 센터는 그냥드림을 통해 당장 필요한 밥과 반찬을 지원한 뒤 상담을 거쳐 긴급복지와 생계·의료·주거 지원을 신청하도록 도왔다.
부모의 도움 없이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C씨는 월세가 9개월가량 밀려 있었다. 기간제 일자리를 구했지만 밀린 월세를 갚고 나면 당장 먹을 것을 살 돈도 부족했다. 센터는 상담을 거쳐 C씨가 주거급여를 신청하도록 돕고 청년 일자리 사업을 안내했다. 푸드마켓 이용 대상자로도 선정해 당분간 먹거리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냥드림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이 사업이 복지제도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는 점을 실감한다. 광명푸드뱅크마켓센터는 센터장을 포함한 직원 5명이 모두 사회복지사다. 임영란 센터장은 “복지제도와 연계될 것이라는 기대 없이 그저 생필품을 받으러 왔다가 상담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를 안내받는 분들이 많다”며 “원칙적으로는 2차 방문 때부터 기본 상담을 진행하도록 돼 있지만, 첫 방문에도 상담이 필요해 보이시는 분 같으면 적극적으로 대화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이용자분들 중에 이미 복지제도 신청을 하고 여러 이유로 반려된 분들이 있는데, 잘 살펴보면 주소지라든가 일부 소득 요건 때문에 반려는 됐으나 실제로는 정말 도움이 절실한 상황인 분들”이라며 “그러면 우선 푸드뱅크나 반찬 지원 같은 것들이라도 연계해서 끼니가 끊기는 일만은 없게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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