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앤 카슨 첫걸음…한겨레 서평으로 읽는 입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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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앤 카슨이 202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그의 작품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고전을 새롭게 쓰고, 시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카슨의 작품은 어디서부터 읽으면 좋을까. 한겨레 지면에 실린 서평과 칼럼을 길잡이 삼아 그의 문학 세계에 첫발을 디뎌보자.
1. 고전을 다시 쓰고, 시에 이야기를 담다
카슨의 대표작과 작품의 형식이 궁금하다면 최재봉 선임기자의 서평부터 읽어보자. ‘빨강의 자서전’과 ‘남편의 아름다움’을 함께 살피며, 고전을 새롭게 쓰고 시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카슨의 문학을 소개한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캐나다 작가 앤 카슨은 고전학자이자 시인 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빨강의 자서전’과 ‘남편의 아름다움’은 고전을 다시 쓴 작품이자 시 형식에 소설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빨강의 자서전’은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화살로 쏘아 죽인 빨강 괴물 게리온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카슨은 빨강 날개를 달고 태어난 소년 게리온이 두 살 연상인 아름다운 소년 헤라클레스를 상대로 펼치는 사랑과 실연의 이야기로 신화를 다시 쓴다. “사랑을 나눌 때/ 게리온은 자신에게서 아치를 그리며 멀어져 아무도 모르는 어두운 꿈속으로 들어가는/ 헤라클레스의 등뼈를/ 하나씩 천천히 만지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게는 다른 연인이 생기고, 게리온은 죽음과도 같은 상처와 절망에 빠져든다. “게리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라클레스는 단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그들 사이의 공간에 위험한 구름이 생겨났다./ 게리온은 다시 그 구름 속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갈망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검은 핏자국이 묻은/ 반짝이는 가시들이 눈에 선했다.”
‘남편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남편에게 매혹돼 결혼했으나 불성실과 배신으로 이혼하기에 이른 여자의 이야기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시와 메모 등에서 따온 구절들을 모티브 삼아 펼쳐지는 이 작품에는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그 무엇에도 충실하지 못했던/ 내 남편. 그럼 나는 왜 소녀 시절부터 우편으로 이혼 판결을 받은 늦은 중년의 나이까지/ 그를 사랑했느냐고?/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건 비밀이랄 것도 없다. 나는 아름다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가 가까이 온다면/ 다시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확신을 준다.”
서평 링크: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7273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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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침묵을 강요받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주혜씨는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의 마지막에 실린 산문 ‘소리의 성별’에 주목한다. 카슨은 그리스 신화와 문학, 종교의식 속 여성의 비명을 살피며,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불안하게 여기고 침묵을 강요해왔는지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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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Law)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실연을 당한 ‘나’는 북부 황야에 사는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나’는 ‘에밀리 브론테 전집’을 챙겨가는데, 에밀리는 ‘나’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자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찾아갈 때마다 나는 에밀리 브론테로 변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어머니의 집 부엌에서 에밀리 브론테를 읽으면서 동시에 어머니를 읽고, 창밖으로 보이는 ‘얼음으로 마비된 황야’를 읽는다. ‘나’가 읽는 책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폭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덧창에 매달린 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의 유령을 향해 “들어와! 들어와!”라고 외치며 흐느끼지만, 책 밖의 ‘나’는 황야에서 불어오는 미친 바람을 막아주는 유리창 안쪽의 이 공간이 사실은 에밀리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우리(cage)임을 깨닫는다.
에밀리 브론테는 감옥에 갇힌 여자를 화자로 삼아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희망의 전령, 그가 매일 밤 내게로 오네/ 그리고 내 짧은 인생을 위해, 영원한 자유를 주네” ‘나’는 에밀리가 말한 이 자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비평가들이 흔히 해석하는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평가나 주석가들은 에밀리의 감옥을 19세기 잉글랜드 북부의 차가운 황야에 있는 외딴 교구에서 살아가야 하는 목사의 딸에게 지워진 한계로 이해하지만, 어머니 앞에서 에밀리로 변하곤 하는 ‘나’는 그의 자유와 감옥을 그토록 납작하게 해석하고 싶지 않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번역가이자 고전학자인 앤 카슨은 시와 소설과 비평과 번역이라는 장르를 넘나드는 거침없는 창작활동으로 어느새 앤 카슨이라는 하나의 고유한 장르를 확립했다. 다섯 편의 장시와 한 편의 산문으로 이루어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은 여는 시 ‘유리 에세이’에서 실연의 기억을 간직한 화자와 에밀리 브론테의 삶을 교차시키며 과연 자유란 무엇인가, 무엇에서 무엇이 해방되고자 함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카슨은 다소 난해하게 구성된 것처럼 보이는 책 곳곳에 자신의 대답을 숨겨두었다(이는 에밀리가 거실에서 카펫을 비질하다가 자신을 향한 세상의 질문들을 카펫 아래로 밀어 넣는 장면과 겹쳐진다).
특히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산문 ‘소리의 성별’은 앤 카슨이 모처럼 직설적으로 써 내려 간 통렬한 주장이고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인 카슨만 이 쓸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카슨은 그리스 신화와 문학, 종교의식에 나타나는 여성적 ‘비명’ 혹은 ‘올롤뤼가스’에 대해 남성 중심 사회가 얼마나 불안을 느껴왔는지 그 흔적을 파헤치고 그리하여 여성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을 소개한다. 카슨이 보여주는 고대의 문헌을 접한 현대의 독자들은 그 낯익음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감정에 휘둘리고 이성적인 자제력이 부족하다”며 침묵을 강요받아온 여성의 목소리에 대해 카슨은 “우리가 내는 모든 소리는 작은 자서전이다. 소리의 내면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는 궤적은 공적이다”라는 문장으로 목소리를 뺏긴 이들의 감옥과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유에 대해 말한다. “모든 소리는 작은 자서전”이라는 카슨의 말을 알게 된 후라면 이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도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도 다르게 읽힐 것이다.
이주혜 칼럼 링크: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87860.html
3. 존재를 고정하는 언어의 걸쇠를 풀다
문보영 시인은 ‘빨강의 자서전’에 나오는 짧은 문장을 ‘지금 이 문장’으로 꼽았다.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명사의 성격과 존재 방식을 규정하고 고정하는 형용사를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묘사한 부분에 주목해 앤 카슨의 세계를 설명한다.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문법 요소인 형용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빨간 사과’, ‘노란 바나나’, ‘예쁜 여자아이’ 같은 표현에서 형용사는 얼핏 중립적인 수식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명사의 성격과 존재 방식을 규정하고 고정한다. “빨간 사과”는 일반적인 사과는 빨개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앤 카슨은 형용사라는 ‘존재의 걸쇠’를 풀자고 제안한다. 존재를 다른 방식으로,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묘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헤라클레스와 게리온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 과업을 수행하는 영웅이며, 게리온은 그가 쓰러뜨려야 할 괴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빨강의 자서전’에서 그들의 역할은 전도된다. 헤라클레스는 속내를 알 수 없고, 매혹적이지만 바람기 많으며, 도망치는 존재로 재탄생한다. 반면, 게리온은 내성적이고 섬세한 감정을 지닌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 내려간다.
인물을 새로이 수식하고 묘사함으로써, 앤 카슨은 둘의 운명을 구출한다. 헤라클레스에게서는 영웅이라는 짐을 덜어주고, 게리온에게는 깊은 내면을 선물한다. 그것은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 아닐까. 이야기에서 이야기를 구출하는 것, 존재의 걸쇠를 푸는 것. 이로써 게리온과 헤라클레스의 연애와 사랑이 시작되고, 원전 신화에서는 꿈꾸기 어려웠던 퀴어 서사가 가능해진다.
지금 이 문장 링크: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919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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