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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8, 2026

비선으로 ‘정적 수거’하려 했던 이승만, 그리고 윤석열 [금자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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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7월 거제 포로수용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7월 거제 포로수용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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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트럼프가 용인했을까요?”

“글쎄요. 바이든이라면 몰라도 트럼프라면….”

새천년관에 있는 연구실로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신축건물을 상상하며 갔다. 전철 1·7호선 온수역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학교로 들어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성큼 다가온 가을이 느껴지는 10월 초순의 아침이었다. 정문을 지나자마자 왼편에 등장한 건물은 뜻밖에도 가장 낡아 보였다. 표지석을 살펴보니 준공연도가 1998년이었다. 그제야 새천년을 맞이하던 때가 벌써 30년 가까이 흘렀다는 깨달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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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 줄줄이 체포해 남태령 일대에 위치한 수도방위사령부 B1 벙커에 가둬놓아도 미국이 묵인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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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계엄 선포 소식 듣고 국회프락치 사건이 오버랩 되면서 소름 끼쳤어요. ‘노상원 수첩’에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해 ‘수거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이 500명이었다잖아요. 반국가세력 싹 다 정리한다고 했을 수도요. 근데 미국이 끝까지 적극적으로 반대했을지는…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사회융합학부 사회학 전공, 평화월딩연구소장)를 그가 다니는 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여느 교수실처럼 사방은 책장이었다. 책은 한국전쟁, 위안부, 4·3, 사상통제 등 주제별로 질서정연하게 꽂혀 있었다. 강 교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전쟁과 폭력, 극우와 혐오 문제에 대해 가장 전방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역사사회학자다. 그에게 국회프락치 사건의 역사적 맥락에 관해 도움말을 구했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12·3 계엄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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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실패했다. 다음날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정부 인사들은 “심각한 오판”, “깊은 우려”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미국은 어떻게 나왔을까. 피바람 부는 반대파 숙청 속에서도 미군 주둔비(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국 기업 혜택 제공 등을 제시하며 트럼프의 비위를 빈틈없이 맞춰주었다면 혹시 계엄을 용인하지는 않았을까. 알래스카 투자 문제 등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위협까지 불사하며 한국에 대가를 요구하는 트럼프의 모습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의심을 하게 된다.

“1949년 국회프락치 사건 때는 미국의 트루먼 정부가 왜 묵인했을까요?”

“당시 주한미대사였던 무초는 전형적 외교관이었어요. 미국이 우선이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근본적으로 어긋나지 않으면 되는 거였어요. 미군정기 때만 해도 이승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었죠.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도 눈여겨봤잖아요. 그런데 이승만으로 정리되면서, 그 이후엔 이승만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문제였죠. 통제가 잘 안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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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을 전후로 해서 김약수 부의장과 노일환·강욱중 의원 등 7명이 체포될 때 무초 대사가 이승만에게 찾아가 항의를 하긴 했어요. 미 국무부에도 ‘이승만의 국회 탄압’이라는 취지로 보고했다는데, 그 이상으로 액션을 취한 건 없어요.”

“대사관의 2인자였던 드럼라이트 참사관과 1등 서기관이었던 해럴드 노블은 소장파 의원들을 민족주의적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본 측면이 있어요. 특히 노블의 극우 반공적 태도가 강경했다고 해요. 둘 다 소장파 의원들이 ‘남북 평화통일에 관한 긴급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일을 미국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보았고, 당시 거셌던 북한의 무장공세를 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국회의원 체포를 굳이 적극적으로 말릴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10월7일 오전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만난 강성현 교수. 고경태 기자
10월7일 오전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만난 강성현 교수. 고경태 기자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안팎의 주요 인물은 다섯 명이었다. 존 무초 대사(1900~1989), 에버렛 드럼라이트 참사관(1906~1993), 해럴드 노블 1등 서기관(1903-1953), 그레고리 헨더슨 3등 서기관(1922~1988), 에른스트 프랭켈 법률고문(1898~1975). 여러 문헌과 기록을 종합하면, 앞의 세 사람과 뒤의 두 사람은 국회프락치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달랐다.

가장 어리고 직급도 낮았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이승만 정부에 가장 비판적이었지만, 고립돼 있었다. 그는 주한 미국 기관 내에서 가장 연배가 높은 법률고문 에른스트 프랭켈과는 의기투합이 됐다.* 헨더슨은 국회 담당 연락관으로서 2명의 한국인 직원을 시켜 17차례(결심 공판 3회 포함)의 국회프락치 사건 공판을 기록하게 했고, 매회 또는 한두 회를 묶어 논평과 함께 미 국무부에 보냈다. 1950년 3월에는 프랭켈의 법률분석보고서도 국무부로 갔다. 두 사람은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며 프락치가 실재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프랭켈은 유명한 정치학자이자 법학자였다. 독일 출신으로 1938년 미국으로 망명해 미군정기를 거쳐 경제협조처(ECA) 법률고문을 지냈다. 독일에서 나치 정권을 경험했던 그는 1941년 ‘이원국가’를 펴냈다. 나치 체제를 법과 절차가 작동하는 '규범국가'와 법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의적 조치가 작동하는 '조치국가'의 공존 체제로 분석한 책이다. 헨더슨의 눈에도 우익 청년단체를 동원한 이승만의 테러와 무법 행위가 ‘이원국가’의 특징으로 다가왔다.

“김구 암살이나 국회프락치 사건에서도 비공식 정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잖아요. 암살범 안두희를 조종한 자, 정재한이라는 여성의 몸속에서 나왔다는 증거물 '증제1호' 암호문건의 시나리오를 만든 세력이 있지 않은가 하는. 여기서 김지웅이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김구 암살은 여러 증언이, 국회프락치 사건은 정경모 선생이 그를 지목하죠.”

“나치 체제를 분석한 프랭켈의 개념으로 보면, 여기서도 '이원국가'가 운영됐다는 겁니다. 공권력이 제도화가 잘 안 돼 있고 조잡한 거죠.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만들었는데 식민지에서 기득권을 행사해왔던 이들과 전혀 새로운 사람들이 섞여 있었던 거예요. 군 안에도 처음엔 친일파, 광복군 출신, 좌파가 모두 있었잖아요. 민주주의를 시작했는데 통치에 대한 관념도 서로 달랐죠. 이승만과 김구·김규식·여운형 등이 공동의 적 일본을 놓고 좌우합작을 했지만,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는 남북분단과 통일 문제를 놓고 갈라지게 됩니다. 이승만은 결국 비선정치를 합니다. 마치 윤석열이 육군을 동원해 계엄을 시도했던 것처럼, 이승만은 친일세력과 손잡고 정적을 제거했어요. 밑에서는 그 의중을 과대 활용하려고 했고. 그 가장 결정적 장면이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입니다. 이때는 가상의 프락치가 수천명으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승만 정권을 이해할 수 없다고들 해요.”

“김지웅이 12·3 계엄의 ‘비선 기획자’로 알려진 노상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행태는 비슷하죠. 다만 노상원은 정보사령관 출신이고, 김지웅은 관동군 헌병대 통역 출신의 일본군 밀정이었다고 해요. 관동군 헌병 출신 김창룡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김지웅은 해방 뒤 자신이 중국 제4방면군 여단장이었다며 뻥을 치고 다녔다고 해요.”

“국회프락치 사건은 오제도가 다 한 것 같아요. 회고록과 수기, 또 여기에 바탕한 라디오드라마·영화를 통해 국회프락치 사건의 영웅처럼 기록됐어요..”

음부에 암호문건을 숨긴 정재한을 개성까지 쫓아가 잡은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 김호익 경위는 1949년 8월12일 서울시 경찰국으로 찾아온 남로당원의 권총 사격을 받아 사망했다. 소장파 국회의원들에 대한 초기 내사를 주도한 최운하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장(전쟁 직전엔 부국장)은 1950년 6월28일 새벽차를 타고 한강다리를 건너다 인도교가 폭파되며 사망했다. 앞선 차량에 있던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은 무사했다. 국회프락치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대표선수로 이름을 알린 두 사람은 모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반면 이들의 수사를 지휘한 국회프락치 사건의 검사들은 오래 살아남았다.

국회프락치 사건 재판에 나온 검사는 장재갑·선우종원·오제도였다. 셋 다 평안도 출신이다. 당시 부장검사였던 장재갑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강 교수는 “장재갑은 존재감이 별로 없는 중간관리자였다. 서북라인의 맏형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선우종원의 경우 1946년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공판에 입회했다고 회고했다.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선공산당이라는 남한 내 합법적인 좌파세력이 괴멸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 뒤 남로당이 만들어졌다.

“국회프락치 사건에서 오제도의 역할을 어느 정도로 봐야 할까요?”

“오제도는 뻥이 세긴 한데 깊이 개입한 게 맞지요. 국회프락치 사건 이후 서울지검 정보부장이 됩니다. 선우종원은 이미 법무부 검찰과장이었고요. 실제 직급은 선우종원이 높은데, 오제도는 행동하는 공안검사였죠.”

“오제도의 과거는 어두워요.”

“1939년에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3년제) 법과를 졸업한 뒤 1940년부터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서 판임관견습으로 일했어요. 이때 오제도는 사상검사 나가사키 유조 밑에서 배웁니다. 나가사키 유조는 1938년 결성된 사상보국연맹을 1940년 재편한, 조선인 사상범들의 전향과 교화를 위한 친일·세뇌 기관 대화숙(大和塾) 체제를 이끈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에 일제 사상검사의 대표적인 인물로부터 검찰의 사상통제와 전향 방법, 기술을 익혔던 것으로 보여요.”

“오제도에 비하면 같은 공안검사로서 선우종원은 이미지가 점잖은 편이에요.”

“말년에 만났어요.”

“선우종원을요? 국회프락치 사건에 관해 물어봤나요?”

”….”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은 1950년 4월,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백성욱·편동현·정운수·이순용·장석윤 등 이승만 측근세력이 야당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벌인 대표적인 간첩 조작 및 정치 공작이다. “군과 경찰과 법조계에 있는 프락치 수천 명이 대통령을 암살하고 경무대를 파괴하려 한다며 대통령 특명을 받아 조직했다는 사설 특별수사대를 통해 무장간첩 소탕 작전을 꾸미려다가 사전에 발각됐다. 역설적이게도 국회프락치 사건 공판에 관여했던 선우종원 등 서울지검 검사들이 이 조작극을 밝혀냈다. (국회프락치 사건의 재발견Ⅱ, 김정기, 한울, 2008)

**1945년 말∼1946년 초 조선공산당 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 소공동에 있는 조선정판사에서 인쇄 시설을 이용해 지폐를 위조했다는 혐의로 조선공산당 간부들이 대거 검거된 사건이다. 이 사건 주모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한국전쟁 중 대전 골령골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관술은 2025년 12월22일 외손녀가 제기한 재심에서 7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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