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단체 유해진 자택앞 몰려가 집회, 배우들 인신공격까지···정치판 끌려 나온 ‘암살자(들)’
고(故)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8일 한 시민이 서울의 한 극장에서 영화를 예매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작품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넘어 출연 배우와 스태프, 평론가 등 영화 관계자 개인을 향한 공격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정치권까지 이러한 흐름에 가세하면서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진영 대결로 확대되고, 작품 밖으로까지 갈등이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극우단체 신자유연대와 보수 유튜버들은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배우 유해진씨의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의 사과를 촉구했다.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는 “<암살자(들)> 영화는 북한 선동물을 커닝해 제작한 정치 선전 선동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작진과 배우들은 근현대사를 왜곡한 정치 행위를 한 공범들로 규정하고 규탄할 것”며 “우리는 앞으로 정치적 소신 발언을 하거나 정치 행위를 한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사용하는 기업에 대해 정치적 공범으로 보고 불매운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집회에는 극우 유튜버 등 30~40명이 모였다. 일부는 마이크에 대고 유씨를 향해 원색적인 욕설을 뱉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이재명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5·18민주화운동 등을 겨냥한 작품들을 만들겠다며 유씨를 향해 “출연하라”고도 외쳤다.
유씨 외에도 이민호씨와 류혜영씨 등 주연 배우들과 영화 추천평을 남긴 다른 배우들 및 영화를 리뷰한 평론가들에게까지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작품 참여자의 신상이나 가족 관계를 공개하거나 신변 안전과 생업을 위협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참석자들의 안전을 이유로 영화 관련 행사와 무대인사를 취소했다. 유씨와 이씨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고, 이씨가 출연하기로 한 영화제 토크프로그램도 취소됐다. 영화를 비롯해 출연 배우들이 진행한 광고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극우단체는 유씨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패스트푸트 업체의 본사와 대표 자택 앞에까지 집회 신고를 완료했다.
극우단체와 유튜버들이 4일 서울 성북구의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최서은 기자
정치권은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서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영화 상영 중단과 법적 처벌을 요구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음모론을 언급하거나 출연 배우들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가하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서 유씨를 두고 “북한상”이라고 발언하며, 영화에 중국 자본이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겨냥해 “부엉이바위의 진실” “미는자들”이라는 제목의 가상의 영화 포스터 올렸다.
이는 작품 자체에 대한 합리적 평가와 정당한 비판을 넘어 정치적 진영 대결의 소재로 번지면서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현재 영화를 둘러싸고 너무 정치적인 싸움으로 정쟁화되고 있다. 출연 배우 비난과 광고제품 불매 등 공격과 여야 대립이 격화되는 건 비합리적인 현상”이라며 “영화에 나온 내용을 역사 연구자들이 나서서 학술적으로 검증해서 합리적인 의혹인지 단순 음모론인지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토론을 하든지 대립을 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는 그간 <그것이 알고싶다>나 <꼬꼬무> 등에서 다뤄졌던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갖고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영화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영화인들과 영화 산업에 대한 위협”이라며 “이미 영화가 정치 진영의 싸움이 됐고 보수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수단이 됐다”고 했다. 그는 “배우들과 제작사, 투자사 등에 이렇게 공격을 하는 것은 역사 왜곡 논란과는 다른 문제”라며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자체를 찍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배우들에 대한 인권침해로까지 볼 수 있다”고 했다.
영화계에서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은 지난 2일 ‘영화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현재의 논쟁이 작품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제작사와 감독, 배우와 스태프 등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위협으로 확산돼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역시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작품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작사와 감독, 배우, 스태프 등 개별 창작자에게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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