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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30, 2026

대통령 주변을 배회하는 세이렌들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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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율리시스와 세이렌들’(1891). 인어의 성적 매력을 강조해온 종래의 회화 문법에서 벗어나 새의 몸통에 날카로운 발톱, 여성의 얼굴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로 세이렌을 재현했다. 관능적 팜파탈을 버리고 포식 괴물을 선택한 워터하우스의 재현 전략은 원작의 서사에도 부합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율리시스와 세이렌들’(1891). 인어의 성적 매력을 강조해온 종래의 회화 문법에서 벗어나 새의 몸통에 날카로운 발톱, 여성의 얼굴을 한 반인반수의 괴물로 세이렌을 재현했다. 관능적 팜파탈을 버리고 포식 괴물을 선택한 워터하우스의 재현 전략은 원작의 서사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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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키르케) 여신께서 세이렌 자매의 노랫소리와 꽃이 핀 풀밭을 피하라고 명하셨소. (중략) 그대들은 내가 꼼짝하지 못하도록 나를 밧줄로 묶되, 돛대에 밧줄의 끄트머리들이 매이게 하시오. 내가 그대들에게 풀어달라고 애원하거나 명령하거든, 그때는 더 많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시오.”

세이렌 이야기가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1만2110행 가운데 60행이 조금 넘는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작품 전반의 서사적 응결점으로 꼽는 이가 적지 않은 건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 유혹을 인간은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을 강렬한 시각 이미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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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사가 탈신화화된 근대 예술과 정치철학에서 빈번한 재현과 인용의 소재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세이렌이란 존재 자체가 인간을 타락과 죽음으로 이끄는 어두운 충동이자 불가항력의 외부 위력에 대한 은유로 기능해온 탓이다. 세이렌의 속삭임은 이재명 대통령처럼 미래 상황에 두려움을 가진 권력자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불안과 공포라는 내면의 그늘에서 자라난 이 반인반수의 괴물은 ‘우리가 기꺼이 당신의 족쇄를 풀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모리배들에 빙의해 대통령 주변을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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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취소’는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 귀에 속삭여진 세이렌의 유혹일 것이다. 최근엔 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에서 수석대변인에 임명된 박성준 의원, 한때 법무부 장관 하마평이 돌았던 박균택 의원이 총대를 멨다. “국정조사특위에서 검찰의 조작기소가 드러났으니, 특검법은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처리하는 게 맞다.”(8월24일 박성준) “특검 수사 결과, 수사와 기소가 조작되고 공소 유지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혀진다면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8월26일 박균택)

지난달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조정식 국회의장의 발언 이후엔 ‘개헌’이란 선택지가 세이렌의 유혹 목록에 추가됐다. 대통령이 직접 ‘어떤 경우에도 연임은 없다’고 공개 선언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대신 책임정치를 위한 연임제 개헌 필요성을 언급하며 “개헌을 위해서라면 제 임기 단축도 수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8월14일 청년정책 간담회)며 국회의장이 지핀 군불에 장작을 더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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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여론은 매번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방치하면 레임덕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40% 아래로 지지율이 추락할 것이란 경고도 잇따른다. 지난 28일 한국갤럽 조사는 국정에 대한 부정 평가 이유로 ‘부동산 정책’(24%)이 가장 많이 꼽힌 사실을 전했는데, 눈길을 끈 것은 부정 평가 이유의 2순위로 ‘(대통령) 본인 재판 회피’(7%)가 ‘검찰 권한 축소’(7%), ‘경제·민생’(7%)과 나란히 언급된 점이다. 지지율 추락의 배경에 정책 이슈와 함께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뢰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신뢰 위기가 위험한 건, 그것이 정책에 대한 평가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부동산 같은 국정의 핵심 분야에서까지 통치자에 대한 인격적 불신이 작동하면, 정책의 집행 동력이 약화되고 이후의 성과 부진은 정권의 정당성 위기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 국면에선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낸 오디세우스의 간계가 무엇보다 긴요해지는데, 미래의 감정적 폭주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통치자 스스로 법과 제도라는 돛대에 자기 몸을 결박해두는 것이다. 노르웨이 정치학자 욘 엘스테르는 ‘율리시스와 세이렌’이란 책에서 이를 ‘헌법적 사전 구속’이라 명명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도 이런 ‘오디세우스적 결단’일 것이다. 지금 이 결단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개헌을 해도 내가 연임하는 일은 단연코 없다” “조작기소 특검에 내 사건의 공소취소 권한을 주는 것은 대통령인 내가 반대한다”는 대통령의 말이다.

물론 대통령도 인간인 이상, 미래의 선택지를 스스로 없애는 게 두렵고 망설여질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어두운 충동을 제압하는 것은 영웅적 고결함이나 타고난 선함이 아닌 ‘자기 보존’이라는 지극히 계산적이고 전략적인 사유 능력임을 ‘인간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보여준다. 모두가 대통령의 입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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