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가족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건강한겨레]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 환자들도 ‘잘 살기 위해’ 시행하는 의료다. 더욱 본질적으론 좋은 죽음에 앞서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말기 환자와 함께하는 생명운동이자 문화운동이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여러 오해를 바로잡고 생명운동으로서의 문화와 인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강한겨레에 월 1회 칼럼을 기고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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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어느 동료 의료진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 보이는 날이었다. 힘든 환자가 많았나 싶어 가볍게 인사를 건넸는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의료진이 상황을 설명하자 환자는 종이에 힘겹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동안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평소에도 기계에 의존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삶은 원하지 않았고, 가족들 괴롭히지 않고 마지막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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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엄마가 그럴 리가 없다”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설득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환자는 더 기다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며칠 더 미루자는 제안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며, 하루라도 빨리 인공호흡기를 중단해달라는 뜻을 거듭 밝혔다.
결국 의료진은 환자의 결정을 존중해 인공호흡기를 중단했다. 환자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그런데 곁을 지키던 가족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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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는 무엇보다 환자 자신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도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정확히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병이 깊어지고 몸과 마음이 약해진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환자가 어렵게 꺼낸 한마디, 때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바람이라도 우리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웰다잉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 “가능하면 병원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와 같은 선택을 떠올린다. 물론 중요한 결정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었다고 해서 우리가 갑자기 삶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그런데 ‘나다운 삶’은 몇 마디의 선택만으로 다 설명될 수 있을까. 앞서 이야기한 환자가 “가족들 괴롭히지 않고”라고 했던 말도 그렇다. 그 말을 환자의 뜻으로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한 번쯤 더 들여다볼 수는 있다. 환자에게 ‘가족들 괴롭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가족에게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싫었던 걸까. 가족들이 힘들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괴로웠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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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아프기 전에도 그랬고, 병이 깊어진 뒤에도 그렇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면 그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배우자나 자녀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이거나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가족처럼 지내온 사람일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그들을 편의상 ‘가족’이라고 부르려 한다. 가족은 환자를 대신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환자를 아끼고,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오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는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가족도 자신의 걱정과 마음을 환자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환자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분명히 들여다볼 수 있다.

동료 의료진에게 남았던 석연치 않은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실행한 것은 분명 중요했다. 다만 그 결정에 이르기 전, “나는 왜 가족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은가.” “가족들은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우리에게 남은 시간에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이런 이야기를 서로 나눌 기회가 조금 더 일찍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데 가족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직 건강할 때는 “아유, 나는 나중에 저런 상황 되면 그냥 깨끗하게 보내줘”하고 어렵지 않게 말한다. 먼 훗날의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병이 깊어지고 그 시간이 가까워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앞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이 가장 두려운지, 서로 어떤 마음인지를 묻는 일이 선뜻 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더 이야기하기 어렵다. 환자는 “내가 힘들다고 하면 가족이 속상할까 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낀다. 가족은 “죽음 이야기를 꺼내면 환자가 희망을 잃을까 봐” 말을 피한다. 그러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하지 못한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는다.
그렇다면 서로를 덜 사랑하면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조금 더 용감해지면 되는 걸까. 이런 대화를 꼭 환자와 가족만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이 그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라고 하면 아직도 모든 치료가 끝난 뒤에야 찾아가는 곳, 더 이상 해주는 것 없이 진통제만 맞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곳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통증이나 호흡곤란처럼 환자를 힘들게 하는 증상을 덜어주는 것은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환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지금 받고 있는 치료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우리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환자만 만나지 않는다. 가족의 이야기도 듣는다. 지금 무엇이 가장 걱정되는지, 환자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없는지 묻는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는 어느 한쪽을 설득하기보다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서로 들어볼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로는 앞으로 받을 치료와 돌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다가올 시간을 환자와 가족이 조금씩 준비할 수 있도록 곁에 있기도 한다.
말로는 좀처럼 꺼내기 어려운 마음도 있다. 우리 호스피스·완화의료팀에서는 환자가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정리하도록 돕기도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마웠던 일, 미안했던 일, 꼭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하나둘 나온다. 직접 말하기 어려웠던 마음을 글로 전하기도 하고, 그 편지가 계기가 되어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꼭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만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나는 때때로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이 긴 길을 걷다 만나는 그루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병을 안고 가는 길에는 두려워서 더는 앞으로 가지 못할 것 같은 때도 있고, 지나온 길을 자꾸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차라리 되돌아가고 싶은 때도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이 그 길을 대신 걸어줄 수도, 어느 쪽으로 가야 한다고 정해줄 수도 없다. 다만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를 자리를 내어주고, 그 곁에 함께 앉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다 마음이 조금 놓이면 혼자서는 꺼내기 어려웠던 말을 가족에게 건넬 수 있도록 거들기도 한다.
아직 건강할 때라면 가족과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나중에 나는 그냥 깨끗하게 보내줘”라는 한마디에서 그치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프고 힘들어졌을 때에도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싶은지 서로 물어보면 좋겠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된다. 우리가 바라는 마지막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편안한 마무리라면,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이런 대화가 그 준비의 시작일 수 있다.
이미 중증질환을 앓고 있거나 병이 깊어지고 있는 환자와 가족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훨씬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앞으로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말하고 싶은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꼭 가족끼리만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 대화의 물꼬를 터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을 찾아도 된다.
우리의 바람도 거창하지 않다. 환자와 가족이 남은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알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하지 못한 말보다 나눈 말이 조금 더 많이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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