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사람 손으로 다시 새기는 팔만대장경…“인류의 미래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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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칼 든 손끝의 힘을 조절하며 한획 한획 파내고, 나무의 결을 살피고 마음을 모으는 시간. 800년 전 고려인들이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며 팔만대장경을 새겼던 그 손길이 오늘 다시 이어진다. 인공지능(AI)이 정보를 빠르게 생산하고 전달하는 시대, 해인사가 사람 손으로 8만1258장의 대장경을 새기는 대장정에 나선다.
법보종찰 해인사는 오는 29일 경남 합천 해인사 법계탑 마당에서 ‘장경도감 대장경 판각 고불식’을 봉행한다. 판각 프로젝트를 부처님께 알리는 고불식에 앞서 법보전 앞마당에선 ‘판각 조성 원만성취 만일기도’ 입재를 진행한다.

판각 프로젝트는 현존하는 팔만대장경 경판을 단순 복제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경판을 탄생시킨 정신과 원력, 전통 판각기술, 한 글자를 새기는 과정에 담긴 수행과 책임의 가치를 계승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3세기 고려는 몽골의 침략으로 국가 존립이 위협받자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며 대장경 조성에 나섰다. 해인사는 당시의 원력을 인류의 미래를 향한 기원으로 넓힌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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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일 주지스님은 15일 “8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대장경을 새겼다면, 오늘 우리는 사람과 생명, 평화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다시 대장경을 새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판각 프로젝트를 통해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전쟁과 갈등,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핵무기 위협, 공동체의 단절,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 등의 위기를 극복할 힘을 축적한다는 의미다. 프로젝트 주제를 ‘다시 새기는 대장경, 인류를 향하다’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글자를 새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인사는 대장경 디지털화와 다국어 번역을 통해 세계인이 부처님 말씀을 접하도록 하는 일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기술이 대신하기 어려운 정성과 인내, 참회와 발원,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사람 손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혜일 스님은 “인공지능이 정보를 새긴다면, 인간은 원력을 새겨야 한다. 기술이 빨라질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과 책임은 더 깊어져야 한다”며 “경판만이 아니라 사람과 기술, 수행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남기는 일이다. 우리는 다음 1천년을 살아갈 인간의 마음을 다시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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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앞으로 10년 동안 나무를 마련하고, 다듬고, 경판에 조각칼로 글자를 새기면서 기술과 정신을 전승할 사람을 길러낼 계획이다. 이미 2024년 판각학교를 만들어 전문 인력을 양성해오고 있다. 해인사 장경도감 미디어 전략을 총괄하는 성기홍 박사는 “초기 스님 교육생을 중심으로 개설한 판각학교를 2기부터 일반에 개방했고, 현재 5기 교육생까지 500명을 배출했다”며 “이들 가운데 역량이 뛰어난 100여명이 실제 판각 작업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경판 재질 분석 결과, 산벚꽃나무 70%, 돌배나무 30%로 구성된 사실을 확인하고, 일단 목재 300톤을 확보해 바닷물에 담그는 작업도 시작했다. 팔만대장경처럼 수백년 동안 썩지 않는 경판을 만들기 위해 바닷물에 3년 정도 목재를 담갔다 건져내 말리는 과정 등을 거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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