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는 ‘자라’ 입지 말라고?”…20대 때 입던 옷인데 촌스러워 보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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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자라(ZARA)나 유니클로를 입으면 안 되나요?” 지난해 온라인에서 확산한 ‘영포티’ 논쟁은 중년의 옷차림을 둘러싼 세대 간 시각차를 드러냈다. 젊은 세대가 즐겨 입는 스트리트 브랜드와 최신 아이템을 걸친 40대 남성은 ‘젊어 보이려 애쓰는 아저씨’라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렇지만 유니클로, 자라 등 제조·유통 일원화 의류(SPA) 브랜드는 현재 40대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유니클로는 2000년대 초반 국내에 본격 진출했고, 자라도 2008년 한국 시장에 들어왔다. 지금의 40대 상당수가 20~30대 시절부터 접하고 즐겨 입었던 브랜드다. 과거 유행을 이끌었던 옷을 지금도 입는 것 자체가 문제일 리는 없다.
그런데 예전에는 멀쩡했던 옷이 어느 순간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비싼 명품 브랜드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어도 세련된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려 애쓰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패션 전문가들은 이를 ‘중년 패션의 딜레마’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유행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신체, 자기 정체성, 사회가 요구하는 연령별 옷차림 등 규범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왜 익숙했던 옷차림마저 낯설어지는지, 중년의 패션을 둘러싼 변화를 살펴봤다.
옷차림과 나이의 관계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해온 학자들은 옷이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유행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영국 켄트대 사회학자 줄리아 트위그 교수는 2007년 학술지 ‘에이징 앤드 소사이어티’에 발표한 논문 ‘의복, 나이와 신체’에서 옷이 단순히 신체를 가리는 수단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옷은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사회가 특정 연령대의 사람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트위그 교수는 기존 연구를 검토해 나이가 들수록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며, 이를 어겼을 때 주변의 시선이나 도덕적 평가가 뒤따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옷은 자신에게 부여된 나이의 의미에 저항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옷을 입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질까. 트위그 교수는 2013년 저서 <패션과 나이: 의복, 신체와 노년>에서 중년 이후 여성들의 옷차림과 신체 인식에 관한 인터뷰 연구를 소개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탈의실의 순간’이다. 젊은 시절 즐겨 입었던 옷을 오랜만에 다시 입어봤을 때, 옷이 몸에 맞지 않거나 예전과 달리 자신의 얼굴과 체형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을 뜻한다. 옷은 그대로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달라져 있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50대 후반 여성은 예전에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옷을 입어본 뒤 “아, 이게 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옷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거울에 비친 얼굴과 체형은 세월의 흐름만큼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옷이 지금의 자신에게는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좋아했던 스타일을 더 이상 예전처럼 소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경험이 남녀에게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트위그 교수는 2020년 학술지 ‘에이징 앤드 소사이어티’에 실은 후속 논문 ‘의복과 젠더, 나이의 체화: 남성과 남성성’에서 영국 켄트 지역의 58~85세 남성 2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특별히 패션에 관심이 없는 일반 남성들로 구성됐다. 연구 결과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옷을 나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약했다. 여성들이 특정 옷을 입기에 너무 젊거나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을지 고민하는 반면,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도 과거의 옷차림을 유지하는 데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는 옷차림에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만 신체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는 있었다. 목둘레가 굵어져 셔츠 사이즈를 키우거나 슬림핏 대신 여유 있는 옷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트위그 교수는 여성의 옷차림이 신체 노출과 몸의 형태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젊은 외모에 대한 사회적 기준도 여성에게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나이가 들면서 옷을 고르는 일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신체 변화만이 아니다. 과거의 취향과 현재의 생활환경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도 한다. 미국의 중장년층 권익단체인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2019년 ‘45세 이후 스타일을 업데이트하는 8가지 방법’을 소개하면서 20~30대에 잘 어울렸던 옷이 40~50대에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뉴욕의 개인 스타일리스트 트레이시 골드는 여성들이 40대 이후 출산이나 폐경에 따른 신체 변화뿐 아니라 결혼 생활 변화, 새로운 관계, 직업 변환 등 생활의 전환기를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체형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사회적 역할이 바뀌면서 옷을 입는 목적과 취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50대 이후 나이에 맞는 옷차림을 위한 새로운 규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이가 들면서 옷차림도 달라져야 하는 이유를 짚었다. 패션 기자 제스 카트너 몰리는 22세 때 청바지와 검은색 티셔츠를 입으면 자연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낼 수 있지만, 30년 뒤 똑같은 옷을 입으면 오히려 존재감이 희미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옷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이에 따라 사람의 분위기와 인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소재와 색상, 액세서리 등을 활용해 옷차림에 조금 더 공을 들일 것을 제안했다. 단순히 젊을 때 입던 옷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스타일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를 초월한 전설적인 패션 아이콘 아이리스 아펠. 사진 Iris Apfel 인스타그램
그렇다고 나이에 맞는 옷차림에 정해진 규칙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가디언은 100세가 넘어서도 화려한 색상과 독특한 액세서리를 즐긴 패션 아이콘 아이리스 아펠을 사례로 들며 가죽 바지나 짧은 치마를 나이 때문에 포기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50대 패션을 이해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겪는 패션의 딜레마도 다뤘다. 무엇을 입어도 괜찮다는 메시지와 나이에 맞게 입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충돌하면서 오히려 옷을 고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스타일리스트 나타샤 머슨은 옷장에 옷이 가득하지만 정작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중년 여성들을 자주 만난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는 40대 이후 입어야 할 옷과 피해야 할 옷에 관한 조언이 넘쳐나고, 잘못 입었다가 주변의 비웃음을 살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60대 스타일리스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인 카렌 아서는 이런 나이별 패션 규칙을 두고 “그런 규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옷을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패션업계가 젊은 외모를 이상적인 기준으로 제시하는 현상도 중년의 옷차림에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와 영국 등의 연구진은 2025년 학술지 ‘저널 오브 매크로마케팅’에 발표한 ‘더 이상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들어 보이면 안 되는가’라는 논문에서 패션 매체의 고령층 재현 방식을 세 차례 연구했다. 연구진은 패션 잡지에서 나이 든 모델이 제한적이고 정형화된 방식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령층이 패션 매체에서 충분히 대표되지 못하는 현상은 당사자들이 패션과 외모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젊음이 패션의 기본적인 미적 기준으로 작동할수록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와 옷차림을 그 기준에 맞춰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발망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탱은 지난해 보그 아라비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섹시함은 젊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과 태도에 있다. 나이와 아름다움을 연결하는 고정관념이야말로 패션을 가로막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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