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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2, 2026

[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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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밀려드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자칫 흘려보내기 쉬웠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신선 50% 행복 30%, 다정 20%’ 의 비율로 담아 보내드리는 ‘플랫 레터’
여성의 관점으로 쓰인 책, 새로운 시선의 영화, 놓치면 아쉬운 전시, 입주자님과 나누고 싶은 노래까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소개해온 플랫레터 속 코너 ‘플랫한 문화생활’을 월 1회 엮어, 마지막주 뉴스레터를 발송해드린 다음주 월요일에 보내드립니다.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친숙한 손길>

[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주름진 피부, 새하얗고 보드라운 머리칼을 가진 한 여성이 손님맞이 준비를 합니다. 넋을 놓고 있다가도 찬찬히 옷을 골라 입고 조금 엉뚱한 샌드위치도 준비합니다. 한 남자가 집에 도착하고 두 남녀는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은근한 질문을 던지는 여자와 어색한 듯 시선을 피하는 남자. 곧 차를 타고 이동하는 두 사람은 호텔을 연상케 하는 건물로 들어섭니다. 조금은 긴장한 듯한 여자를 부르는 남자의 한마디, “엄마, 다 준비됐대요.” 뒤쪽에선 간호사가 다가옵니다.

호텔이 아닌 요양원, 데이트 상대가 아닌 아들. 영화 <친숙한 손길>은 요양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60대 여성 루스의 일상을 다룹니다.

“고령은 콘돔이 아니다!”

요양원, 치매, 60대 여성 세 단어의 조합에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셨나요? 노년의 여성은 그간 가족 구성원으로서 돌봄을 받거나 주어야 하는 존재로 그려져 왔습니다. 최근 들어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지닌 ‘K할머니’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삶의 절정을 지나 “그땐 그랬지” 과거를 회상하고 삶의 지혜를 전달해야만 하는 존재로 다뤄지곤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친숙한 손길>은 새롭습니다. 영화는 루스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대신 요양원에서 매일의 관계와 그에 따르는 감정들이 생동합니다. 두려움, 흥분, 심지어는 질투, 분노, 성적 끌림까지도요. 시시각각 변하는 소리와 빛으로 표현된 루스의 감각은 그 역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보입니다.

고령은 콘돔이 아니다. 성은 늙지 않는다. 루스는 요양원 벽면에 걸린 문구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는 앞에선 상대에게 떨림을 느끼기도 때론 질투하고 초라해하기도 합니다. 노인을 성적 욕망이 제거된 존재로 바라보거나 놀림거리로 활용하지 않는 시선이 인상 깊습니다.

귀여움으로 정의될 수 없는 당신의 삶

영화는 치매 노인을 어린아이로만 보는 시선을 거둡니다. 루스는 치매로 기억을 혼동해도 스스로를 잃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의 요리사가 되어 나타난 그는 주방을 진두지휘하는가 하면 동료를 보듬는 다정함을 보이기도 하죠. 그가 꺼내든 것은 유아스러움이 아닌 카리스마입니다. 치매 노인을 자신을 잃는 존재가 아닌 오히려 각 시간대의 자아가 공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게 새로웠습니다.

요양원의 돌봄사들의 존중도 빛납니다. 그들은 시시때때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루스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요리사가 되어 나타난 루스의 다정한 조수가 되어주기도 하죠. 기꺼이 동료이자 친구가 되어주는 존중의 태도야말로 영화가 말하는 친숙한 손길이자 돌봄의 방식처럼 느껴졌습니다.

루스의 손목에 자리한 롤렉스 시계는 새삼 놀랍습니다. 그는 요양원을 고심해서 고를 만한 여력이 있는 노년 여성입니다. 그만한 경제력이 갖춰지지 않은 노년 여성들의 감각들은 어떻게 존중받을 수 있을까요? 루스의 삶 또한 결국 요양원의 시스템 안에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돌봄의 조건과 존엄한 죽음에 관해 생각하게 합니다.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 하지 마, 내가 옳든 틀리든”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가 아닌 조금은 비뚤고 엉뚱한 한 사람 루스. 기억을 잃어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한 사람의 생을 함께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안예슬, <서울 바깥 여자들: 비수도권 청년 여성의 고립과 독립과 자립에 관하여>

[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니트족, 고립·은둔청년, 쉬었음 청년, 숨은 빛 청년. 우리 시대 청년의 이름은 몇 개일까요. 넓고 모호한 정의 속 청년 여성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요. <서울 바깥 여자들>은 저자가 직접 만난 비수도권 청년 여성 11명의 고립 경험을 구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저자는 ‘은둔’과 ‘니트’, 그리고 이러한 고립 현상을 다르게 구분해야 한다고 짚으며 수도권 중심주의, 성차별과 가족주의, 능력주의가 고립을 심화시키는 사회적 맥락을 분석합니다. 저자가 비수도권 청년 여성의 고립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결심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비수도권 여성이 고립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비수도권 여성 청년에게는 일종의 가족주의가 더 크게 작동한다고 설명합니다. 지역엔 가족 밖을 상상할 만큼의 자원이 부족합니다. 정상성을 전제로 하는 가족이 없는 경우 혼자라는 감각에 더욱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가족 내에서 폭력과 방임이 발생한 경우에도 전문 기관이나 또래 집단 등 어려움을 터놓을 자원이 수도권과 비교해 제한되어 있어 고립을 가속화합니다.

저자가 제시한 리단의 ‘섬 연애’ 개념은 비수도권 청년 여성이 놓인 위험을 단적으로 설명합니다. 가족이라는 안전망에서 돌봄받지 못하고 부양 의무를 지게 된 청년 여성은 남자친구(결혼)를 대안으로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 이러한 관계인 경우, 관계가 끊어지면 더욱 심각한 고립 상태에 빠질 수 있죠. 지역의 제한된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결혼은 개인의 선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되며 이들에게 필요한 건 세계를 넓혀줄 삶의 레퍼런스라고요.

불편한 사실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의 성공만이 자기증명이 된 사회는 비수도권 여성들 사이를 가르기도 한다는 겁니다. 저자는 지역에 남은 청년과 서울로 떠난 청년 사이 고립의 양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도 능력주의적 판단을 경계합니다.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결과라는 판단은 지역에 내재한 ‘딸은 서울로 보내지 않는다’는 부모의 결정, 여성에게 닫혀 있는 지역의 기회 구조, 인적·물적 자원이 부재한 현실 등 구조적 차별을 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실패와 미취업만을 고립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해석에 반대합니다. 그가 만난 11명의 인터뷰이는 자신이 믿어왔던 세상이 무너졌을 때 고립을 경험했습니다. 그들 사이 교집합이 있다면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절망일 겁니다. 그러니 비수도권 청년 여성에겐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성공과 결혼 이외에도 적극적으로 돌봄받을 수 있는 공간,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감각할 때 고립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고립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아직 모르는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또 오래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어떤 삶을 믿고 있는지 묻는 일 말입니다.

“왜 하필 나인가 대신, 왜 나만 예외겠는가.” 김새섬, 김진경 <난파선의 선장들>

[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216일간 약 8000km의 거리를 두고 이어진 대화가 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죽음, 대화의 방향을 잡아준 나침반은 다름 아닌 두 사람이 사랑한 책들입니다. <난파선의 선장들>은 독서 플랫폼 ‘그믐’의 대표 김새섬과 스위스에 머물고 있는 작가 김진경의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을 진단받고 낙담하는 대신 남편과 함께 팟캐스트를 시작하길 택한 새섬. 지구 반대편에서 그녀의 팟캐스트를 듣곤 그녀에게 인터뷰를 제안한 진경. 그렇게 끈질기게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엔 어쩐지 슬픔보단 단정함이 묻어납니다.

삶이라는 항해가 있다면 그 끝은 난파입니다. 두 사람은 책을 연료 삼아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새섬은 자신의 삶을 들려주며 작고 단단한 그녀의 나룻배에 독자를 태웁니다. 진경은 모더레이터가 되어 죽음을 삶이라는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둘의 이야기는 죽음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허무와 무의미 속에서 길을 잃곤 했던 우리에게도 닿습니다.

평균 생존 기간이 13개월인 병. 하지만 새섬에게선 자기연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억울하지 않냐는 물음에 새섬은 ‘왜 하필 나인가’ 대신 ‘왜 나만 예외겠는가’라고 답합니다. 새섬은 세상엔 사고, 희귀병, 전쟁 등 비극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자신만 예외일 수는 없다고 얘기해요. 나의 특별함 대신 보잘것없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런 태도가 허무주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섬은 누구보다 단단합니다. 무가치함에 괴로워하기보다 넓은 세상 속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온전히 살아내려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머리를 민 자신의 모습을 보곤 ‘황비홍’ 세 음절을 던지는 위트라니. 자기연민 대신 자리한 그녀의 유머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어요.

책은 병에 대한 호기심이 차별로, 또 장애와 가난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맥락을 짚어 주기도 해요. 죽음을 향한 공포가 건강한 죽음을 이야기할 기회를 가로막아 왔다는 사실과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삶을 자평해 볼 수 없다는 진실도요. 새섬이 진경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좋은 죽음에 관한 대화는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죽음이 일깨우는 허무에 맞서기 위해 새섬이 내놓은 답은 ‘평범한 사람들이 남기는 작은 유산’이었어요. 지금의 삶에서 무엇을 추구할지, 어떤 태도를 남길 것인지가 나의 전부라고요. 삶에서 내가 택한 가치와 태도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며, 그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이 인생의 허무와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임을 일러줍니다. 지금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들의 대화는 삶을 긍정할 용기에까지 닿습니다.

“설사 여정의 끝에 보물이 없더라도 스스로 배를 몰고 떠나는 것 자체가 좋았다.” 투병 중인 새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영화 <싱스트리트>의 의 한 구절이 생각났어요.

“This is your life, you can go anywhere, You gotta grab the wheel and own it and drive it like you stole it. (네 인생이야, 어디든 갈수 있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들어서 훔친 차를 몰듯 거침없이 달려봐)”

삶이 죽음을 향해가는 항해일지라도 파도에 휩쓸리는 선원이 될 것인지 방향을 잡는 선장이 될 것인지는 오직 나만이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여정의 의미도 분명 다를 것이고요.

두 저자가 쥐어 준 나침반을 들고 저 또한 ‘난파선의 선장’이 될 결심을 합니다. 입주자분들께도 한마디 건네고 싶습니다. 기어이 부서지고 말 이 배에 기꺼이 승선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요.

2026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

[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여러분은 계절이 바뀔 때 꺼내 보는 콘텐츠가 있으신가요? 저는 날이 추워질 때면 한국 퀴어 영화들을 꺼내봅니다. 엄마가 묻어둔 첫사랑을 따라가는 여정 <윤희에게>부터 탈북 후 처음 소속감을 느끼는 소년의 성장을 담은 <3670>까지. 다양성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정들에 위로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김혜리 평론가는 “영화를 보는 일을 타인을 끈질기게 이해하는 노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퀴어 영화의 매력 역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특정한 규범을 이유로 지워왔거나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형태로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더 넓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입니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국제영화제로 국내는 물론 아시아·태평양과 그 밖의 지역에서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퀴어 영화를 꾸준히 소개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34개국에서 온 영화 116편으로 관객을 맞는다고 합니다. 상영작 중 퀴어 영화의 담론을 확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추천해보고자 합니다.

[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퀴어 가족도 이혼합니다” <이상 가족>

김지원 감독의 <이상 가족>은 이혼을 결정한 레즈비언 부부 ‘다선’과 ‘희수’, 그리고 두 딸 ‘솔이’와 ‘원이’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두 딸은 어느 엄마와 사는 것이 좋을지 갈등합니다. 해체의 위기 속 가족은 뜻밖의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두 딸은 두 엄마의 이야기를 마주합니다.

레즈비언 부부의 완성이 아닌 이혼을 다룬다는 게 이 작품의 새로운 점입니다. 영화는 법적으로 혼인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함께 아이를 키워 온 현실을 담으면서도 퀴어 가족을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가족이기에 마주해야 하는 갈등, 이별까지 이야기합니다.

감독은 “이상한 가족이면서 이상적인 가족을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가족의 완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지고 볶으며 얽히고 엮이는 퀴어 가족은 머지 않은 미래에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일 겁니다. 유쾌하고 씩씩한 독립영화만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화로 추천합니다.

“바지를 입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자유” <로즈>

시대의 압박 속 성별의 경계를 불태운 여성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르쿠스 슐라인처 감독의 <로즈>는 전쟁이 끝난 뒤 로즈라는 이름의 병사가 외딴 개신교 마을에 도착하며 시작됩니다. 병사는 땅을 돌려받기 위해 서류를 제시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그를 남장한 여자 같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하고 경계합니다. 로즈는 자유를 위해 여성에게 허락된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로즈는 신이 부여한 성역할에 자신을 가둘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트랜스젠더 서사로도 읽힙니다. 남성 가족 구성원이 없는 집에서 누군가는 남자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고, 그것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만들어진 트랜스젠더’의 서사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여성이 홀로 서기 어려워 남자로 살아가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일부 직종에선 여자가 아니라 동료로 인정받고자 스스로를 혹독히 단련하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드라 휠러의 연기는 단연 압권입니다. 흑백 화면 아래 걸음거리와 시선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다듬어낸 그의 연기는 ‘로즈’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묵직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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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네게 있어” <짐 퀸>

마지막으로 추천드리고픈 영화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프랑스 애니메이션 <짐 퀸>입니다. 영화는 파리 마레지구를 휩쓸어 놓은 바이러스 ‘헤테로시스’에서 출발합니다. 게이를 이성애자로 바꾸어 놓는 이 병에 걸린 인플루언서 짐은 자신을 짝사랑하던 은둔청년 뤼시앙과 해독제를 찾아 나섭니다.

영화 속 범상치 않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혐오의 논리를 뒤집고, 거침없이 몰아치는 유머는 성별 규범을 흔듭니다. 소수자 공동체 안에서도 무시와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짚어내는 풍자 역시 인상적입니다. 여러 커뮤니티를 통과하는 여정을 거쳐 영화는 자기 긍정과 연대의 메시지로 나아갑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영화와 함께 웃고 환호하는 관객들로 극장이 열기로 가득 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 속 연대의 메시지가 스크린 밖으로 번지는 순간을 여러분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이상한, 발칙한, 유쾌한, 끔찍한, 다정한, 바보 같은, 소중한, 그 어떤 형용사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서울 종로구 CGV 피카디리1958에서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진행됩니다.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플랫한 문화생활] “젊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나를 가진” [플랫]

“자신이 사용하는 AI에게 700자 이내로 자신을 가감 없이 분석해달라고 요청해 이를 작성해주세요.” 최근 저를 당황시킨 한 방송 제작사의 자기소개서 문항입니다. AI로 자아를 분석하는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하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인간 고유의 것인 정체성마저 AI가 판단하도록 내어주게 될 미래는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친절하고 깔끔한 챗GPT에게 대체되는 것은 아닌지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시대불문 화두였습니다. 30여년 전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며 기타 줄을 타고 흐르던 고뇌는 이젠 기술과 결합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수많은 자아들은 SNS 공개 계정과 비공개 계정을 오가고, 때론 알고리즘이 만든 버블 속에 갇히기도 합니다. 이 심오하고도 어려운 질문을 무려 60년 전부터 던져왔던 여성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린 허쉬만 리슨입니다.

전시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는 기술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그녀의 자아들을 펼쳐 보입니다. 1941년생인 그녀는 비디오부터 인터넷, AI까지 다양한 기술과 감응해왔습니다. 특히 페미니스트 작가의 시선으로 기술의 관점에서 여성의 정체성이 재현되는 방식을 미디어 아트의 형태로 표현해낸 점이 인상깊습니다.

제1전시장의 ‘카멜레온의 고백’ 섹션은 유년기에 대한 그녀의 회고입니다. 형체 없이 흩어지는 각양각색의 얼굴에서 혼란과 불안을 어렴풋이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고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분열은 기계와의 접속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임신 중 산소탱크에 의존해 치료받았던 기억을 형상화한 <숨쉬는 기계>에서는 깊은 호흡이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작품의 끝에서 느껴진 것은 생명력이었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태어나 미국 전후 TV 프로그램과 광고를 경험한 그는 ‘여성으로서 자신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구성 되는가’ 끊임없이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는 직접 ‘로베르타’라는 금발 푸른 눈의 여성이 되어 그의 삶을 몸소 겪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내기도 할만큼 구체적으로 진행됐지만 곧 종료됐습니다. 로베르타로 분한 리슨이 신변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인데요. 그 예상 가능한 마무리까지가 작품의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섹션은 제 3전시장의 ‘살과 기계’였습니다. <팬텀림>은 포토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여성의 신체가 카메라, TV, 쌍안경 등의 이미지와 결합됩니다. 침대 위 편안한 숙면의 자세도 TV 속 이미지와 결합하는 순간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이를테면 게슴츠레 감은 듯 뜬 두 눈 같은 이미지요. ‘팬텀림’이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뒤에도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 환상지를 가리킵니다. 동의한 적 없는 통념에 끊임없이 대상화되며 괴로워하는 여성들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플랫이 발행했던 기사‘기술이 여성의 이름과 경험을 재현할 때’도 생각났습니다. 챗봇, 홀로그램 등의 기술이 여성을 재현할 때 특정한 이름과 얼굴 같은 개별 서사 없이 젊은 여성의 모습만을 반복 생산해온 역사를 짚어준 글이었어요.

전시 말미의 <전자일기>에서는 수십년간 기술 속에 존재해왔던 자신을 기록하고 스스로 해석해온 리슨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는 나로 태어났지만, 하나의 나로 살아야할 이유는 없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아를 바라봐 준 것입니다. 파괴와 소멸 대신 생성과 저항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수많은 자아들은 기술에게 스스로를 내어주지 않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줍니다. 공존의 방식인 겁니다.

“나를 700자로 정의해줘” 라는 요청에 딸깍-하고 돌아오는 답을 마주하는 방법은 수만가지 내 모습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존재 가치를 불어넣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때 AI는 단 한 장의 글로 나를 정의할 수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404 에러창를 띄우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수많은 페르소나로 존재하는 자신을 인정해보고 긍정하는 것, 범람하는 기술의 시대에 여성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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