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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7, 2026

“하루 한끼 먹고 비행기장 일…어디 배고파서 살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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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이주연씨가 아버지에게 들은 태평양 밀리환초 강제동원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지난 11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이주연씨가 아버지에게 들은 태평양 밀리환초 강제동원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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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한가운데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한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추석 명절 가족의 소중함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사장 이국언)에 아버지 고 이재용(1908∼1996)씨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와 아버지가 포로 시절 썼던 타올 등 유품을 공개한 이주연(70)씨는 27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재용씨가 일제강점기에 남태평양 남양군도로 끌려갔다가 무사히 귀향한 뒤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다. 이씨는 최근 이사를 위해 집 정리를 하던 중 아버지 육성 녹음테이프와 유품 등을 발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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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이야기를 들었던 이씨는 1984년 어느 날 부모님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있던 테이프 6개에 나눠 급히 녹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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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테이프에는 남양군도 밀리섬(밀리환초) 활주로 공사와 미군 포로시절, 해방 뒤 귀국과정까지 이재용씨의 젊은 시절 고통이 담겨 있다.

전주 출신으로 광주 양림동에 살던 이재용씨는 33살 때인 1942년 3월께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 해군 군속(군무원)으로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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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42년 강제동원돼 1945년 해방 직전까지 태평양 밀리환초(밀리섬)에서 활주로 공사에 강제 노역을 당한 이재용씨.                             이주연씨 제공
일제강점기인 1942년 강제동원돼 1945년 해방 직전까지 태평양 밀리환초(밀리섬)에서 활주로 공사에 강제 노역을 당한 이재용씨. 이주연씨 제공

재용씨는 테이프에서 “전라남도 800명, 전라북도 800명, 충청남도 800명, 충청북도 800명, 경상남도 800명, 경상북도 800명 등 4800명이여. 부산에다가 펐어”라며 “큰 배를 타고 갔는데 동서남북 분간을 못 해. 바다가 넓으니까”라고 밝혔다.

재용씨는 또 “거기는 전부가 사탕대 밭이야. 설탕가루 만드는. 열대지방인디 밥이란 것을 몰라. 밥을 안해 먹는 데니까”라며 “고기만 잡아먹고 사는 데다 그 말이여. 나무 잘 타고, 물 수영 잘하고, 고기 잘 잡는 것은 일등이여”라며 낯선 섬에 대한 인상을 남겼다.

재용씨는 이곳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활주로 공사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재용씨는 “밥을 주는디, 하루에 한 끼니씩밖에 안 준다 그 말이여. 어디 배고파 살것냐”며 “송정리 마냥으로 비행기장에 일을 시키더라 그 말이여. 기한이 없어”라고 증언했다. 재용씨는 이어 “저녁에 미군이 공습을 와서 방공호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다 차 버려서 문 앞에 섰는디 벼락 치는 소리가 발딱 뒤집어진 마냥 들렸다”고 말했다.

재용씨는 1945년 4월 미군에게 포로로 붙잡히면서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하와이 포로수용소에서 머물다 1946년 1월 미군 수송선을 타고 출항해 한달 뒤 인천항을 통해 귀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로수용소에서 조선인들이 발행한 잡지 ‘자유한인보’ 7호에는 재용씨의 이름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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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씨가 1984년 아버지의 생전 음성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김용희 기자
이주연씨가 1984년 아버지의 생전 음성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김용희 기자

재용씨의 강제동원 시절 혼자 광주에 남았던 어머니 장판례(1912∼1988)씨는 식당 일 등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주연씨는 아버지가 미국에서 가지고 왔다는 낡은 타올도 공개했다. 타올에는 ‘MADE IN USA’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씨는 “아버지가 하와이에서 가져왔다며 어머니가 장롱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고통받았던 사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 유품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이씨의 유품을 향후 옛 전남방직 자리에 생길 예정인 일제강제동원역사관(가칭)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국언 이사장은 “이재용씨 육성은 일제강점기 남양군도의 사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이주연씨처럼 강제동원과 관련한 자료나 물품을 가지신 분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우리 단체에 연락하면 귀중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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