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미래路] 의인 이수현이 남긴 인연…어머니가 이어온 한일 교류 25년

日 시민 기부 1천200명 아시아 유학생 지원…관계 냉각에도 장학사업 지속
신윤찬 "서로 이해하면 마음 열려…국가 차원에서 청년 공간 조성 희망"
[※ 편집자 주 =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오는 11월 3일 한일 간 공조를 주제로 '2026 미래경제포럼'을 개최합니다. 급속히 블록화하는 글로벌 경제 지형 속에서 한일 양국이 초국가적 경제 공조를 이루는 방안을 논의합니다. 포럼에서는 오랜 기간 역사적 대립 관계이던 프랑스와 독일이 손잡아 출범한 유럽연합(EU)이 막강한 경제 연합체로 자리매김한 것을 참고해 한일 양국이 단계적 협력 체제를 만들고 경제공동체로까지 나아가는 방안을 타진하고자 합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포럼에 앞서 한일 양국에서 협력 활동에 몸담아온 각계 인사들의 인터뷰를 매주 일요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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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일본 전철역에서 낯선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고(故) 이수현씨의 이름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한일 교류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씨의 어머니 신윤찬(75·辛潤贊) LSH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은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장학사업과 민간 교류 활동을 통해 한·일 양국을 잇고 있다.
이씨는 고려대 무역학과를 휴학하고 2000년 일본으로 건너간 유학생이었다.
일본어를 배우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은 2001년 1월 26일 저녁 도쿄 JR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 남성을 구하려 뛰어들었다.
일본인 사진가 세키네 시로씨도 함께 구조에 나섰지만,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를 피하지 못했다.
이씨와 세키네씨, 선로에 떨어졌던 남성 등 3명은 모두 숨졌다.
당시 한국 청년이 보여준 희생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과 감동을 안겼다.
아사히신문 등은 이 사고를 1면 주요 기사로 다뤘고, 장례식에는 모리 요시로 당시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
한국에서도 애도가 이어졌고, 정부는 이씨를 의사자로 인정하고 국민훈장 석류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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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이수현 온라인 기념관. 재판매 및 DB금지]
어머니 신씨에게 그날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소식을 들은 밤으로 남아 있다.
지난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신씨는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돌보다 늦은 밤 울린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면서 "남편은 아들이 많이 다쳤다며 아침 일찍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했다"고 그날을 기억했다.
그러면서 "일본 공항에 도착해 수많은 취재진을 보고도 아들이 숨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혹시 크게 다쳤더라도 살아 있기만을 바랐는데 끝내…"라며 25년이 지난 지금도 말을 잇지 못했다.
양국에서 쏟아진 애도는 이후 다른 청년들의 공부를 돕는 일로 이어졌다.
신씨 부부는 일본 시민들이 거리 모금까지 벌여 보내온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다.
아들이 다 마치지 못한 공부를 다른 유학생들은 이어갈 수 있게 돕자는 생각이 장학회의 출발점이었다.
신씨는 "수현이는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못 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마치고 갈 수 있도록 장학금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편 이성대씨가 아들이 다녔던 일본어 학교 측에 뜻을 전하자,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도록 함께 참여하자는 이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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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이렇게 아들의 이름을 딴 'LSH아시아장학회'가 2002년 설립됐고, 이후 일본어를 배우는 아시아 유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해왔다.
장학회가 공개한 누적 수혜자는 1천200명이 넘는다.
신씨가 특히 강조한 것은 지금도 해마다 이어지는 시민들의 기부다.
신씨는 "우리 장학회는 보통의 장학회처럼 큰 기금을 쌓아두고 이자로만 장학금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면서 "해마다 일본인들이 모은 후원금을 학생들에게 전액 나누는 방식인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이 기부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신씨는 후원자들에게 감사 카드를 보냈는데, 한 해 300명에게 보낸 적도 있고, 지난해에도 약 200명에게 보냈다고 기억했다.
신씨는 "한일 관계가 냉각됐던 시기에도, 코로나19가 번졌을 때도 장학사업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면서 "(아들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일본인 기부자들이) 얼마나 고마우냐"고 감사를 표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사고 이후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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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주부산일본국총영사 관저에서 고 이수현씨의 모친인 신윤찬 LSH 아시아장학회 명예회장이 쿠리타 신이치 수석영사로부터 일본 정부의 훈장인 '욱일쌍광장'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신씨는 "일본에서 기술을 배우던 한 여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면서 "당시 이 학생은 학교에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는데, 아들의 사고 이후 주변에서 한국인에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많이 생겼다며 고마움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씨를 기억하는 청년들의 만남은 고향 부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가 2010년 시작한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모임'에는 매년 한국 대학생과 일본인 유학생들이 참여한다.
지난달 19일에는 국립부경대에서 이씨를 기리는 한일교류캠프가 열렸다.
양국 대학생들과 지역 고등학생들은 이씨를 다룬 영화를 보고 문화 체험도 함께했다.
오랫동안 이어온 활동은 양국의 공식적인 교류 현장에서도 주목받았다.
신씨는 2024년 한일 우호친선과 상호이해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의 욱일쌍광장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이시바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가 부산 영락공원에 있는 이씨 묘소를 참배하고 신씨와 만났다.
현직 일본 총리의 이씨 묘소 참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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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이시바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와 부인 요시코 여사가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내 고 이수현 씨 묘를 참배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X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한일 양국이 앞으로 어떻게 교류해 나가야 하는 질문에 신씨는 "역지사지"고 답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내 입장이라면 어떨지' 생각해보면 서로 이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신씨는 "물론 100% 이해가 다 될 수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서로 마음이 열린다"고 조언했다.
신씨는 한일 교류 상징이 된 아들의 사연을 양국의 젊은 세대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교류와 교육을 위한 공간이 조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노력에만 기대서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어, 국가가 공간 조성에 나서주기를 희망했다.
신씨는 "내가 더는 활동하기 어려워진 뒤에도 아들을 통해 이뤄지는 양국의 교류가 계속됐으면 좋겠다"면서 "나이가 들어가니까 (기념사업이 끊어질까 봐)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정부가 나서서 꼭 살펴봐 달라"고 말했다.
ready@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18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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