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카르텔이 키운 저질 정치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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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헌법재판소가 올해 초 득표율이 3% 미만인 정당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을 배분하지 않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3% 저지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자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군소정당이 난립해 국회가 마비되고, 전광훈 같은 극우 인사들이 의사당을 활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계산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2.26%를 얻은 자유통일당은 저지조항이 없었다면 1석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지조항이 극단주의를 막아준다는 믿음은 환상에 가깝다. 5% 저지조항을 둔 독일 연방의회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2당으로 올라선 것이 그 증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저지조항의 보호를 받아온 한국 거대 정당 안에서조차 ‘아스팔트 극우’와 구별하기 어려운 언행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지 않은가. 극단주의를 막겠다며 평등선거와 정당 다원주의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을 깎아내는 것은 본말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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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마비론도 과장이다. 저지조항이 바이마르공화국의 군소정당 난립을 반면교사 삼아 서독이 1953년 연방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독일은 연방의회 630석 전부를 정당 득표율로 배분하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의석이 쪼개지면 정부가 흔들린다. 반면 한국은 국민이 대통령을 따로 직접 뽑는데다, 비례대표는 국회 300석 중 고작 46석, 15% 남짓이다. 이 구조에서는 1.5~2%는 얻어야 한 석을 차지하니, 이미 ‘자연적 문턱’이 존재하는 셈이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저지조항 위헌 결정이 이제야 나왔다는 사실이다. 저지조항은 1963년 박정희 정권이 ‘한국적 민주주의’의 외피 아래 집권 민주공화당의 원내 지배를 보장하려고 도입한 장치다. 무솔리니 정권의 아체르보법을 본떠 제1당에 의석을 덤으로 얹어주고, 거기에 이른바 전국구 비례대표제의 저지조항까지 더한 것이다. 정작 아체르보법에도 저지조항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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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저지조항은 거대 양당의 복점(Duopoly) 카르텔을 떠받치는 구실을 해왔다. 학계는 일찍부터 위헌성을 제기했지만, 2004년 저지선은 5%에서 3%로 낮아졌을 뿐이다. 2020년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마저 반쪽짜리 ‘준연동형’에 그치자,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까지 동원해 갈수록 줄어든 비례대표 의석을 나눠 먹었다.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이토록 낮은데도 이토록 높은 문턱을 두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광역·기초의회 저지조항을 대상으로 제기된 헌법소원의 결과가 주목된다.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석 비율은 올해 4월 선거법 개정으로 10%에서 14%로 상향됐지만, 여전히 국회보다 낮고 문턱은 오히려 5%로 더 높다. 이번 헌재 결정에 비춰 보든, 독일의 헌법재판 사례에 비춰 보든 지방선거 저지조항 역시 폐지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독일에서는 기초 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아 지방의회가 집행부를 구성하지 않는 만큼, ‘안정적 정부 구성’이라는 명분이 설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지방의회 저지조항이 잇따라 위헌 판정을 받았다. 그대로 옮겨올 수는 없겠지만, 비례 의석이 훨씬 적은 한국에서 이 논리는 더욱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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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도 군소정당 의원들이 지방선거 저지조항 폐지 법안을 발의했지만, 거대 양당의 마피아식 담합 속에 밀실에서 사실상 사장되고 말았다. 양당 독점은 안정을 주는 듯 보일지 몰라도, 실은 다원주의를 질식시켜 민주주의를 허약하게 만든다. 소수정당의 문턱을 낮추는 일은 양극화와 극단주의에 맞설 해독제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저지조항을 비롯한 각종 제도적 봉쇄 장치는 결국 거대 정당의 저질 정치에서 비롯됐다. 극단주의가 자라날 토양 역시 시민을 대변하기보다 권력 유지에 골몰해온 그 정치가 만들었다. 그러므로 국회에서 몰아내야 할 것은 저질 정치이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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