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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 2026

잠시 머물렀을 뿐인데 오래 기억에 남는 도시…왜일까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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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천년 전 유적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도 담겨있지만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당시의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여행지에 가서 유명한 건물을 봤을 때보다 때로는 낯선 곳에서 우연히 접한 분위기가 추억으로 오래 남을 때도 있습니다.

이창근 작가의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는 종묘, 경주, 산사 등을 걸으며 유산에 겹쳐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감각으로 읽어냅니다.

수원 화성 / 사진 = 미다스북스

수원 화성 / 사진 = 미다스북스

저자는 유적을 빠르게 확인하는 대신 그 공간에 쌓인 시간을 상상하고 느낄 때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여책저책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시간을 읽는 여행에 대해 만납니다.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
이창근 ㅣ 미다스북스

사진 = 미다스북스

사진 = 미다스북스

어느 골목에서 마주한 빛, 오래된 돌담을 따라 걸을 때 느꼈던 분위기, 잠시 머물렀던 도시의 공기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책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어떤 도시는 사람을 머물게 하고, 어떤 도시는 스쳐 지나가게 하는가. 20년 넘게 문화유산 현장을 걸어오며 미디어아트 디렉터이자 예술·기술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 이창근은 세계유산을 목록이나 지식이 아니라 ‘도시를 걷는 경험’과 ‘기억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예술경영학박사이기도 한 저자는 문화유산과 도시, 기술과 사람이 만나는 현장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2006년부터 문화유산 활용 사업과 전통문화 콘텐츠 기획, 궁궐과 조선왕릉, 종묘대제,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이번 책은 그런 현장 경험과 글쓰기가 켜켜이 쌓여 나온 결과물이다. 전작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이 유산을 도시 전략과 경험 설계의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오래된 장소를 직접 걸으며 그곳의 시간과 도시의 표정을 읽어낸다.

북악산 서울 성곽 / 사진 = 미다스북스

북악산 서울 성곽 / 사진 = 미다스북스

책은 크게 다섯 갈래로 펼쳐진다. 첫 번째는 종묘와 창덕궁, 성곽을 통해 세계유산이 도시의 얼굴이 되는 과정을 살핀다. 유산은 박물관 안에 고립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도시와 연결될 때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창덕궁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성곽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유산이 도시의 공간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두 번째는 경주와 백제, 역사마을과 고분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특정 건축물 하나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간으로 읽힌다. 오래된 마을과 무덤, 돌과 길은 과거의 흔적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도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세계유산은 그렇게 도시의 표정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는다.

세 번째는 산사와 서원,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과 불국사를 통해 고요와 사유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에서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소들이다. 하지만 천천히 걷고 머무르면 건축과 자연, 빛과 침묵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감각이 다가온다. 저자는 세계유산을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짚는다.

네 번째에서는 제주와 갯벌, 반구천 암각화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오래된 기억을 만난다. 인간이 남긴 흔적뿐 아니라 땅과 바다, 자연의 시간 역시 유산이 될 수 있다. 특히 갯벌처럼 아주 느린 속도로 변화하는 공간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온 시간의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오래된 장소를 걷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온 자연의 리듬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종묘 / 사진 = 미다스북스

종묘 / 사진 = 미다스북스

마지막 질문은 ‘세계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저자는 세계유산을 많이 가진 나라와 세계유산을 경험하게 하는 나라는 다르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유산의 숫자나 이름을 늘어놓는 데 있지 않다. 그 장소에 담긴 시간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직접 걷고 머물며 기억할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책은 세계유산을 공부하기 위한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여행의 속도를 늦추게 한다. 유명한 명소를 빠르게 확인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대신 그곳을 천천히 걷고 바라보며 질문하게 한다. 종묘와 경주, 산사와 제주를 이미 다녀온 사람에게도 익숙한 장소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기회를 준다.

결국 세계유산을 읽는다는 것은 도시를 다시 걷는 일이다. 그리고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그곳에 쌓인 시간과 사람의 기억을 만나는 일이다. 이 책은 오래된 장소가 왜 우리 마음에 오래 남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어떤 기억으로 남길 것인지 조용히 묻는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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