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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14, 2026

“악보는 연주를 위한 레시피일 뿐”…테너와 피아니스트의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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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왼쪽)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 아템포 제공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왼쪽)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 아템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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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차림으로 노래하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와 악보를 앞에 두고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때론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대 의사를 밝힌다. 지난해 발매한 ‘트와일라잇’ 등 앨범 3장을 함께 냈지만, 리허설은 그저 정답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의 한 연주홀에서 리허설을 마친 뒤 만난 두 사람은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 치열한 협상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저는 전통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이언은 어떤 대목을 더 빠르게 연주해야 한다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죠. 저는 그런 표현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편이에요. ‘저는 이렇게 연주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선호의 문제이니 저 역시 제 생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죠.” 지오지니는 성악가와 피아니스트의 동등한 위치를 강조했다.

보스트리지도 “지오지니는 직접적이고 전달력이 강한 접근을 선호하지만, 저는 조금 더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라며 차이를 인정했다. “악보에 적힌 모든 지시를 절대적인 규칙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다른 방식으로 연주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죠. 저는 음악을 좋은 연주를 만들어 가기 위한 ‘레시피’에 비유하곤 해요. 언제든 조정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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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왼쪽)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가 13일 리허설을 하고 있다. 아템포 제공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왼쪽)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가 13일 리허설을 하고 있다. 아템포 제공

둘은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울국제음악제 무대에서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와 슈만의 ‘리더크라이스’ ‘시인의 사랑’을 공연한다. 사랑과 그리움, 질투와 상실을 다룬 독일 가곡을 통해 시와 음악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여줄 예정이다.

보스트리지는 “베토벤의 가곡과 슈만의 가곡은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며 가사와 음악 사이의 긴장과 아이러니가 돋보이는 슈만의 작품에 주목했다. 특히 사랑의 열정에서 출발해 질투와 좌절, 원망으로 나아가는 연가곡 ‘시인의 사랑’에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슈만의 음악에는 아이러니가 가득합니다. 겉으로 표현하는 말과 실제로 의미하는 것 사이에 긴장감이 존재하죠. 마지막에 이르면 주인공은 그동안 겪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관에 넣어 묻고 바다에 던지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음악은 매우 조용하지만 그 이미지엔 깊은 공격성이 담겨 있어요. 특히 인상적인 순간은 주인공이 자신에게 원한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노래입니다. 실제로는 분명 연인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어요. 가사는 한가지를 말하지만 음악과 감정적 맥락은 전혀 다른 것을 암시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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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지니도 “슈만의 음악은 마치 생각이 흘러가는 것처럼 즉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고, 갑자기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며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형식에 특히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왼쪽)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가 13일 리허설을 하고 있다. 아템포 제공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왼쪽)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가 13일 리허설을 하고 있다. 아템포 제공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공부해 ‘노래하는 인문학자’로 불리는 보스트리지는 지식과 노래의 관계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다양한 지식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지만, 노래를 부르는 순간엔 역사적 지식이 필수적이지 않아요. 무대에 올라 음악적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건 기본적으로 지적 사고 과정과는 다르죠.” 그는 가곡을 부를 때 자신과 시 속 인물 사이에 “묘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했다. “그 인물은 분명 제가 아닙니다. 제가 가곡을 부를 때처럼 일상에서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저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예요. 감정이 극도로 강렬해지고 때로는 분노에 차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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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클래식 음악을 신성시하는 시각에도 거리를 뒀다. 지오지니는 “어떤 사람들은 전통을 보존하고 위대한 걸작을 계속 연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클래식 음악을 조금 덜 신성한 것으로 바라본다”며 “오늘날 작곡된 음악도 16세기나 18세기 음악만큼 놀라운 작품이 될 수 있다. 작품의 가치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류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보스트리지 역시 과거의 소리를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이 연주의 목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클래식 음악의 놀라운 점은 음악이 악보로 기록돼 있고 우리가 그 음악을 다시 연주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작품을 연주할 때는 지금의 우리와 과거에 작곡된 음악 사이에 일종의 조율이 이루어집니다. 정확히 어떤 소리였는지 알 수 없더라도 그 음악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정과 반응의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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