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토론은 없고 취향만 남은 국가미술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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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전시가 아니었습니다. 기획자가 마음에 끌리는 작가들을 그냥 모은 것에 불과해 보이더군요.”
지난 6월 개막해 지난 11일 끝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한국 현대미술사 기획전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를 살펴본 한 중견 기획자는 “전시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심란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기획자는 “국가미술관 기획전이 객관적인 연구 성과와 토론 내용을 담지 못한 채 한 개인 기획자의 취향을 발산하는 무대가 됐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미술사학계의 한 연구자는 “기준과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도 않은 채 한국 현대미술사의 단면을 기형적으로 뒤틀어 보이게 만들까 봐 걱정된다”고도 했다.
올해 초 미술관이 새해 구상을 발표할 당시 큰 기대를 모았던 ‘개념미술이 (아니)다’전은 왜 이렇게 집중적으로 입도마에 오르게 됐을까. 전시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현대미술 역사에서 이른바 ‘개념적 미술’ 혹은 ‘개념미술’ 작업을 했던 작가 28명의 작품 140여점을 1층과 지하의 거대 전시장에 펼쳐놓은 큰 전시마당이었다. 작품의 외형을 만드는 수작업보다 아이디어나 사고 자체를 중시해 20~21세기 현대미술의 주류가 된 개념미술이 한국 미술을 어떻게 언어 중심의 담론으로 전환시키며 뿌리내렸는지를 살펴보려 했다. 한국 실험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성능경·이건용 작가가 몸을 쪼그리거나 확 펴는 기지개 장면이나 땅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등의 행위 사진들을 내건 것으로 시작해 2000년대 초반 김홍석 작가의 동물우화 조형물로 끝나는 이 전시는 국가미술관에서 한국 개념미술의 역사를 조망한 첫 자리란 점에서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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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시 기간 내내 출품 작가 선정의 잣대가 보이지 않고, 작품들 사이의 역사적 맥락을 알 수 없다는 비판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많은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개념미술을 자리매김할 때 필수적으로 거명될 수밖에 없는 핵심적 사실들이 빠진 부분이었다. 1980년대 민중미술로 통칭되는 현실비판적 리얼리즘이 일어날 즈음 70년대 행위예술과 언어게임 위주의 실험미술 한계를 벗어나 현실과 접맥된 개념미술을 사진과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등으로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리얼리즘 진영 이론가였던 성완경과 ‘메타복스’ 등 여러 작가 그룹 등에 의해 진행됐으며, 이런 흐름이 90년대 미술비평연구회 같은 진보적 미술모임의 새로운 현실비판적 개념미술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기획자는 90년대 한국 미술 흐름이 전후 전 지구적 개념주의 확장 흐름과 맥을 함께한다고 전제를 달았지만, 성완경이 70년대 국내 실험미술과 80년대 민중미술에서 영향받은 당대 개념미술의 성과들을 아울러서 1999년 미국 뉴욕 퀸즈 뮤지엄의 국제 기획전 ‘세계의 개념주의: 다양한 기원들’에 관련 작품들을 출품했다는 기본적인 미술사 팩트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참여 작가도 70년대까지의 실험미술 작가들은 대부분 망라한 반면,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미술의 중요한 축이던 현실비판적 개념미술 작가들 상당수는 제외됐다. 그 기준과 근거를 거의 밝히지 않고 사물, 언어, 논리, 기호 등의 개념어를 엮은 4개의 소주제 영역으로 나눠 작품들을 섞어버린 것도 의아하고 당혹스럽다. 미술관 사정에 정통한 한 기획자는 “심층 연구가 부족했다. 전시의 연구 범위가 방대하고 참여 작가군의 폭도 넓어 애초 5~6개년 장기 전시로 전시 시기를 쪼개자는 자문 의견도 있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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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기획 역량의 허실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일본 요코하마미술관과 공동 진행했던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획전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3월까지 열렸던 요코하마미술관 전시와 지난 5월부터 9월 말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전시는 판이한 관점과 콘텐츠의 간극을 노출했다. 해방 이후 재일조선인 작가들의 리얼리즘 작품과 1990년대 이후 조선 국적 총련계 동포 3세 작가들의 현대 작품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일본 쪽 기획자와 달리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쪽은 재일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수 작고 작가 외에는 배제하고 197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제도권 모더니즘 미술인들과 이불, 무라카미 다카시 등 양국 스타 작가들의 교류 위주로 정리했다. 1990년대~2000년대 일본 지자체 미술관과 대도시 대안공간 사이 펼쳐진 여러 동시대 미술 교류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 요코하마미술관에 출품했던 총련계 출신 동포 작가의 현대 설치작품이 한국 국립미술관 전시에는 빠졌으나 전시 기간 중 서울의 다른 대안공간에서 버젓이 전시되는 코미디 같은 해프닝도 벌어졌다. 두 기관 기획자들 사이에 깊은 교감과 조율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징후만 뚜렷했고, 심층적인 공동 연구의 자취는 물론, 작가 선정의 기준과 근거에 대한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연말 일본 전시 개막식 때는 김성희 관장을 비롯한 국립현대미술관 참석자들이 조선 국적 작가들과 접촉을 삼가하겠다는 입장을 요코하마미술관 쪽에 전한 사실이 알려져 일부 작가들이 항의 의견서를 내는 등 반발이 일었고, 전시 끝물인 지난달에야 사과문을 발송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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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같은 블록버스터 전시의 최다 관객 동원 등으로 올해 책임운영기관 평가에서 최고인 에스(S)등급을 받았지만, 갈채를 보낸 미술인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국민 세금으로 스타 예술가의 흥행 전시에 치중하고 미술사 정립을 위한 장기 연구와 큐레이션 역량을 등한시한다면 미술인들의 냉소와 천대는 앞으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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