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AI 양강에 밀린 유럽···라가르드 “이대로면 AI 종속”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ECB 정책위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럽의 ‘인공지능(AI) 자립’을 촉구했다. AI가 경제의 핵심 인프라가 될수록 미국·중국의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유럽 경제의 전략적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1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호프부르크 대화’에서 “유럽이 AI 자립에 실패하면 미국과 중국에 고립될 것”이라며 유럽이 고성능 AI 모델을 자체 개발하고 이를 구동할 역내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AI 기술과 컴퓨팅 역량에서 유럽은 미·중에 크게 뒤처져 있다. 라가르드 총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59개, 중국은 35개의 주요 AI 모델을 개발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1개에 그쳤다. AI 모델 개발과 구동에 필요한 컴퓨팅 역량에서도 미국은 전 세계의 약 75%를 차지하는 반면 유럽은 5%에 불과하다.
라가르드 총재는 AI가 경제 전반에 깊숙이 관여할수록 기술 의존의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수년 내 AI가 국경 검사, 세무 감사, 열차 운행, 병원 환자 관리, 은행 결제 처리 등 제반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며 “유럽이 AI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거나 접근 조건이 바뀐다면 광범위하고 즉각적인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는 어떤 무역 상대국도 유럽에 행사한 적 없는 지렛대”라며 “관세, 디지털세 등 모든 협상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우려의 배경에는 유럽과 미국의 관계 변화가 있다. 양측은 전통적인 동맹 관계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와 그린란드 병합 시도, 유럽 주둔 미군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유럽에서는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가 달라질 경우 핵심 기술에 대한 의존이 전략적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라가르드는 유럽이 AI 도입을 두고 “곤란한 선택”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데이터 보호를 우려해 AI 도입을 늦추면 성장 기회를 놓칠 수 있고, 반대로 AI를 빠르게 도입하면 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경제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잃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라가르드는 AI를 신속하게 도입할 경우 향후 10년 동안 생산성을 최대 4%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유럽이 자체 수요를 충족하기에도 데이터센터 용량이 부족하다”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미·중과의) 격차가 10년 안에 6배 이상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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