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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7, 2026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간절히…욕망을 앓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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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1948~1989). 2011년 출간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안치운 지음, 문학과지성사)의 표지에 그의 사진이 실려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1948~1989). 2011년 출간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안치운 지음, 문학과지성사)의 표지에 그의 사진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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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라진 별을 그리워하는 마음. 라틴어 ‘데시데라레’(Desiderare)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것은 욕망을 뜻하는 프랑스어, ‘데지르’(Désir)의 어원이기도 하다. 다소 낭만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별이 운명을 점치는 수단이자 길잡이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 단어에 담긴 박탈감과 갈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별과 나 사이에는 몇광년의 거리가 있다. 우리는 별에 닿을 수도, 별을 가질 수도 없다. 가져본 적 없는 것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하지만 욕망은 본래 모순적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간절히 가지려 한다. 어디 그것뿐인가. 우리는 밤하늘의 별이 실제로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 별의 삭막함을 모른 채, 오해한 채 욕망한다. 어쩌면 모든 욕망은 모르기에, 오해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여기 모순과 오해의 밤거리가 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마주친다. 딜러와 고객이다. 먼저 말을 거는 것은 딜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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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이런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딜러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아니, 단순히 고객의 요구를 확인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려 한다. 그래야 거래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딜러에게 말은 유혹이자 포획의 도구이다. 욕망에 이름을 붙이고, 그 욕망을 거래할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드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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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고객에게 말은 방어이자 저항의 도구이다. 욕망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그것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기 때문이다.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l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지음, 임수현 옮김, 민음사(2005)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l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지음, 임수현 옮김, 민음사(2005)

딜러의 말을 빌려, ‘이 시간, 이런 동네’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 마주치게 된 걸까. 프랑스 현대극을 대표하는 극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이 만남의 이유나 배경을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희곡의 첫 장에 ‘딜’(거래)에 관한 짤막한 설명을 쓴 게 전부다.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과 그것을 제공하려는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 작가는 이 만남을 처음부터 거래라는 형식 안에 두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고객은 그저 길을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만 딜러의 시선 안에 그가 들어왔을 뿐. 그렇다면 이 만남은 딜러만의 오해일까. 확실한 것은 독자 역시 고객에게서 어떤 욕망을 찾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인간은 타인을 만나는 순간, 그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니까. 그가 왜 여기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콜테스의 연극은 그 추측에서 시작되어 오해로 이어지고, 독자 역시 이 오해에 동참한다. 어둠 속의 누군가를 고객으로 상정하는 딜러처럼. 저마다 어떤 욕망을 상상한다. 고객의 것일 수도, 우리 자신의 것일 수도 있는 욕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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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는 고객에게 말을 걸고, 고객은 대답한다. 콜테스의 연극에서 말은 곧 사건이 된다. 인물들은 말함으로써 행동하고, 상대에게 다가가거나 맞선다. 자신이 무엇을 파는지 밝히지 않고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딜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밝히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뜨지 않는 고객. 이 극에서 제안하고 거절하는 두 사람의 말은 은밀한 대치 상태를 만들고, 거래를 넘어 관계를 형성한다. 서로를 거부하면서도 필요로 하는 관계 말이다. 동시에 이들의 대화는 서로 다른 연극의 독백처럼 흐른다. 상대의 말조차 각자의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이용될 뿐이다. 이제 말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수단이 된다. 소통을 위해 쓰이는 연극의 언어는 소통 불가능성을 향해 달린다. 타인을 향해 말하면서도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다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말이 닿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들은 말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이들에게 말은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거리를 견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별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을 소망하는 것처럼. 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바람을 투사하는 것처럼. 나는 당신을 완전히 알거나 소유할 수 없지만, 당신을 향해 말을 건네고 응답을 기다린다. 내가 당신을 안다는, 혹은 당신은 나를 모른다는 오해를 품고. 상대를 밀어내면서 동시에 서로를 놓아주지 않는 모순 안에서. 그러니 이것은 타자를 향한 욕망이 아닌가.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반응을 얻고,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욕망.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데지르.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이 희곡의 제목을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라고 지었다. 딜러는 고객에게 자신의 욕망을 “나무에게 말하듯, 감옥의 벽 앞에서 말하듯, 밤에 벌거벗은 채 걷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말하듯”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물론 고객은 끝까지 자기의 욕망을 밝히지 않는다. 딜러는 알까. 사람은 혼자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자신의 욕망에 완전히 솔직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사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말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콜테스의 고독은 타인을 온전히 알 수 없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조차 알아볼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에게 당신만큼 영원한 타자이므로. 하지만 우리는 가져본 적 없는 별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꿈꾼다. 그렇게 욕망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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