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친척’ 유인원 46마리, 오늘도 국내 동물원 철창 속에

광고
내실 안을 원을 그리듯 맴돌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거나 공에 머리를 반복적으로 부딪힌다.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불편한 듯 자리를 뜬다. 국내 전시시설에서 포착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그리고 긴팔원숭이의 모습이다.
15일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과 국제동물권단체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ast Chance for Animals·LCA)은 ‘세계 동물권 선언’ 48주년을 맞아 서울역 광장에서 유인원 전시 종식 캠페인을 벌이며 국내 동물원에서 전시 중인 영장류 현황을 공개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국내 동물원에서 전시·사육 중인 영장류는 총 775마리로, 이 가운데 고릴라(1마리)·침팬지(15마리)·오랑우탄(13마리)·긴팔원숭이(17마리) 등 유인원은 46마리였다. 지난해 국내 동물원에서 죽은 영장류는 45마리였다.
영장류는 포유류의 한 목으로, 여우원숭이와 원숭이부터 유인원까지 500종이 넘는 동물을 아우른다. 그 가운데 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 같은 대형 유인원은 사람과 함께 ‘사람과’로 분류될 만큼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야생에서는 수십㎢에 이르는 숲을 누비며 살아가고, 도구를 쓰고 무리마다 고유한 문화와 복잡한 사회 구조를 지니지만, 국내 전시시설에서 대형 유인원 한 개체당 최소 사육 면적은 31.5㎡(약 9.5평)에 불과하다.
광고

동물해방물결이 지난 8월부터 12차례 진행한 현장 관찰에서 유인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있거나 멍하니 앉아 있는 등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대구 달성공원 침팬지 알렉스(39살)는 홀로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많은 시간을 보냈고, 경남 사천 아라마루의 오랑우탄 주랑(11살)은 관람객의 시선을 피해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관찰됐다.
일부 개체들은 홀로 남겨지거나 오랜 세월 전시시설을 떠돌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고릴라 고리나(49살)는 1984년 서울대공원 개원 당시 한국에 들어와 40년 넘게 이곳에서 지내왔는데, 함께 지내던 고릴라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현재는 같은 종의 동료 없이 노년을 보내고 있다. 2015년 동물권행동 카라가 동물쇼 금지를 내걸고 벌인 ‘프리 오랑 프로젝트’의 주인공이었던 오랑(24살)은 여전히 전시시설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난해 경기 고양에서 경남 사천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광고
광고

이날 캠페인 현장에서는 유인원으로 분장한 활동가들이 철창 안에 웅크리거나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재현했다. 숲을 누벼야 할 유인원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평생 관람객에게 전시되는 현실을 보여주며, 48년 전 ‘세계 동물권 선언’이 약속한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다. 1978년 10월15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선포된 이 선언은 제10조에서 인간의 오락을 위한 동물 이용에 반대하고, 동물 전시·공연이 동물의 존엄성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국내 유인원들은 여전히 전시 대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두 단체는 “유인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사육 시설 개선이 아니라, 전시를 끝내고 각 개체의 신체적·사회적 욕구에 적합한 환경에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전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시 목적의 유인원 신규 수입·번식을 금지하고, 유인원 전시를 단계적으로 종식할 것을 정부와 지자체에 촉구했다. 또 침팬지 알렉스, 고릴라 고리나, 오랑우탄 오랑·주랑 등 유인원 4마리를 우선 보호할 수 있는 보금자리(생크추어리)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고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유인원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마다 고유한 성격과 기억, 관계와 삶의 방식을 지닌 존재들”이라며 “오랜 세월 동물원에 갇혀 살아온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시가 아닌 안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물의 권리가 더는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면서 “철창 속에서 늙어가는 유인원들이 남은 생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캠페인을 시작으로 국내 유인원 전시 종식을 위한 시민 참여를 끌어내고, 신규 수입·번식 금지와 전시시설의 보금자리(생크추어리) 전환을 위한 정책·법안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다. 시민들은 동물해방물결 누리집(donghaemul.com/freetheapes)에서 유인원 전시 종식을 위한 서명에 참여할 수 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