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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8, 2026

운명을 묻는 마음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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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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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오래전 독특한 역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방송국이 많은 상암에서 유명하다던 그는 사주를 시처럼 풀어준다고 했다. 낭만적이고 아름답기보다는 독특하고 재밌는 문장으로. 이를테면 ‘장미밭에 난데없이 자라난 토마토’나 ‘스포츠카를 몰고 들판을 달리는 소녀’ 같은 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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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막론하고,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초록은 동색이니, 오늘의 운세를 열심히 확인하는 내 주변이라 유독 그런 사람이 많은 건지도 모른다. 본인의 생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후배부터 스마트폰에 만세력 앱을 설치하고 신입사원의 사주를 풀어주는 선배까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업인 사람들에겐 사주야말로 가장 오래되고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도구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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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와 관련된 취재를 했던 적이 있다. 새로운 기획이 필요했던 시기에 우연히 들었던 선배의 말에서 건져낸 소재였다. ‘한때 부산에 전국에서 손꼽히는 역술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있었다던데.’ 또렷한 계획이 있었다기보다 흥미로운 인물의 행적을 좇아보자는 생각에 취재를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권력가와 재력가는 물론이고, 전국에서 온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는 소문의 역술가. 어렵게 만난 취재원들은 저마다 다르게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위대한 경지에 다다른 도사와 교활한 사기꾼, 믿음직한 조력자와 파렴치한 배신자 사이를 오갔다. 무협소설이나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은 이야기를 수집할수록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취재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사주 명리에 대한 관심과 잡다한 지식만 고스란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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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에스엔에스(SNS)에서 인공지능에 입력하면 정확한 사주 풀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프롬프트를 종종 발견한다. 인공지능에 사주 풀이를 요청하는 게 일종의 재밌는 유행인 모양이다. 개인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이니 그리 대중적인 유행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인공지능에 자신의 운명을 묻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건 어쩐지 재밌고도 쓸쓸한 시대의 단면처럼 느껴진다.

숨이 찰 만큼 빠르게 변하는 요즘, 외부의 변화를 따라잡느라 자신을 들여다보고 사유할 여유가 없는 우리는 사주팔자에 기대어 인생을 탐구하고 싶은 걸까. 생년월일시에 따라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여덟 개의 글자. 그것들의 고유한 성질과 의미, 관계를 들여다보면 나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헤아릴 수 있다는 원리는 모든 게 불투명한 이 시대에 얼마나 솔깃한 이야기인가. 넘치는 정보와 예측에 갈피를 잃은 우리는 그렇게 남이 만든 프롬프트를 빌려서라도 나를 알아가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한낱 인간으로 불가해 하기 짝이 없는 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기댈 수 있는 지도 한 장이 절실한 때가 오는 건 아닐까. 어떤 목적지가 좋을지, 그곳으로 향하는 여러 길 중 뭘 선택할지, 그 길 끝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줄 명쾌한 지도가 필요한 날들. 그때 누군가는 문학을, 누군가는 종교를,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운명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불안하고 숨 가쁜 오늘을 어떻게든 통과하고 싶어서 운명을 묻는 사람의 질문 뒤에 숨은 마음은 무엇일까.

아주 오래전, 부산 영도에는 ‘점바치 골목’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영도다리 앞에서 만나기로 한 가족을 기다리다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 점쟁이를 찾게 된 게 시작이었다. 영도다리 앞에 하나둘 생겨난 점집들이 모여 점바치 골목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곳에서 점괘를 묻던 사람들이 원했던 건 운명이었을까, 희망이었을까. 오늘날 인공지능에 사주팔자를 묻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크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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