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의 폐로 남긴 유언 “장례 대신 광화문서 싸워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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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장례를 치르지 말고 광화문 광장에서 싸워달라.”
고 서영철 회장의 유언입니다. 폭염이 그를 데려간 자리에, 지금은 비가 내립니다. 유족과 피해자들은 고인의 유언대로 장례를 미루고 광화문 광장에 빈소를 차렸습니다. 그것도 서울시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해서 겨우 얻은 자리입니다. 고인의 영정 위로 물방울들이 맺혀 아롱져 내립니다.
휴대용 산소발생기의 콧줄 낀 채
특조위·시행령 개정 요구했지만
끝내 듣지 못한 국회·청와대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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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서영철. 가습기살균제대참사피해자연대 스무개 단체의 회장. 폐의 대부분이 굳어 19%만 남은 폐로, 산소발생기를 들고 다니며 콧줄을 꿰어서 숨을 쉬던 사람. 남들이 한번에 쉬는 숨을 그는 여러번에 나누어 헉헉대며 쉬었습니다. 초고도 피해자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입니다. 활동을 멈추고 요양해야 목숨을 보전한다는 충고에 그는 웃으며 답하곤 했습니다. “억울해서 이대로 죽기 싫다.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 말 그대로였습니다. 지난 8월의 혹독한 더위 속에서 그는 청와대 앞에서 물 한 잔 마시지 않고, 쉬지 않고, 래퍼처럼 뜨겁게 피해자들의 요구를 쏘아댔습니다. 그날부터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생긴 기흉이 그를 데려갔습니다. 19%의 폐를 태워 피해자들의 요구를 세상에 바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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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참사를 기업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범죄라고 불렀습니다. 지난해 9월 열몇개 단체의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두 손으로 건네던 날, 그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엄동설한에 휠체어를 타고 산소발생기에 콧줄을 이어 끼고 국회의원회관 복도를 돌았고, 시행령을 고쳐 달라고 청와대 앞을 세번 찾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답이 없으면 이 자리에서 죽겠다"고 했습니다. 답은 끝내 오지 않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얻은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오래 매달린 싸움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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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년 피해자 운동의 가장 큰 적은 안에 있었습니다. 제도의 문턱이 피해자를 갈라놓았고, 갈라진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못했습니다. 스무개 단체를 하나로 묶는 일은 명분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를 넣으면 저 대표가 빠지겠다 하고, 저 대표를 넣으면 이미 들어와 있던 다른 대표가 빠지겠다 했습니다. 십수년 묵은 은원이 얼기설기 얽혀 있었습니다.
그 전화를 그가 돌렸습니다. 들어왔다 나갔다 다시 들어온 대표가 있었고, 두번 세번을 걸어도 끝내 돌아서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통화가 길어지면 숨이 차서 끊었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걸었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데에는 성한 사람들을 묶는 것보다 몇 곱절의 힘이 듭니다. 그 힘을 그는 19%의 폐에서 꺼내 썼습니다.
20개 단체 십수년 은원 풀었던 구심
고인 영전에 모여 ‘하나 되겠다’ 맹세
은밀히 진행되며 증인 없었던 참사
당신이 약속의 증인이 되어 주세요
그 구심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흩어진다면, 그것은 그를 두번 죽이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영전에 맹세했습니다. 기존의 모든 갈등과 은원을 잊고 하나가 되겠다. 서로의 인격을 지키겠다. 분파를 만들지 않겠다. 모든 일을 민주적으로 하겠다. 서명지의 칸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그가 숨을 나누어 쉬며 묶어 놓은 매듭이 하나씩 다시 묶이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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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에 서명한 이들의 이름을 여기 다 적을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35년째 안방에서 은밀히 진행되어 온 이 참사에는 증인이 없었습니다. 무너지는 건물도 침몰하는 배도 없이, 집집마다 흩어져 죽어간 참사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광장에 나와 죽고서야, 대참사가 다시 국민 앞에 섰습니다. 부디 그 서명지의 마지막 칸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가 이 약속을 지키는지 지켜보는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가 살아서 그토록 찾던 것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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