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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8, 2026

[고영의 문헌 속 ‘밥상’]이 계절 김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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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든 11월은 김장의 계절이다. 김장의 기본 재료인 무와 배추가 얼기 전이고, 그 맛이 폭 든 철이다. 19세기를 살다 간 김형수는 <농가십이월속시>에서 옛 경기지역 음력 시월의 김장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벼 거둔 다음에는 무슨 일이 남았나/ 김장 아직 못했다면 무·배추로 할 일이 있지/ 무·배추 뽑아다 깨끗한 물로 정결히 씻어/ 소금에 절여 간을 딱 맞추지/ 젓갈·젓국에 또 어떤 양념거리가 있을까/ 고추·청각·마늘·생강·파라네/ 크고 작은 중두리며 바탱이마다 김장한 것 가득 담아/ 양지바른 데 움 파고 지어 깊이 묻네…”

옛 한시이되 익숙하고 친숙하다. 김장에 무와 배추가 빠질 리 없다. 원문의 ‘견두수’는 정수한 물 또는 그만큼 깨끗한 물이다. 해 넘겨 새봄까지 먹을 저장식품이니 깨끗한 물과 정결한 세척은 되풀이해 강조할 만하다. 시작은 절이기다. 저장과 풍미의 기초, 그 성패가 절임에서 갈린다. 절임배추를 쓴다면 절임배추 포장 푸는 날이 김장날이다. 내 손으로는 못 절였어도, 김장의 시작은 결국 절이기다. 발효와 맛내기의 핵심은 젓갈이다. 여기다 그냥 뜬 젓국·밭친 젓국·다려 밭친 젓국 등 쓰는 법이 집집마다 다르다. 양념거리도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되 고추·마늘·생강·파는 공통이다.

용기도 다시 보인다. ‘중두리’는 독보다 작으면서 배는 더 부른 용기이다. ‘바탱이’는 중두리보다 배는 더 부르고 아가리는 좁다. 기본 김장은 큰 독에 채운다. 바로 먹을 만큼은 식구 수와 먹성과 김치의 물성을 가늠해 작은 독에서 바탱이에 이르는 용기에 채운다. 양이 적은 별미 김치, 별미 물김치, 김장과 함께 마련한 장아찌·식해가 마침맞은 용기를 따라간다. 가장 부피가 작은 용기가 ‘단지’이다. 김장은, 독에서부터 단지에 이르는 말과 사물과 부피의 실감과 사물의 형상을 두루 환기한다. 냉장고용 대소형 김치통에 견준 온갖 부피의 김치통과 반찬통의 변주에도 다 내력이 있다.

비용과 노동을 셈하고, 단기·장기 보관 계획을 세우는 데서 원초적인 경영이 태어난다. 독 묻을 움과 움을 한 겹 더 두를 움집도 셈에 든다. 우물쭈물 철을 넘기면 곡괭이 뾰족날도 삽날도 들지 않는 무심히 얼어붙은 땅을, 그저 내려다만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음력 시월 김장철의 또 다른 이유였다. 이제 냉장고가 움을 대신한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김장철은 12월 하순까지로도 확장됐다. 그래도 북한과 압록강·두만강·백두산 일대에 터 잡은 한민족은 여전히 움을 판다. 움집도 인다. 유럽인들의 장담대로라면 와인은 물론 유제품에도 ‘테루아르(Terroir)’가 있다는데 김장과 움의 테루아르는 왜 없겠는가.

식구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내 부엌 좁으면 좁은 대로, 동네에서 이웃끼리, 또 청년을 위한 김장 부엌에서, 김장은 이어지고 있다. 사람은 힘들어 생활의 한 구절을 놓는가 하면, 힘들여 생활의 병목을 타개하기도 한다. 김장의 풍경을 본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이엄이엄 곤곤히 이어지는 삶과 살림의 풍경을 본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실로 음식 문화사의 한 장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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