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과 아이스아메리카노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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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웅재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여름은 좀처럼 물러설 줄 모르고 완강하게 지속되었다. 8월초의 혹서는 무더위의 대명사인 동남아시아의 기온을 저 멀리 앞질러 달아났다. 경남의 한 도시는 42도를 넘어섰고 서울의 기온 역시 39도 가까이 치솟았다. 이제 ‘동남아만큼 덥다’란 관용어는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한다. 여름 한낮의 온도가 방콕이나 자카르타를 웃돈다면 이 말은 더는 과장이 아닌 현실, 곧 은유가 비유로서의 힘을 잃고 사실의 서술로 내려앉는 셈이다. 이런 날씨에는 어떤 커피 애호가도 따뜻한 핸드드립 커피를 우아하게 내리며 하루를 시작하기 어렵다.
나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눈을 뜨면 기계적으로(기계에 미안한 말이기는 하나) 얼음을 동동 띄운 아이스커피를 찾게 되었고 회식이나 외식 메뉴도 살얼음 낀 육수의 평양냉면을 본능적으로 찾곤 했었다. 이제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한가운데, 다행히도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의 향과 온기, 김이 솔솔 나는 잔치국수나 우동의 식감을 온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는 이처럼 우리의 미각과 섭식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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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급격한 계절 변화와 한기 속에서도 차가운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슴슴한 평양냉면의 시원한 육수가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이것을 그저 변덕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취향과 일상의 감각이 사회적 기율이나 조건과 맺고 있는 관계를 놓치게 된다. 아에프페(AFP) 등 해외언론에서 주목했다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란 용어가 유행어를 넘어 유력한 문화 현상이 된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여러 사상가가 갈파하듯, 오늘날의 주체는 빅브라더의 감시나 금지 혹은 억압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긍정과 권면의 시대정신 아래 스스로를 착취한다. 억압하는 타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세우는 자신이 남는다.

여기서 목과 가슴을 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차가운’ 음료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삶이란 레이스에 임하기 위해, 이를 위한 쉼 없는 집중과 각성을 위해 선택된 일상의 기술이다. 선인들은 풀지 못한 분노와 억울함이 속에서 불이 되어 오르는 병을 화병이라 했다. 그 병은 시간의 경과에도 사라지지 않고 복잡다기해진 징후들로 축적되고 형질전환되었다. 문턱이 높아진 취업과 닿을 수 없이 멀어진 집값, 끝없이 이어지는 비교의 사다리가 속을 달군다. 이 상태는 청년 세대의 우울과 냉소를 넘어 중장년 세대의 불안과 무기력으로도 응어리진다. 계절이 바뀌어도 내부의 열이 식지 않으니 몸은 습관적으로 찬 것을 찾는다. 평양냉면의 차가운 담백함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화려한 자극들에 지친 감각이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무색무취의 맛에서 평화와 안식의 정서를 희구하기 때문 아닐까. 이처럼 ‘맛이 없는 맛’이 위로가 된다는 것은 현대성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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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쉼조차 성과와 가시성의 논리에 포섭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갓생’은 자기계발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고 ‘힐링’은 구매해야 하는 경험이 되었다. 서울의 사대천왕을 비롯한 유명한 냉면집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인증사진을 남기는 일은 일상과 휴식마저 관리하고 증명해야 하는 시대적 정동을 보여준다. 개인의 마음 챙김으로 구조적 문제의 해법을 맡기는 접근은 한계가 자명하다는 입바른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이러한 유행과 문화는 그 나름의 철리(哲理)를 담고 있다. 다만 이것이 회복탄력성 등의 논리로 심리학의 노예가 되어 다른 상상적 대안들에 대한 지혜와 숙의를 차단하는 것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말은 해야겠다. 좋은 사회란 사람들이 쓰러진 뒤 혹은 열정이 다 타버려 재가 된 뒤에 얼마나 잘 회복하는지를 실험하고 권장하는 곳이어선 안 된다.
오히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쓰러지고 소진되는지 살피고 그렇게 되기 전에 잘 살아갈 수 있는 대안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때이다. ‘평냉’의 슴슴한 시원함과 ‘아아’의 차가운 청량함은 자극과 효율, 성과를 좇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우리의 감각을 달래고 정비하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인공지능(AI)과 새로운 자본주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절벽, 장시간 노동과 성과 중심 평가가 삶을 압박하는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계발이나 회복탄력성의 예찬이 아니라 이러한 조건들을 생산하는 구조와 기제에 대한 깊은 사유와 저항, 상상과 실천을 통한 변화이다. 차가운 얼음 없이도 견딜만한 날이 오기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의 잔과 그릇이 비어 있지 않은지 살피며 이 시간의 강을 함께 건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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