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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13, 2026

‘달팽이 박사’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별세…과학 대중화 이끈 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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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과학 전도사’이자 ‘과학 에세이 개척자’인 권오길 강원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가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1940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학도병으로 끌려간 아버지는 고인이 4세 때 세상을 떠났다. 가족은 해방 뒤 한국으로 왔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백운리에서 자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초등학교 졸업 뒤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다녔다. 2015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가난과 배고픔, 배곯음이 지금의 권오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오길 강원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는 ‘1세대 과학 전도사’이자 ‘과학 에세이 개척자’자다. 생전 자신을 “연체동물 연구의 마중물이었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 때 고인이 제공한 사진이다.

권오길 강원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는 ‘1세대 과학 전도사’이자 ‘과학 에세이 개척자’자다. 생전 자신을 “연체동물 연구의 마중물이었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 때 고인이 제공한 사진이다.

단성면에 단성중이 생기면서 진학한다. 고모와 외삼촌의 도움으로 진주고를 다녔다. 생물은 ‘올수’였다. “등록금이 거의 없”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로 갔다. 졸업 뒤 중·고등학교 교사로 15년 일했다. 서울사대부고에서 가르칠 때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즈음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달팽이 사진과 연구 내용을 걸음걸음이면서 연구를 결심한다.

1981년부터 25년 동안 강원대 교수로 일했다. 1994년 제자 권유로 <꿈꾸는 달팽이>를 내면서 과학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20쇄를 찍은 베스트셀러다. 읽기 쉬운 과학책을 매년 한 권씩 내겠다고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인체 기행>, <생물의 죽살이>, <생물의 다살이>, <어린 과학자를 위한 몸 이야기> 등 교양과학서만 40권 넘게 펴냈다.

늘 책을 읽었다. 그는 “읽지 않고는 쓸 수 없다”고 했다. 위키피디아로 새로 알게 된 사실에 기뻐했다. 새로 배우는 우리말을 좋아했다.

늘 글을 썼다. 고인은 글쓰기를 두고 “그림 그리기이자 조각”이라고 했다. 1994년 3월 8일부터 지난해 9월 3일까지 32년 간 강원일보에 칼럼 ‘생물이야기’를 연재했다. 마지막 칼럼은 1248회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이다. 아들 민석씨는 연합뉴스에 “작년 이맘때는 이미 뇌출혈을 일으킨 상태였는데도 ‘독수리 타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강원일보 칼럼을 쓰셨다. 이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면서도 ‘칼럼을 미리 써놓은 게 5편밖에 안 남았다. 더 써야 한다며 컴퓨터를 가져오라고 성화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전국을 다니면서 달팽이, 조개, 오징어 등을 연구했다. 그는 생전 자신을 “우리나라 연체동물 연구의 마중물이었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강원도문화상 학술상(2000),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2002), 대한민국 과학문화상(2003), 동곡상 교육학술 부문(2016) 등을 받았다. 빈소는 강원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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