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38) '혁신 지도자 vs 독재자'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한국·싱가포르가 모델 국가…1994년 르완다 대학살 딛고 논란 속 장기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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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국가 통합의 혁신형 지도자냐 정적에게 무자비한 독재자인가'
올해 68세인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한마디로 정의하기에 간단치 않은 인물이다.
사실상 30년 넘게 장기 집권하면서 정적들을 가혹하게 숙청하는 면모를 보면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르완다 경제를 연 7% 고속 성장으로 이끌면서 아프리카의 정보기술(IT) 선도 국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한 점을 보면 혁신형 지도자로 부를 수 있다.
최근 르완다 수도 키갈리를 방문한 기자 등에 따르면 이전부터 듣던 바대로 거리가 실제로 깨끗하고 인터넷 환경은 '실리콘 사바나'로 불리는 케냐의 나이로비보다 나은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 밤에 돌아다녀도 무방할 정도로 안전하다고 한다.
카가메 대통령은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을 국가 발전 모델로 설정했다.
평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고 하는데 그의 새마을 운동을 이어받아 르완다 시골에서는 매월 1회 마을 청소 등을 한다고 한다.
카가메 대통령은 아프리카에서 트위터(현 'X')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가장 먼저 계정을 등록한 국가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또 아프리카 나라 가운데 인공지능(AI) 전담 국가기관(르완다 국립인공지능청)을 가장 먼저 설치했다.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아스널의 팬이면서 막대한 광고 금액으로 '르완다를 방문하자'(Visit Rwanda)라는 국가 홍보문구를 선수들 유니폼에 새겼다. 미국프로농구(NBA) 후원을 받아 아프리카농구리그를 키갈리에 유치하는 등 각종 인기 스포츠 행사를 국가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르완다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로봇을 치료시설에 배치하고 일찍이 드론을 혈액 등 의료 수송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여성 비율은 60%를 웃돌며 세계에서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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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는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서방의 지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 지원이 몰리며 한때 정부 예산의 70%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구 약 1천400만 명밖에 안 되는 소국이지만, 군사 강국이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 국가 중 하나로 군 기강과 규율이 엄정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일례로 모잠비크 북부의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 사태와 관련, 모잠비크는 물론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른 인접국조차 제대로 손을 못 쓰던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르완다가 파병해 현지 안정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카가메 대통령 자신이 군인 출신이다.
르완다 남부의 투치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959년 다수계 후투족에 의한 소수계 투치족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이웃나라 우간다로 건너가 난민 생활을 했다. 학창 시절 카가메는 동급생들이 도로변 농장 과일을 서리하거나 교실에서 떠들면 교사에게 보고해 바로잡았다.
1979년 요웨리 무세베니(현 우간다 대통령)의 반군에 합류해 정보 책임자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청렴과 엄격한 군기로 무세베니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우간다 내에서 르완다 난민들에 대한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자 르완다애국전선(RPF)의 지도부에 들어간다. RPF는 1990년 르완다를 침공해 내전을 촉발했다.
1994년 후투족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 약 80만명이 학살당하자 RPF는 전면 공세에 나서 후투족 정권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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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후투족에게 명목상 자리만 배분하고 RPF와 투치족이 정부 요직을 사실상 장악한 가운데 카가메는 부통령과 국방장관을 겸직한 데 이어 2000년 국회에서 과도정부 대통령에 선출됐다.
연임 후에도 2015년 개헌을 통해 임기 제한을 사실상 없애고 최장 2034년까지 장기 집권의 길을 텄다. 카가메 대통령은 2017년, 2024년 대선에서 모두 99% 안팎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다.
독립 언론과 야당 등 반체제 인사에 대한 탄압도 거침없었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기자 8명이 피살되거나 실종됐으며 11명은 장기 실형을 살고 있고 33명은 해외로 망명해야 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 인사도 살해당하고 카가메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전직 해외정보 책임자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한 호텔에서 목이 졸려 숨졌다.
르완다 스파이 조직망은 해외까지 촘촘하다.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폴 루세사바기나도 국외 반체제 인사로 찍혀 2020년 8월 비행기 여행 중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납치돼 르완다로 송환·구금됐다. 가족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939일 만에 가까스로 풀려났다.
카가메 치하의 르완다는 겉으로는 더 이상 종족 차별이 없다고 하지만, 한 꺼풀 들어가 보면 부의 양극화 속에 후투족 다수가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2년 영국 보수당 정부가 망명 신청자를 아프리카로 보내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르완다에서 이를 받겠다며 양국이 협약까지 맺었다. 그러나 인권침해 논란 속에 나중에 영국의 새 노동당 정부가 없던 일로 했다.
그런가 하면 경상도 면적에 불과한 르완다는 영토가 약 89배에 이르는 이웃 콩고민주공화국의 동부 지역 반군 'M23'을 지원해 양국 간 갈등을 빚어왔다. 카가메 자신이 1994년 대학살 이후 도주한 후투족 잔당들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자이르(현 민주콩고)를 침공하고 당시 콩고 내전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렇다면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카가메 대통령은 종신 집권을 꾀하는 권력욕의 화신일까.
서방 언론 등에 따르면 카가메는 정보통 출신답게 대학살을 사실상 방조한 프랑스, 미국 등 '제국주의' 서방의 자책감을 교묘하게 역이용한다. 자신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인권탄압 비판을 방어하고 경제 지원을 이끌어내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로서 평가받는다.
소수계 출신인 그가 정적을 무차별 탄압하는 배경에는 종족 갈등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의명분과 함께,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이를 뒷받침한다는 개발독재 신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장차 은퇴하면 '젠틀맨 파머'(gentleman farmer)로서 시골에서 소나 키우며 한가롭게 전원생활을 즐기겠다고 했지만, 그의 '귀거래사'가 르완다의 진정한 화합과 발전으로 이뤄질지 두고 볼 일이다.
sungji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9월19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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