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 낭만? 잡부예요” “그래도 내 템포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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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청년 모임 ‘농게더링’이 지난 10월22일 충북 괴산군 감물면에서 제2회 농포럼 ‘농, 전환을 읽다’를 열었다. 농사짓는 사람, 농촌에서 다른 일로 살아가는 사람, 농촌을 연구하는 사람이 모여 농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농촌의 삶, 곧 ‘농라이프’를 함께 들여다봤다. 포럼에서 만난 청년 네 명의 이야기와 함께, 청년들의 농촌행을 ‘덕질’로 읽어낸 이순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연구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농촌에 산다고 모두 농사를 짓는 건 아니다. 전남광주 고흥의 유자밭, 강원 평창의 옛 탄광촌, 충남 홍성의 원도심 골목, 경남 함양의 할머니 부엌에서 청년들은 농사와 관광, 창업과 돌봄을 오가며 삶을 꾸린다. 청년 4명이 말하는 농촌살이의 기쁨과 무게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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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수확의 기쁨, 생각보다 큽니다”
①고흥 ‘순수유자’ 대표 채수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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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 고흥에서 유기농 유자 브랜드 ‘순수유자’를 운영하는 채수인(36)씨는 3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나 15년을 서울에서 살았다.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진 것을 계기로 아버지의 유자밭을 잇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려가 아버지 일을 이어받으려 했어요. 그 시기를 앞당긴 거죠.”
서울에서는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고 그는 말했다. “회사에선 거대한 흐름 속 부품 하나였어요. 그런데 직접 수확한 유자를 손에 쥐면, 그 만족감은 설명하기 어려워요. 치유가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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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녹록지 않다. 지난해에는 이상기온으로 노지 수확량이 반 토막 났다. 이른 봄 따뜻한 날씨에 꽃눈이 일찍 올라왔다가 4월 추위에 얼어버렸다. “수십 년 유자 농사를 지은 어르신들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말을 거의 매년 하세요.” 유기농 유자 농가는 드물다. 값이 비싸고 겉모양이 거칠어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
농촌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는 생활의 무게부터 이야기했다. 외딴집에 사는 그는 끼니를 직접 해결하고 집 관리도 손수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차는 필수이고, 생활 인프라 비용도 생각보다 비싸다. 최근 15분 거리 대리운전 요금이 3만5천원이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정말 단단히 준비하고 오셔야 해요.”
그래도 그가 고흥에 머무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릴 적 살던 곳에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가 있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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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한 평 없어도 농촌에 삽니다”
②평창 미탄면 ‘와우미탄’ 단장 최영석씨
강원 평창군 미탄면 토박이 최영석(43)씨는 서울살이가 버거워 2009년 “도피하듯” 고향에 돌아왔다. 2011년부터 생태관광마을인 어름치마을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0년에는 지역 청년들과 협동조합 ‘와우미탄’을 만들었고, 숙소를 운영하며 플라이 낚시와 박쥐 탐사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와우미탄의 출발점은 위기감이었다. 옛 탄광촌인 미탄면은 한때 인구가 1만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1500명 아래로 줄었다. 중학교 전교생은 5명뿐이다. 코로나19가 덮치자 농사, 목장, 농촌관광을 하던 청년들이 함께 위기를 넘겨보자며 모였다. 관광객들이 인근 명소 ‘육백마지기’만 보고 떠나는 게 아쉬워 마을에 머물 거리를 만들었고, 이 활동으로 2022년 ‘한국 관광의 별’ 특별상을 받았다.
최씨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농지가 한 평도 없어요.” 대신 2013년 혼자 시작한 플라이 낚시가 일이 됐다. 그는 미탄을 “취향 공동체 마을”이라 부른다. 같은 취향을 따라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도 여럿이다.
그는 농촌의 낭만을 꿈꾸는 이들에게 “여기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펜션 하면 낭만 있을 것 같죠? 잡부예요.” 가장 중요한 준비물로는 관계를 꼽았다. “인사 잘하고, 어르신 일손 거드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 분들이 오래 버팁니다.”
그는 ‘면 단위’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체험마을 같은 ‘리’ 단위 사업은 이제 일할 사람이 없고, ‘군’ 단위는 너무 크다는 것이다. “현실은 변했는데 정책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요.”

“로컬은 아직 진심이 통하는 곳”
③ 홍성 ‘초록코끼리·집단지성’ 대표 김만이씨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나 30년을 서울에서 산 김만이(37)씨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이었다. 2020년 서울시의 지역연계 청년창업 지원사업 ‘넥스트로컬’에 선정돼 충남 홍성으로 왔다. 그곳에서 홍성 농축산물로 밀키트를 만드는 ㈜초록코끼리를 창업했다. 2023년에는 홍성의 선배 창업가들과 청년 창업 공동체 ‘집단지성’을 꾸렸다. 쇠락한 원도심 골목 ‘홍고통’에 이들의 도움을 받은 청년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다.
서울 13평 아파트의 전세금을 빼서 홍성에서 가장 넓은 아파트를 얻었는데도 절반이 남았다. 그가 매긴 행복지수는 서울 70점, 홍성 85~90점이다. 힘든 건 돈, 정확히는 비교였다. “서울 친구들을 만나고 내려오면 마음 한켠이 찝찝했어요.” 그래서 정한 집단지성의 첫 원칙이 ‘손익분기점 만들 때까지 딴짓하지 말자’다. “돈을 좀 벌고 나니 ‘도시로 갈 수도 있는데 여기 사는 거다’ 싶어 마음이 편해졌어요.”
넥스트로컬로 함께 홍성에 온 10팀 가운데 남은 건 그뿐이다. 비결로는 ‘진심’을 꼽았다. “다른 팀은 농부님 앞에 서류부터 내밀었어요. 저는 하우스에 들어가 같이 쌈채소를 따며 얘기했죠. 농부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아니까요. 로컬은 100을 넣으면 80~120은 돌려줍니다.”
그는 “농촌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있는 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농촌에 자원은 많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활용할 사람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처럼 도시 청년을 뽑아 교육한 뒤 지역에 보내, 주민과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작더라도 그런 시도를 먼저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제 제가 청년들의 ‘비빌 언덕’이 될게요”
④함양 ‘숲속언니들’ 대표 박세원씨
경남 함양의 농업회사법인 ㈜숲속언니들 대표 박세원(31)씨의 별칭은 ‘콩콩언니’다. 그는 아토피를 앓던 동생의 치료를 위해 중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함양으로 이사 왔다. 고등학교 졸업 뒤 함양을 떠나 대학에서 문화콘텐츠를 전공했고, 방송국 인턴으로 일했다. 그를 돌아오게 한 건 한 방송국 선배의 말이었다. “은퇴하면 귀농하고 싶은데, 돌아갈 곳이 있는 네가 부럽다”는 것이었다. “자기 꿈을 이룬 사람이 저를 부러워하는 게 뭘까 싶었어요.” 그는 2019년 함양으로 돌아왔다.
곧장 어머니의 전통 장류 사업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이웃 산청에서 귀촌 부부가 운영하는 웹 개발사에서 1년 반 동안 일하며 지역에서 일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여기선 계속 연결돼야 오래 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숲속언니들은 농업기술센터 교육에서 만난 여성 귀농·귀촌인 6명이 만들었다. 제값 받는 판로를 함께 고민하던 모임은 여성 청년을 돕는 일로 넓어졌다. 혼자 공장을 지으며 부당한 일을 겪은 어머니를 지켜본 경험도 계기가 됐다. 2022년에는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공모에서 133개 단체 가운데 12곳 안에 들었다. 이후 할머니에게 요리를 배우는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를 3년간 운영했다. 지금은 자립해 ‘먹케이션’ 프로그램을 꾸린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온 청년들과 4~5년째 한집에 산다. “안 되면 엄마 일을 도우면 된다는 게 제겐 비빌 언덕이었어요. 이제 제가 그런 언덕이 돼주고 싶어요.” 농촌행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땅부터 사지 말고, 왜 오려는지 자신과 충분히 대화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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