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고개 드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론, 명분 없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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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용원 | 광운대 연구교수·한국조세법학회 상임이사
내년 1월1일부터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또 늦추자는 소득세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됐다. 2020년 12월 첫 과세 방침이 결정된 이후 ‘인프라 미비’와 ‘투자자 보호’ 등을 이유로 수차례 과세가 미루어졌음에도, 또다시 제도 시행이 멈춰 설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과세 유예는 단순한 일정 연기에 그치지 않는다. 조세법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세정 전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동요시킬 뿐이다. 이제는 유예라는 임시방편을 끝내고 원칙에 따른 과세를 시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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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유예안은 조세법학적·정책적 관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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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조세평등주의와 응능부담 원칙(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공평한 과세를 해야 한다는 조세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라는 기본 원칙을 무시한 채, 성실히 세금을 내는 근로 소득자나 금융·부동산 소득자와 달리 가상자산 소득에만 지속적인 과세 사각지대를 내어주는 것은 명백한 조세 불평등이다.
둘째, ‘과세 인프라 미비’라는 유예 명분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 국내 주요 가상자산 사업자(VASP)의 거래 내역 제출 체계가 정착되었고, 국세청의 온체인 과세 시스템과 다자간 정보교환 체계(CARF/CRS) 역시 고도화했다. “인프라가 부족해 세금을 거두기 어렵다”라는 주장은 더는 성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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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조세 회피 심리를 자극한다. 법률로 확정된 과세 시점이 정치적 이해관계나 표심에 따라 번번이 유예되면, 시장 참여자들은 세법을 ‘언제든 번복될 수 있는 일관성 없는 규제’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납세자의 성실한 이행 의지를 약화시키고, 음성 거래와 조세 회피만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는다.
넷째, ‘선 정비, 후 과세’ 프레임에 갇힌 논리적 오류다. 완벽한 제도적 틀을 갖춘 뒤에야 과세할 수 있다는 주장은 조세법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세법은 현장 시행을 거치며 미비점을 정밀하게 다듬어가는 점진적·가변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완벽한 입법을 핑계로 과세를 기약 없이 미루는 것은 정책 당국의 명백한 책무 유기다.
가상자산 과세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추가 유예는 조세 형평성을 해치고 법적 불확실성을 장기화할 뿐이다. 이제는 과세를 예정대로 시행하되, 기타소득 분류의 적절성, 손실 이월공제 미적용, 취득가액 산정 방식 등 현장의 실무 과제를 다듬어가는 ‘선 시행, 후 보완’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과세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가상자산이 정당한 제도권 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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