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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8, 2026

“나는 불안형, 전 남친은 회피형”…SNS 연애 진단에 빠진 사람들이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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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형이고, 전 남자친구는 회피형이었어.” “그 사람은 안정형이라 연애하기 편하더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연인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불안형’ ‘회피형’ ‘안정형’ 같은 표현을 쓰는 일이 낯설지 않다. 상대가 연락을 늦게 하면 회피형, 애정 확인을 자주 요구하면 불안형, 갈등 상황에서도 차분하면 안정형이라는 식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애착 유형을 알아보는 자가진단부터 유형별 연애법, 궁합을 설명하는 콘텐츠까지 넘쳐난다. 한때 MBTI가 사람을 이해하는 대화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애착 유형이 연애 상대를 파악하는 새로운 기준처럼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성격 유형이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뿌리는 심리학의 ‘애착 이론’이다. 영국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존 볼비는 1950년대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의 반응을 연구하면서 애착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다. 아이가 양육자와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가 생존과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후 미국 발달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가 낯선 상황에서 아이가 양육자와 분리됐다가 다시 만났을 때 보이는 행동을 관찰하며 이론을 발전시켰다. 연구에서는 아이들이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애착 패턴을 안정형, 불안·양가형, 회피형 등으로 구분했다.

이 개념이 성인의 연애 관계로 확장된 것은 1980년대다. 미국 심리학자 신디 헤이전과 필립 셰이버는 1987년 학술지 ‘성격 및 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성인의 낭만적 사랑도 애착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 맺은 관계에서 나타나는 패턴이 성인이 된 뒤 연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인의 연애 애착을 안정형, 회피형, 불안·양가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설명했다.

이후 연구자들은 성인 애착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모델도 제시했다. 1991년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의 킴 바솔로뮤와 레너드 호로위츠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지를 조합해 안정형, 몰두형(불안형), 거부형(회피형), 두려움형(공포회피형)으로 나눴다. 불안형은 관계에서 거절당하거나 버려질 가능성을 걱정하며 상대의 애정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고, 회피형은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친밀해지는 상황을 불편하게 느껴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 두려움형은 친밀감을 원하면서도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해 다가가고 물러서는 모습을 함께 보일 수 있다. 안정형은 친밀감과 독립성을 비교적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유형이다.

책 Attac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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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론이 대중의 연애 지침서로 자리 잡는 데에는 정신과 의사 아미르 레바인의 역할이 컸다. 컬럼비아대 임상정신의학 부교수인 그는 레이철 헬러와 함께 2010년 <Attached>(애착관계)를 출간했다. 연애 관계에서 나타나는 애착 유형을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월 레바인과의 인터뷰에서 이 책이 전 세계적으로 300만 부 이상 팔리고 40개 넘는 언어로 번역됐다고 소개했다. ‘불안형’ ‘회피형’ 같은 표현이 연애 상담과 온라인 콘텐츠에서 널리 쓰이게 된 배경이다.

문제는 대중화 과정에서 이론의 의미가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레바인은 워싱턴포스트에 “애착 유형은 성격 유형도, 바꿀 수 없는 운명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정 관계에서 나타나는 감정과 행동의 패턴이며,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살아가면서 변화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람마다 관계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이 이론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를 고정된 정체성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과학적 설명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애착 유형을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고정된 네 가지 꼬리표로 이해하는 것은 연구 현장의 접근과도 차이가 있다. 성인 애착 연구에서는 불안과 회피를 각각 연속적인 정도로 측정하는 방식이 널리 쓰인다. 불안이 얼마나 높은지, 친밀한 관계를 얼마나 회피하는지를 각각 점수로 살피는 것이다. 두 차원의 조합으로 네 가지 유형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현실의 사람을 어느 한 유형에 딱 맞춰 분류하기는 어렵다.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 크리스 프레이리 교수 연구실은 성인 애착을 측정할 때 불안과 회피를 별개의 차원으로 평가하는 설문 도구를 제공한다.

사람마다 관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쉽다. 레바인은 워싱턴포스트에 한 사람이 연인에게는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친구나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는 불안하거나 회피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포르투갈 리스본대 연구진이 성인들의 어머니·아버지·친구·연인 등 여러 관계를 살펴본 연구에서도 회피 성향은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나는 회피형’이라고 자신을 규정한다고 해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오해는 애착 유형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만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경험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성인기의 관계 방식을 전부 결정하지는 않는다. 레바인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랐더라도 회피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며, 반대로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이 좋지 않았더라도 성인이 된 뒤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AP가 소개한 일리노이대 연구진의 설명도 애착 유형은 부모와의 관계뿐 아니라 개인의 기질과 이후의 경험 등 여러 요인과 관련된다고 강조한다.

애착 유형은 바뀔 수 있을까. 미시간주립대 심리학과 윌리엄 쇼픽 교수 연구진은 2023년 학술지 ‘사회·성격심리학 컴퍼스’에 발표한 리뷰 논문에서 성인기의 애착 안정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한 연구들을 검토했다. 애착 성향이 시간이 지나도 어느 정도 지속되는 경향은 있지만, 성인기 경험과 관계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레바인 역시 안정적인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일관된 반응과 신뢰가 애착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애착 유형을 아는 것은 의미가 없을까. 전문가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AP통신에 따르면 캔자스대 심리학과 오므리 길라스 교수는 애착 개념이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행동을 이해하고,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을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온라인 검사 결과를 진단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회피형’이라는 결과를 받은 사람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로 삼거나, ‘불안형’이라는 결과를 받은 사람이 자신은 원래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애착 유형은 젊은 세대의 연애를 설명하는 일종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MBTI가 성격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됐다면, 애착 유형은 연애 상대의 행동과 관계 맺는 방식을 해석하는 데 쓰인다. 불안형은 상대에게 지나치게 매달리고 회피형은 갈등을 피하거나 연락을 끊는다는 식이다. 최근 SNS에서는 ‘회피형’이 애착 이론의 본래 의미를 넘어 연락을 끊거나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처럼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애착 이론이 알려주는 것은 누가 좋은 연인이고 나쁜 연인인지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가까워지고 싶을 때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떤 감정과 행동이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하나의 틀이다. 레바인은 워싱턴포스트에 관계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로 일관성, 접근 가능성, 반응성, 신뢰성, 예측 가능성을 꼽았다. 상대에게 ‘회피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얼마나 일관되고 믿을 만한 사람이 되는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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