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과 ‘갈등’의 경계는…대법원 “학생 나이, 교육 필요성 등 고려해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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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초등학생끼리 일어난 다툼을 법률상 ‘학교폭력’으로 볼 것인지는 학생들의 나이와 교육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그간 교육계에선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 정의가 기계적으로 적용돼 가벼운 갈등까지도 법적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법원이 학교폭력의 구체적인 판정 기준을 제시하면서 일선 학교에서의 학교폭력 사건 처리 흐름도 바뀔지 주목된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3일 초등학생 A군과 그 부모가 지역 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심판위)를 상대로 낸 학교폭력 재결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23년 3월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A군은 같은 반 B군과 학교 다목적실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듣고 있었다. B군은 A군을 80㎝ 단상 아래로 밀었고, A군은 무릎에 타박상을 입었다. A군 측은 그해 12월 “B군이 신체적 피해를 줬다”며 B군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관할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B군 측에 “서면으로 사과 조치를 하라”고 결정했다.
B군 측은 지역 교육청 행정심판위에 해당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심판을 냈다. 심판위는 B군이 당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기에 부족한 나이라는 점 등을 들어 학폭위 처분을 취소했다. 이에 A군 측은 법원에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사이에 일어난 다툼을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법률에 명시된 학교폭력의 정의는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폭력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이다.
1·2심은 엇갈린 판단을 내놨다. 1심 재판부는 A군 측 손을 들어 심판위 결정을 취소했다. 1심 재판부는 법상 학교폭력인지를 정할 때, 법률 문언대로 따져야지 가해 학생의 나이를 고려해선 안 된다고 봤다. 반면 2심은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으로 보일 뿐, 법상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학교폭력 행위를 두고 “그 행위가 (법상) 학교폭력의 정의에 문언상 부합하는지뿐만 아니라 해당 행위의 경중, 발생 경위나 전후 사정, 피해·가해 학생의 연령이나 관계 등을 고려한 피해 학생의 보호 및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의 필요성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법상 정의에 따른)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에 부합하는 듯한 행위를 모두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보게 되면, 학교생활에서 발생하는 학생들 사이의 모든 갈등이나 분쟁이 학교폭력에 해당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 결과 피해 학생의 보호 및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의 필요성이 거의 없는 경우까지 학교폭력 가해 학생으로서의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는 등 자칫 가해 학생의 인권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일선 학교들의 기계적인 학교폭력 사건 처리가 변화할지 주목된다. 검찰에서 아동 사건을 맡았던 권내건 변호사(법무법인 트리니티)는 “학교폭력 정의가 형법상 죄명을 나열하는 형태로 쓰이다 보니, 교육적 입법 취지와는 오히려 동떨어져 형사처벌적 관점에서 운영되는 게 현실”이라며 “대법원이 입법 취지에 맞는 구체적 기준을 밝혔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고문 변호사 등을 지낸 박종민 변호사(법무법인 파트원)는 “법상 학교폭력 정의가 지나치게 넓어 가벼운 사안까지도 법적 분쟁으로 커졌고, 최근 교육 현장에선 가벼운 다툼은 관계 회복을 중심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반성적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라며 “이런 흐름이 대법원 판례로도 확인된 것 같다”고 했다.
학폭위 위원을 지낸 원의림 변호사(법무법인 의림)는 “저연령 아이들이 불쾌한 마음을 정제하지 못하고 내뱉는 말이나 일회적 유형력 행사를 모두 학교폭력으로 보는 건 맞지 않는다”며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순간 아이들의 다툼은 부모인 성인의 언어로 휘둘리게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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