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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8, 2026

상쾌해서 두려운 가을날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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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는 지난 5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 코스모스가 피어있다. 연합뉴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는 지난 5일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 코스모스가 피어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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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로 | 클리프(Climate in Fact) 대표

재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다.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하루. 모니터의 복잡한 그래프와 지도를 들여다보는 과학자. 갑자기 휘둥그레지는 눈.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화면을 응시하며 다급하게 주변 연구진을 불러 모은다. 정보를 공유 받은 동료들은 뭔가 오류가 있을 거라며 자료를 검토하지만 확인을 거듭할수록 관측이 옳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만 속속 발견된다. 관련 당국과 정치인들은 사실을 전달받고도 이를 알릴지 말지, 조치를 취할지 말지를 놓고 우왕좌왕, 옥신각신하다 때를 놓친다. 결국 재난은 닥치게 되고….

‘투모로우’와 ‘더 웨이브’, ‘돈 룩 업’, ‘문폴’, 한국영화 ‘해운대’ 등 수많은 재난 영화가 이 정형화된 서사를 공식처럼 따랐다. 뻔한 전개이지만 그 익숙함 때문에 우리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상황에 몰입하고 다가올 재난을 미리 상상하며 긴장하게 된다. 클리셰의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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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가 대략 20~25도라는데, 지난 한 달간 사나흘 정도를 뺀 모든 날의 낮 기온이 저 범주 혹은 그 언저리에 머물렀다. 사람에게 좋은 날씨가 ‘정상’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 지난달 15일부터 한 달간 온도를 보면 총 30일 가운데 평년보다 더운 날수가 서울은 21일, 부산은 26일에 달했다. 같은 기간 서울 기온은 평년보다 1.77도, 부산은 1.73도 더 높고, 평년보다 더웠던 날만 따지면 서울은 무려 2.73도, 부산은 2.04도나 평균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이 수치도 너그럽게 봐서 그렇다.

예전에 썼던 평년값으로 계산하면 이 정도 편차는 약과다. 무슨 말인고, 하면 ‘평년보다 덥다’고 할 때 ‘평년’은 고정된 기간이 아니란 뜻이다. 요즘 20대에게 50년 전 온도를 기준으로 오늘의 날씨를 설명하면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을 것이므로, 기상청은 10년마다 최근 30년의 평균치를 새로 산출해 평년값을 갱신한다. 그래서 30년 전에 썼던 ‘라떼 평년’과 비교하면 지난 한 달 서울은 평균적으로 2.65도, 부산은 2.54도 더 더웠고, 특히 평년보다 더웠던 날만 따지면 서울 기온은 3.42도나 더 높았다. 기온을 하루하루 누적한 적산온도로 시간의 흐름을 재는 여러 동식물은 꽤 헷갈릴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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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시간을 만끽하자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 보면 보통 이렇게 안온한 일상일 때 뭔 일이 벌어지던데….

페루·에콰도르 앞바다에서 서쪽으로 국제날짜변경선 방향까지 이어지는 적도 태평양 중심부는 엘니뇨 감시구역이다. 이 해역의 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지속하면 엘니뇨라 부른다. ‘겨우’ 0.5도이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벌어질 수 있어 과학자들은 이 구역을 유심히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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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여기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감시구역 온도는 8월엔 평년보다 2.5도, 지난달엔 2.8도 높았다. 이달 첫 일주일 동안엔 3.3도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영화라면 주인공과 동료들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세상에, 바다가 끓어오르고 있어!” 이게 끝이 아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0~12월 평균값이 평년보다 3.7도나 웃돌 것으로 내다본다. 상상도 과하다고 했을 수치다.

우리의 상쾌한 가을날은 단지 운이다. 유럽은 초여름부터 폭염에 타들어 갔고, 네팔에선 빙하가 붕괴해 수천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그리고 지금 적도 태평양은 전례 없이 달아오르는 중이다. 익숙한 전개다. 재난 영화의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경고를 무시하면 대가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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