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이주노동자 연애 자제” 지침
계절노동 전면개선 대책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해 3월1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계절노동자 브로커 처벌 및 제도 전면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2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신경림 시인이 1988년 발표한 시 ‘가난한 사랑 노래’에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부제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1987년 당시 서울 길음동에 살던 신 시인이 자주 들르던 술집 주인 딸이 하루는 신 시인에게 할 말이 있다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다른 손님이 집으로 돌아가자 한 남성이 슬그머니 가게로 들어왔다. 술집 주인 딸의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고민을 털어놨다. 노동운동가였던 남자가 지명수배 중이어서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하기 힘든 상황인데 체포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결혼식을 해야 할지 물었다. 신 시인은 장소를 알아보고 주례도 서줄 테니 아무 말 말고 결혼을 하라고 권했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개척교회에서 하객 10여명이 모인 소박한 결혼식이 열렸다. 신 시인은 결혼식에서 ‘너희 사랑’이라는 축시를 읽은 뒤 집으로 돌아와 시를 한 편 더 썼다. 바로 ‘가난한 사랑 노래’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한 사랑 노래’가 세상에 나온 지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경기 여주시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 이 시를 떠올리게 했다. 라오스 국적 계절노동자가 지난달 초 입국한 지 사흘 만에 폭염 속에서 일하다 숨지자 경기이주평등연대가 여주시의 계절노동자 운영 자료를 확보했다. 이 중 고용주를 대상으로 한 ‘외국인 계절근로자 복무 및 생활관리 안내문’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안내문에는 최저시급을 보장하되 최저시급보다 더 많은 임금은 주지 말라는 권고가 담겼다. 초과 지급 시 다른 농가의 민원이 발생한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제시됐다. 늦은 밤 음주, 야간 외출뿐 아니라 “연애 및 사적 관계”를 관리하라는 내용도 있다. 농어촌의 일손 부족을 메우기 위해 단기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를 통제·감시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행정기관의 반인권적 인식이 여실하다. 그중 “근로자 간 또는 외부인과의 과도한 연애행위 자제”를 지도하라는 내용은 특히 황당하다. 가난한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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