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소설가→영화감독→장관→다시 영화…“가장 문학적인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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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현대 영화계에서 가장 문학적인 거장”(인디와이어)임을 다시 확인받은 이창동 감독에게 창작의 요람은 문학이었다.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나 자란 이 감독은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하면서 소설 집필을 해왔다. 1983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소설집 ‘소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를 발표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 에서 보여준 한국 현대사의 폭력과 그 격동에 휘둘리는 소시민의 비극적 삶은 이 감독이 창작의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긴 뒤에도 이어졌다.
이 감독은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1993년 박광수 감독의 제안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 작업과 연출부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에 참여하며 연출 훈련을 쌓은 뒤 1996년 직접 쓴 ‘초록 물고기’로 감독 데뷔를 했다. 서울 외곽의 공간을 통해 도시화와 산업화로 피폐해져 가는 한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초록 물고기’는 평단과 관객들에게 호평받으며 한국영화계의 질적 도약에 영향을 미쳤다. 두번째 연출작인 ‘박하사탕’은 평범한 청년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군으로 투입된 이후 서서히 무너져가는 내면을 그린 작품으로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으며 배우 설경구를 발굴하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며 데뷔한 문소리는 이 감독의 세번째 연출작 ‘오아시스’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를 뛰어나게 소화해 200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았고 이 감독은 감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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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참여정부 1기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으며 행정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듬해 6월까지 1년 반 동안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운전기사 없이 출근길 운전을 하고 취임식 대신 직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이기도 했고 열악한 연극계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써 서울 대학로가 지금의 연극 메카로 거듭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 2007년 전도연·송강호 주연의 ‘밀양’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 성공적인 컴백을 했다. 차기작 ‘시’는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사업에서 시나리오가 한 심사위원에게 0점을 받아 탈락해 논란이 됐는데 2010년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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