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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8, 2026

“기억해야 할 것은 고통만이 아냐”…영화 출연 마다하던 김혜자, 9년 만에 돌아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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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순옥’(김혜자)이 60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 ‘정임’(차미경)을 끌어안고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순옥’(김혜자)이 60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 ‘정임’(차미경)을 끌어안고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1942년 깊은 산골 마을의 열일곱 살 두 소녀는 함께라면 좋았다. 지게에 나무를, 소쿠리에 나물을 실어나르며 둘은 꿈을 속닥거렸다. 노래를 잘 부르는 ‘정임’(아역 최주은)은 가수가 되고, ‘순옥’(아역 박서경)은 그를 무대에 올리는 단장이 될 거라고. 서울에 가서 하고픈 일, 되고픈 일을 상상하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공장 취직을 빌미로 어린 여자아이들을 잡아간다는 흉흉한 소문에, 둘은 일단 숨기로 한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여전히 찬란하게>(송일곤 감독)는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이 그 시대를 살던 개인들에게 남긴 상처를 생각하게 하는 극영화다. 투박하다 싶을 정도로 순수한 소녀 정임과 순옥의 우정을 그리던 영화는, 60여 년이 지나 할머니가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서로를 끔찍이 아끼던 둘은 왜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을까. 이야기는 순옥의 기억을 따라 흘러간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어린 ‘정임’(최주은)과 ‘순옥’(박서경).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어린 ‘정임’(최주은)과 ‘순옥’(박서경).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순옥’(김혜자)이 기억 속 친구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순옥’(김혜자)이 기억 속 친구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혜자가 순옥을, 배우 차미경이 정임을 연기한다. 김혜자가 영화에 출연한 것은 <길>(2017) 이후 9년 만이다. 송일곤 감독은 15일 언론 시사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김혜자를 오랜 설득 끝에 섭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송 감독은 “들꽃처럼, 이름 없는 꽃처럼 있고 싶다”며 당분간 작품 활동을 쉬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김혜자를 거듭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선생님은 ‘이 작품에 왜 출연해야 하는가’의 명분이 중요하신 분”이라며 “그 명분이 생긴 후에는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연습을 많이 하셨다. 밖을 아예 안 나가시고 대사, 쉼표, 시선 하나를 무수히 연습하시더라”고 말했다.

김혜자를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날 김혜자는 감기가 심해져 건강상의 이유로 시사회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전달된 자필 편지에서 영화에 대한 그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우 김혜자가 15일 <여전히 찬란하게> 언론 시사회를 앞두고 쓴 자필 편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혜자가 15일 <여전히 찬란하게> 언론 시사회를 앞두고 쓴 자필 편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혜자는 송일곤 감독에게서 받은 편지 중 “순옥은 울지 않습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여전히 찬란하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믿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정말 잊히는 게 있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슬픈 역사잖아요. 우리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기억해야 해요. 하지만 저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살고 싶어했는지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정임과 순옥의 유년기를 맡은 배우 박서경과 최주은이 극에 풋풋한 활기를 불어넣는다면, 김혜자와 차미경은 눈빛만으로 세월을 짐작게 하는 연기를 한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어린 ‘정임’(최주은)과 ‘순옥’(박서경)이 상경의 꿈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장면은 뮤지컬처럼 연출됐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의 어린 ‘정임’(최주은)과 ‘순옥’(박서경)이 상경의 꿈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장면은 뮤지컬처럼 연출됐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송 감독은 김혜자에 대해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하나”라며 “눈앞에 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 미묘한 미소를 포착하고 싶었다. 그녀의 일생과 다양한 감성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차미경은 김혜자의 연기가 “하얀색 도화지 위 물감을 떨어뜨리면 너무 아름답게 번지는 수채화 같았다”고 표현했다. “촬영할 때 그저 그 상황에 같이 스며들고 번지면 됐어요.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이혜숙 작가의 희곡·낭독극 형식의 짧은 대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송 감독은 “두 여성의 오랜 이야기를 담은 속마음이 올곧고 울림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간결한 소품과 뚜렷한 캐릭터 등에서 영화는 작은 연극을 보는 듯한 감상을 남긴다. 중간에 소녀 정임이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적인 장면도 나온다. 송 감독은 “음악을 통해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더 감성적으로 다가가길 바랐다”고 했다.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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