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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30, 2026

‘농담 아냐, 이 사건 건드리면…당신들 다쳐’ [금자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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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5·10총선거로 당선된 제헌국회의원들이 옛 중앙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가기록원
1948년 5월 5·10총선거로 당선된 제헌국회의원들이 옛 중앙청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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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소위원장 L : 다음은 의안번호 제21-190호 `국회 프락치사건' 고문 등 인권침해 진실규명 신청(김옥주, 김병회) 입니다. 위원님들 질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기는 한데 1심 유죄판결이 나오고 나서 2심 진행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소송이 사실상 중단됨과 동시에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해서 열 세분입니까?

간사 T : 열네분에서 열다섯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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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원장 L : 예. 열세분은 아마 남쪽에 있어도 살지 못한다는 그런 취지로 북으로 갔다고 하고 한 분은 남쪽에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그 과정에 고문, 인권침해를 가지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확정판결이 없기 때문에 확정판결 사건은 아닙니다. 제 설명이 맞나요?

간사 T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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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입수한 회의 속기록이었다. 분량은 두 쪽 반에 불과했다. 논의는 길어야 10분 조금 넘게 진행된 것으로 보였다. 속기록을 넘겨준 이는 “별거 없다”고 말했다.

살펴보니 중요한 자료였다. 과거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대한민국 국가기관 공식 회의 석상에 국회프락치 사건이 의제로 처음 올라온 순간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지방법원에서 판결이 나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항소심이 무산된 이후 71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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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는 2021년 9월30일로 기록돼 있다. 장소는 서울 중구 퇴계로 173 진실화해위원회 회의실.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는 제2소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진실화해위에 신청된 각종 사건의 진실규명 여부는 전원위원회(전체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그 전에 조사 개시를 결정하거나 조사 완료 뒤 전원위에서 최종 심의할 안건을 추리는 기구가 소위원회다. 국회프락치 사건이 그 출발선에 선 셈이었다.

이날 소위원장 L은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라면서 운을 뗐지만, 이는 역사학자 등을 포함한 전문가로 한정해서 볼 때만 맞는 말이었다. 다수 대중, 특히 독재정권 시절을 경험한 적 없는 이들에겐 생소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었다. L이 “다해서 13명이냐”고 묻자 간사 T는 “14~15명”이라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해당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국회의원은 13명이고, 변호사 등 2명까지 해서 15명이다. 이중 북한으로 간 이는 12명이다.

심의 과정에서 발언권을 가진 이는 소위원장을 비롯해 4명의 위원이었다. 소위원장 L은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인 상임위원인데,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들어온 법학자였다. 나머지는 소위원장과 같은 여당에서 추천한 비상임위원 1명, 야당에서 추천한 비상임위원 2명이었다. 위원 중엔 변호사가 많았다. 간사 T는 해당 사건을 조사하는 부서의 과장이었다.

제헌국회의원 자녀 2명이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은 각각 김옥주·김병회 의원의 아들·딸인 김진원·김영자씨다. 이들은 “국회프락치 사건에 대해 서울시 경찰국, 헌병대의 증거조작, 고문 등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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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 C : 지금 김병회 김옥주씨는 1심 판결을 받고 감금 중 전쟁이 났다는 건가요?

간사 T : 전쟁이 일어나서 그냥 풀려났습니다.

소위원장 L : 그리고 재판은 진행되지 않았죠.

위원 C : 이 사건은 너무 역사적인 사건이어서 오늘 당장 결정하지 말고

소위원장 L : 아니 그런데 이게 고문당했다고...

위원 C : 아니, 그렇기는 한데 이 사건은 너무 좀 역사적인 사건이어서 다음에 한번 깊이 심도 있게 논의를 하기를 원합니다. 이 사건은 뭐 그 당시에 북한이 중앙은행을 만들고 그 당시 일제시대 때 쓰던 돈들을 왕창 걷어서 남로당 공작금으로 내려보내서 대한민국의 물가를 폭등시키기도 했고, (중략) 너무 큰 사건이어서 저는 지금 당장 여기에서 조사개시 결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저희가 조금 신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반적인 어떤 그런 사건이 아니고, 실제 여기에 연결되었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는 자진월북을 했는데 이 사람들만 그분들하고 전혀 관계가 없이 완전히 우리는 억울하다고 유족들은 그렇게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저희가 지금 여기에서 바로 개시결정하기보다는 좀 신중하게 보고 검토를 합시다.

간사 T는 소위원장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설명을 이어가려 했지만, 위원 C에게 막혔다. C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역사적인 사건이란 무엇인가. 진실화해위원회의 설립 근거가 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법 제2조1항7호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라는 표현이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해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은 진실규명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위원 C가 꺼낸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표현은 “중요하다”가 아니라 “민감하다”는 뜻이었다.

“일제시대 때 쓰던 돈들을 왕창 걷어서 남로당 공작금으로 내려보냈다”는 것은 북한이 1947년 화폐개혁을 단행해 일제 강점기에 유통되던 구 조선은행권을 회수한 뒤 남로당의 공작금으로 내려보냈다는 주장으로 보이는데, 검증된 사실은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국회프락치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상당수는 자진월북을 했다”는 말도 사건에 관해 선입견을 주기 충분했다.

C는 국민의힘 추천을 받아 임명된 변호사 출신 위원이었다. 그는 이 회의로부터 3년여 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탄핵 심판대에 오른 대통령 윤석열의 대리인단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용감하게도, 그때에도 진실화해위원 신분을 유지했다.

위원 I : 김병회 김옥주. 이 당사자분도 월북하셨나요?

간사 T : 김옥주 의원은 6·25 때 납북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원 I : 그러면 김병회 의원은요?

간사 T : 여기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당사자들 중에 한 분 이외에는 전부 다 북한으로

소위원장 L : 북에 갔죠. 그런데 그게 납북이냐 월북이냐 라는 논란이 있을 수…

(중략)

소위원장 L : 그러면 어쨌든 사실은 우리가 이 사건이 민감하다고 한없이 밀어놓을 수는 없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러면 조금 자료를 위원님들과 공유를 하고 다음 기회에는 판단을 하도록 합시다.

위원 C : 바로 다음 기회에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을 가져야 할지는 좀 보고 합시다. 이것은 진짜 나중에 우리 위원님들 한 분 한 분이 다 나중에 여기에 대하여 언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당할지 몰라요. 제가 농담이 아니고, 우리 위원장님, 농담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금...

소위원장 L : 아니, 그런데 고문당했다고 하니까..

위원 C : 아니 고문당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제가 여기 계신 분들의 사후 안위를 생각해서 하는 말씀이에요.

위원 I : 여기 가족분들에게 납북자 신고했는지만 확인 좀 해주세요.

역시 변호사 출신 위원 I는 제헌국회의원들이 ‘자진월북’을 한 게 맞느냐며 팩트 체크를 했다. 간사 T는 “둘 다 납북됐다”고 말했다. 위원 C는 더 강경하게 나왔다. “진짜 나중에 우리 위원님들 여기에 대해 언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당할지 몰라요”라고 하더니 “농담이 아니다”라는 말을 거듭했다. 이건 ‘겁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사건을 잘못 건드렸다간 다칠 수 있다는 암시. 이에 대해 소위원장 L은 ‘고문’을 언급하면서 이 사건의 인권침해적 측면을 부각하려고 했다.

이날 위원들이 둘러앉은 대형 테이블 뒤로는 조사 실무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국회프락치 사건에 대해 검토보고서를 쓴 조사관 P도 그중 하나였다. 조사개시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깊은 비관에 빠졌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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