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59명뿐인 피해자 전담 경찰…“골라서 도우라는 말인가” 자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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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역사의 검찰청이 사라지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이 들어서는 형사사법 체계의 대전환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0월2일 검사의 직접 수사권이 전면 폐지되면서, 수사는 경찰·중대범죄수사청이, 공소 제기·유지는 공소청이 전담하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가 현실화한다. 형사 절차의 대변혁이 몰고 올 변화와 파장, 사건관계인에게 미칠 실질적 변화를 다각도로 짚어본다.

동네 ‘다이소’에서 되는대로 사 온 청소용품을 들고 집 현관에 들어선 순간, 피 냄새가 훅 끼쳤다. 이틀 전 부부 사이에 벌어진 살인미수 사건의 흔적이다. 2023년 여름이었다. 수도권 지역 경찰서의 피해자 전담 경찰관 ㄱ경사는 목장갑을 끼고 피해자와 자녀들이 돌아올 집에 남은 혈흔을 닦았다고 했다. “청소 지원을 못 해주게 됐는데, 집에 돌아와 충격받을 피해자 가족 얼굴을 떠올리니 저라도 치워야겠더라고요.”
강력사건 피해자에게는 신청·심사를 통해 사건 현장의 참혹한 흔적을 지우는 특수청소업체 비용이 지원되지만, 가정폭력은 대상자로 선정되기 어렵다. 가해자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원칙 탓인데, 가정 내 사건에선 가해자의 집이 당연히도 피해자의 주거 공간이다. 사정을 설득해 지원받기까지 과정은 복잡했고 시간은 촉박했다. 한여름 눌어붙은 혈흔을 직접 지우는 데 서너 시간 걸렸다. 바지까지 땀으로 흠뻑 젖었다.
ㄱ경사는 그날 일을 ‘잘한 행동’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뿌듯함이 조금 있었지만 후회도 된다”고 했다. 청소에 시간을 쏟는 사이 돕지 못한 피해자들이 또 있었을 것이다. ㄱ경사는 전국 259명뿐인 피해자 전담 경찰관 중 한명, 그가 속한 경찰서의 유일한 피해자 지원 업무 담당자다. 그의 시간은 관할 지역 모든 피해자에게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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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 체계의 궁극적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인 피해자 회복과 지원은 만년 과도기 상태다. 사건이 논란이 되면 그때그때 급조한 각 제도는 기관별로 흩어져 뒤죽박죽이고, 그마저 주어진 인력과 예산은 부족하다. 형사사법 대전환 과정에서 보완수사권 논란 등을 겪으며 피해자 존재는 잠시 재조명됐다. 실제 피해자 회복·지원 제도가 놓인 척박한 현실을 해소할 방안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미로 같은 피해자 지원 제도 사이를 헤매는 현장의 피해자 전담 경찰관과 피해자들 이야기를 ‘형사사법체계 대전환’ 연재, 마지막 두 차례에 걸쳐 전한다.
피해자와 경찰, ‘복불복’ 만남
수도권 지역 피해자 전담 경찰관 ㄴ경사는 자신의 존재를 “복불복”이라고 했다. “저를 만나는 피해자가 한 3%는 될까 싶네요. 슬프게도, 피해자 지원은 복불복 게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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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범죄 피해자 보호 원년’을 선언하며 도입된 피해자 전담 경찰관은 임시숙소·스마트워치 제공,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등 신변 보호부터 경제적 지원 연계까지 피해 지원 전반을 총괄한다. 사건 초기 복잡한 지원 제도의 미로 속에 혼란을 겪는 피해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다. 도입 당시 경찰은 물리적 지원을 넘어 심리 회복을 꾀하겠다며, 심리학 전공자까지 피해자 전담 경찰로 특채(피해자 심리 전담 경찰관)했다.
10여년이 흐르고 이들을 둘러싼 청사진은 흐릿하다. 피해자를 전담하는 경찰 수(259명)는 경찰서 수(262개)보다도 적다. 인구가 적은 3급지 경찰서 70곳에는 피해자 전담 경찰관이 배치되지 않고, 여성청소년 업무 담당자가 지원 업무를 겸임한다. 한 경찰서에 한 명꼴로도 피해자를 전담하는 경찰이 배치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업무는 포화 상태다. 전담 경찰 1명이 하루 평균 3~4명, 많게는 10명까지 피해자를 만나거나 통화한다. 심리 치유와 깊이 있는 상담은 언감생심,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데만 피해자 1명당 1시간 가까이 걸린다. 지원해야 할 피해자는 늘고 있다. 지원 대상 피해자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 지급 등 경찰의 안전조치 건수를 보면, 2022년 2만9372건에서 지난해 3만540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2만건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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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피해자를 ‘만나는’ 경우는 일부에 그친다. 친절한 수사관이 사건을 수사하며 지원 제도를 안내하고 설득해 피해자가 직접 ‘신청’에 나섰거나, 운 좋게 피해자 전담 경찰관 눈에 띄었을 때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접근 권한이 없는 피해자 전담 경찰은 매일 아침 여성청소년과 업무일보(일일 사건보고)를 보며 지원 대상자를 ‘발굴’한다고 했다. 일부 피해자 전담 경찰은 형사과·수사과의 업무일보까지 살펴보는데, 그마저 거듭된 요청의 결과다. 수도권 지역 피해자 전담 경찰관 ㄷ경사는 “지금은 업무일보라도 받아보지만, 처음에는 ‘왜 다른 과 자료를 보려고 하느냐’며 거절당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 바깥에 있었던 숱한 피해자를 놓쳤을 것이다. ㄴ경사는 같은 범죄 피해를 두번 겪은 피해자한테서 ‘왜 그때는 아무 지원이 없었는데 지금은 되느냐’는 칼날 같은 질문을 들은 기억을 전했다. 대답은 결국 자책이다. “실은 그때도 안 됐던 건 아닐 텐데, 제가 놓쳤거나 다른 피해자를 돕느라 도움을 못 드렸을 수 있어요.”

‘지원금’ 찾아 헤매다 ‘사비’까지
우여곡절을 거쳐 피해자 손을 잡은 뒤 피해자 전담 경찰 앞에는 본격적으로 높은 벽으로 둘러쳐진 미로가 펼쳐진다. 피해자를 지원할 돈과 지원 사업을 찾아내 연계해야 한다.
공적 지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다. 법무부가 관리한다. 그 때문에 지급 심사와 지원은 ‘검찰 송치’를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크다. 지원이 가장 절박한 사건 초기인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경찰이 직접 집행하는 기금 비중은 5.5%에 그친다. ㄷ경사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아직 결론이 안 나왔거나 불송치가 잦은 사건 피해자에 대해선 지원을 안 받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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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벽에 부닥친 피해자 전담 경찰관들이 자주 눈길을 돌리는 것이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이다. 지자체 지원금은 지역 범죄피해자지원센터(서울의 경우 5곳) 지원 사업 재원이 된다. 이 돈의 벽도 만만치 않다. 구청 지원금은 해당 구에 살아야만 대상이 되는데, 지자체에 따라 예산이 조기에 바닥나는 경우가 흔하다. 사는 지역, 피해 시점에 따라 지원 여부가 갈리는 셈이다.
한겨레가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도움을 받아 서울시에 확인해 보니 서울 은평구는 6월, 마포구는 8월에 올해 지자체 지원금 5천만원이 바닥났다. 강서구의 경우 직접 지원 자금은 8월에 모두 소진됐고, 운영비만 남았다. 한 해를 기준으로 마련한 예산이 여름도 넘기지 못한 채 소진된 것이다. ㄴ경사는 “구 예산이 소진되고 나면 신청서를 보내도 지원한다는 회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쪽은 구청 지원금이 바닥나도 시나 개인이 지원한 후원금 등으로 지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장 얘기는 다르다. 예산 부족으로 뒤로 밀린 지원은 이듬해로 밀리고, 이듬해 피해자는 또 지원이 밀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ㄴ경사는 “올해 초에 전치 10주 정도 피해를 입고 재판 중인 분도 아직 병원비 지원을 못 받았다”고 했다.
공적 지원의 어려움 탓에 피해자 전담 경찰관의 업무에는 ‘사기업과 민간단체 후원’을 찾아다니는 일도 포함됐다. “유능한 피해자 전담 경찰은 어디에서 돈이 나오는지를 안다”는 말이 피해자 전담 경찰관 사이 씁쓸한 격언이다. 그마저 쉽지 않을 때 ‘사비’를 쓴다. ㄷ경사는 “지원 심의에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피해자 대부분 수긍하시지만, 당장 다음달 월세가 없다는 분도 계신다”며 “그런 분한테 사비로 컵라면이나 먹을 것을 좀 사서 드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책과 소진 속에 형사소송법 개정
혼란과 한계가 여전한 피해자 지원 체계 속에 오는 10월2일,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된다. 사건을 수사하는 전 과정에 격변이 예상된다. 피해자 전담 경찰관의 우려도 크다. 수사와 피해자 보호는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검찰 수사권 폐지 이후 해결해야 할 사건의 양이 늘어날 일선 수사관들에게, 가뜩이나 부차적인 업무로 여겨져온 피해자 보호는 한층 관심 밖에 놓일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지원 제도와 신청 방법을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정이 업무일보 등에 상세히 기록되지 않으면 그만큼 더 많은 피해자가 전담 경찰을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경찰 단계 수사가 지연되면 여전히 송치 이후에야 주어지는 경우가 많은 의료비·이사비 등 각종 지원금을 받기 더 어려워진다. ㄷ경사는 “만약 불송치가 늘어나거나 보완수사 요구가 늘어나서 수사 종결까지 시간이 걸리면, 공적 지원도 많이 늦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애초 수사와 사법처리 지연 자체가 각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시간과 양을 늘린다. 지원이 필요한 피해 규모와 그에 따른 인력·예산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형소법 개정에 불안을 토로하는 피해자들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에 대한 전건 송치,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확대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또다시 신규 제도만 언급될 뿐 실제 열악한 피해자 지원 현실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다.
절박한 피해자와 무력한 현실의 간극에서 느끼는 현장의 죄책감은 지속된다. ㄴ경사는 “내가 오늘 커피 한잔을 덜 마셨다면 좀 더 도울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여력이 없다 보니 의도치 않게 피해자를 골라서 도와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자괴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비슷한 상황 속에 정신과 약을 먹고,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동료들 이야기를 전하던 ㄴ경사가 끝내 용기 내서 말했다.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피해자는 언급됐는데, 정작 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게 너무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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