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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November 4, 2026

‘젠지의 반란’, 유럽의 몰락인가 한국의 침묵인가 [신진욱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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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제트(Z)세대가 나서서 해결한다’라는 구호 아래 열린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부자들을 먹어 치우자’(Eat the rich)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제트(Z)세대가 나서서 해결한다’라는 구호 아래 열린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부자들을 먹어 치우자’(Eat the rich)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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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프랑스에서 불붙은 ‘젠지’(Z세대)의 대규모 시위가 한달 이상 계속되면서, 이탈리아·벨기에·독일·스페인 등으로 확산됐다. 한국에서 이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유럽의 몰락’, 혹은 쇠퇴와 위기의 증거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청년들의 항의는 단지 절망의 표현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역동성의 신호일 수 있다. 오히려 심각한 고통과 불안이 있는데도 이를 집단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 더 깊은 위기인지 모른다.

한국에서 흔한 접근법은 폭력과 무질서의 광경에만 초점을 맞추어, 마치 문명이 붕괴하는 듯이 간주하는 것이다. 여러 시위에서 폭력이 뒤따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다수 평화적 참여자와 일부 극단 세력을 구별해야 한다. 아울러 공권력의 폭력도 간과할 수 없다. 프랑스에선 초기부터 경찰이 최루탄, 물대포 등으로 강경 진압을 해서 청소년들이 분노했고 부모, 교사들까지 거리로 나왔다. 집회 참가자들은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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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구조적인 차원에서 ‘유럽의 몰락’을 말하는 접근들이 있다. 이번 사태가 정부의 재정 위기와 공공부채 누적에서 초래됐으며, 그 원인은 조세와 복지의 과잉, 혁신과 성장의 지체라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복지국가를 추구한 ‘유럽 모델’은 실패했고, 사회체제 전반이 붕괴하고 있다는 거대담론도 등장한다. 이런 시대진단 자체는 무의미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공허한 사변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 현실을 면밀히 탐구해야 한다.

유럽 청년들은 사회의 큰 문제들을 중심 의제로 제기한다. 교육에 대한 공공지원 부족, 학업과 직업훈련의 비용 부담, 상류층에 유리한 대입 제도, 소득 불안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고, 감당하기 힘든 주거 비용, 기후 재난에 대한 두려움, 극우의 주류화, 고조되는 전쟁 위험 등이다. 이는 막연한 ‘유럽 모델’의 한계점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세계적 현안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의 이란 침공, 에너지 위기와 고물가, 살인적 폭염, 민주주의 후퇴 등 최근 수년간 누적된 글로벌 복합위기가 인간 행위의 표층으로 분출된 것이 이번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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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지 청년들의 절망이 아니라,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하자고 호소하며 그들이 일어섰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는 ‘제트세대가 나서서 해결한다’(Gen Z Regelt)라는 이름의 단체가 설립되어 집회를 주최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변화의 요구뿐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것,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며, 사회에 확인시키는 것이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정치적 주체성, 자치, 자결, 연대가 이번 시위의 핵심 정신이다.

그러므로 젠지 시위를 단지 ‘세대’ 현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교육 재정과 연금 등 세대 간 불공정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쟁점들도 있지만, 이들의 시위는 사회 전체, 나아가 인류의 현실과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고, 그들의 부모·조부모 세대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더구나 이번 시위에서 청년과 더불어 중요한 주체는 노동조합이다. 그들은 범세대적인 계급적 인식과 이익을 대변한다. 프랑스에서는 노조와 청소년들이, 이탈리아에서는 대학생과 화물 노동자, 남부의 농민들이 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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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투쟁은 한편으로 오늘날 유럽이 직면한 문제를 드러내지만, 그와 동시에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갈등이 분노의 표출로 끝난다면 파괴적이지만, 사회문제를 드러내고 문제 해결의 주체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면 건설적 기능을 한다. 유럽의 현대사는 치열한 갈등과 개혁을 통해 발전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1848년 유럽 민중혁명, 1968년 개혁운동이 없었다면 오늘의 유럽도 없을 것이다. 그런 역동적 전통 속에서 ‘젠지의 반란’을 봐야 한다.

이런 유럽의 격동은 한국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사회는 유럽보다 불평등과 삶의 불안정이 덜하고, 더 성공적인 사회체제라서 청년들이 조용한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2023년 프랑스 0.299, 독일 0.307이었고, 한국은 그보다 훨씬 높은 0.323이었다. 주택과 자산 문제도 심각하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의하면, 39살 이하의 자가보유율은 2019년 40.7%에서 2025년 27.7%로 급락했다. 기획예산처가 2026년 7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청년층은 ‘부동산·주거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61.6%가 20년 후 미래를 비관했다.

한국 청년들은 또한 불행하고 고독하다. ‘세계행복보고서 2026’에서 25살 미만 응답자의 행복도 자기평가 점수는 10점 만점에 스웨덴 7.05, 이탈리아 6.99, 독일 6.92였는데, 한국은 6.43으로 조사 대상 147개국 중 73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사회적 연결과 고독’ 보고서에서 한국은 ‘의지할 친구나 가족이 있다’는 응답이 가장 적은 국가군에 속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유럽이 ‘몰락’해서 젊은이들이 뛰쳐나온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에 심각한 고통과 불안이 있는데도 ‘침묵’을 강요하는 조건들이 있는가? 한국에서는 ‘과잠’ 입은 엘리트 청년들의 윤 어게인, 혐중, 반공 시위는 활발한 데 반해, 불평등과 불안정의 고통이 집중된 노동 청년들은 자기 상황을 사회적 담론, 정치적 의제로 만들 여력과 자원을 갖지 못했다. 반복되는 실직과 구직, 고된 노동, 사회의 차별, 상징자본의 빈곤 속에서 고통은 언어와 행동으로 전환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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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정말 믿을 수 없이 힘들어요. 단지 삶을 위해 이렇게 많이 일해야 한다니!” 프랑스24 방송의 집회 현장 인터뷰에서 리지씨는 구호와 노랫소리 사이로 씩씩하게 말했다. 그도 같은 말을 했다. 올해 2월에 스스로 생을 마친 28살 청년 김진휘. “너무 고통스러워요, 아빠.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어.” 그는 축구장 14개 면적의 자동차 생산 공장에서 유일한 소방 안전관리 담당자로 일하면서 격무와 폭언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회를 향해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주먹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생을 마친 그에게 그저 한없이 미안하다. 왜 우리 사회에는 고통받는 청년들이 힘차게 목소리 내고, 서로 연결되고, 세상에 항의할 기회가 이렇게 부족한가?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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