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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November 7, 2026

잠들지 않는 도시, 미각을 깨우다…라스베이거스, 맛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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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과 카지노로 상징되는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지만 조금 찬찬히 들여다 보면 셰프의 개성이 돋보이는 파인 다이닝부터 한국식 고깃집, 감각적인 디저트 공간까지 다채로운 미식의 풍경이 펼쳐진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네온사인과 카지노로 상징되는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지만 조금 찬찬히 들여다 보면 셰프의 개성이 돋보이는 파인 다이닝부터 한국식 고깃집, 감각적인 디저트 공간까지 다채로운 미식의 풍경이 펼쳐진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라스베이거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카지노, 세계적인 공연이다. 그러나 미식의 관점에서 이 도시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셰프의 철학이 담긴 한 그릇, 미국식 스테이크 하우스와 만나 새로운 풍경을 빚어내는 한국식 고깃집, 익숙한 식재료에 낯선 조합을 더한 테이스팅 메뉴까지 차례로 접하다 보면 미각의 경계도 넓어진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한 끼’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이유다.

셰프의 이름을 건 접시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첫 식사는 12시간 남짓한 장거리 비행을 마친 직후였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입맛도 무뎌졌다. 낯선 도시에서 첫 페이지를 기분 좋게 열어줄 한 끼가 절실했다. 리조트 월드 라스베이거스 1층에 자리한 ‘스터번 시드’(Stubborn Seed)는 그 기대를 단숨에 채워준 곳이었다.

이곳은 미국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톱 셰프> 시즌 13 우승자인 제러미 포드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이다. 포드는 2017년 마이애미 비치에 첫 스터번 시드를 열었고,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미쉐린 스타를 받았다. 라스베이거스점은 그가 쌓아온 요리 세계를 확장한 공간이다.

‘스터번 시드’(Stubborn Seed)는 미국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톱 셰프> 시즌 13 우승자인 제러미 포드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이다.  재료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조합으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셰프의 감각이 돋보였다. 김지윤 기자·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스터번 시드’(Stubborn Seed)는 미국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톱 셰프> 시즌 13 우승자인 제러미 포드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이다. 재료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조합으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셰프의 감각이 돋보였다. 김지윤 기자·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첫 코스는 칼루가 캐비어 마카롱과 푸아그라 타르트, 옐로테일 쿠에 피 티(Yellowtail Kueh Pie Tee)로 구성한 아뮤즈 부슈였다. 손가락에 잡힐 만큼 작은 음식 세 점이었지만, 입안에서는 각기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캐비어의 짭조름한 감칠맛, 푸아그라의 농밀한 풍미, 유자와 연어알의 산뜻한 맛이 어우러졌다.

메인은 드라이 에이징한 오리 요리였다. 접시 주변을 감싼 자욱한 연기가 등장부터 시선을 붙들었다. 농축한 오리 육즙 소스와 콩피, 어린 순무, 스냅 완두를 곁들여 육류 특유의 깊고 진한 맛을 살렸다. 재료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조합으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셰프의 감각이 돋보였다.

벨라지오 호텔에 자리한 ‘마이클 미나’(Michael Mina)의 메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접시에는 어떤 재료가 등장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식사였다.

벨라지오 호텔에 자리한 ‘마이클 미나’(Michael Mina)의 메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접시에는 어떤 재료가 등장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식사였다.

이제 미각도 깨어났으니, 본격적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맛을 탐험해볼 차례다. 셰프의 이름을 내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또 있다. 벨라지오 호텔에 자리한 ‘마이클 미나’(Michael Mina)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미나 셰프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려준 중동 음식과 그 안에 담긴 다채로운 향신료를 통해 요리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 요리의 정교한 기법을 익히고 샌프란시스코의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으며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만들어왔다.

이곳에서 맛본 메뉴는 가을 제철 식재료로 구성한 10코스 ‘오텀 하비스트 테이스팅 메뉴’(Autumn Harvest Tasting Menu)’였다. 캐비어와 배 퓌레를 곁들인 첫 요리는 바다의 짠맛 뒤로 배의 산뜻한 단맛이 따라왔다. 해산물 코스에서는 전복과 우니를 얹은 일본식 달걀찜 차완무시가 기억에 남았다. 숟가락을 대자 부드럽게 떠지는 달걀찜 사이로 전복이 씹히고, 우니의 농밀한 맛이 입안을 채웠다.

해산물로 시작한 식사는 오리와 소고기로 이어졌다. 블랙 트러플과 블루치즈를 곁들인 스테이크에 이르러서는 식탁의 분위기도 한층 묵직해졌다. 앞선 요리들이 재료 본연의 섬세함을 살렸다면, 스테이크는 강한 향과 진한 육즙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디저트는 석류와 리치, 배를 활용해 산뜻하게 마무리했다. 하나의 코스 안에서 계절의 식재료를 다루는 방식도, 접시마다 풀어내는 이야기의 온도도 달랐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접시에는 어떤 재료가 등장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식사였다.

지아다 드 로렌티스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선보인 ‘지아다’(GIADA). 전통 요리에 캘리포니아에서 쌓은 경험과 감각을 더해 자신만의 이탈리안 퀴진을 완성했다.

지아다 드 로렌티스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선보인 ‘지아다’(GIADA). 전통 요리에 캘리포니아에서 쌓은 경험과 감각을 더해 자신만의 이탈리안 퀴진을 완성했다.

추억으로 차린 식탁

가족에 얽힌 추억을 요리에 담아낸 레스토랑도 있다. 이탈리아 출신 지아다 드 로렌티스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선보인 ‘지아다’(GIADA)도 그중 하나다. 로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탈리아에서 보낸 그는 가족을 통해 익힌 전통 요리에 캘리포니아에서 쌓은 경험과 감각을 더해 자신만의 이탈리안 퀴진을 완성했다.

대표 메뉴는 레몬 스파게티다. 레몬 제스트와 레몬즙, 파르메산 치즈, 마늘, 올리브유로 맛을 내고 새우와 마스카르포네 치즈, 바질을 더한 요리다. 포크로 면을 감아 입에 넣자 레몬의 상큼함이 먼저 퍼지고, 새우의 은은한 단맛과 바질의 향이 뒤따랐다. 산뜻하면서도 크리미한 질감이 어우러져 마지막 한입까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츠 디스트릭트에 자리한 ‘에스더스 키친’. 길게 썬 빵과 함께 여러 종류의 치즈와 스프레드가 작은 접시에 담겨 나왔다. 빵에 무엇을 발라 먹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저마다 달랐다.

아츠 디스트릭트에 자리한 ‘에스더스 키친’. 길게 썬 빵과 함께 여러 종류의 치즈와 스프레드가 작은 접시에 담겨 나왔다. 빵에 무엇을 발라 먹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저마다 달랐다.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을 벗어나 라스베이거스의 일상적인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아츠 디스트릭트로 향해보자. 갤러리와 독립 상점, 바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이 지역은 스트립의 번쩍이는 풍경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이곳에 자리한 ‘에스더스 키친’(Esther’s Kitchen)은 제임스 트리스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식당 이름은 셰프의 고모할머니인 에스더에게서 따왔다. 에스더는 트리스가 요리학교에 진학하도록 도왔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가 첫 레스토랑을 열 수 있도록 유산도 남겼다. 동시에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이 에스더의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편안하게 음식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은 메뉴는 사워도 빵이었다. 길게 썬 빵과 함께 여러 종류의 치즈와 스프레드가 작은 접시에 담겨 나왔다. 바질 오일과 허브로 맛낸 리코타 치즈, 조린 피칸과 포도를 곁들인 블루치즈의 일종인 캄보졸라, 매콤한 이탈리아식 돼지고기 가공품인 은두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빵에 무엇을 발라 먹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저마다 달랐다.

평소 빵을 즐겨 먹는 편이 아닌데도 몇번이고 손이 접시를 향했다. 빵 한 조각에 무엇을 바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펼쳐졌다. 식사를 기다리며 곁들이는 평범한 식전 빵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식탁의 주인공이 될 만한 메뉴였다.

매장에서 직접 만든 파스타도 빼놓을 수 없다. 초록빛을 띠는 치타라 베르데(Chitarra Verde)는 안초비와 파슬리, 레몬, 칠리, 빵가루를 곁들인 요리다. 허브 향과 레몬의 산뜻함, 안초비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웠다.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며 끊임없이 대화하는 현지인들을 보며 라스베이거스에도 카지노의 시계와는 다른 리듬으로 흘러가는 일상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어쩌면 여행지의 진짜 매력은 때로 이런 평범한 식탁에서 발견되는지도 모르겠다.

베네시안 리조트에 자리한 ‘코테’(COTE)는 한국식 고깃집의 문화에 고기 선별과 숙성, 와인 구성 등에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의 요소가 접목된 곳이다. 익숙한 메뉴와 달리 디제잉을 하는 뮤지션이 있어 마치 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김지윤 기자·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베네시안 리조트에 자리한 ‘코테’(COTE)는 한국식 고깃집의 문화에 고기 선별과 숙성, 와인 구성 등에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의 요소가 접목된 곳이다. 익숙한 메뉴와 달리 디제잉을 하는 뮤지션이 있어 마치 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김지윤 기자·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익숙한 듯 새로운 고깃집

한국의 맛이 그리워질 무렵 베네시안 리조트에 자리한 ‘코테’(COTE)를 찾았다. 창업자 사이먼 김은 한국식 고깃집의 문화를 바탕으로 고기 선별과 숙성, 와인 구성 등에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의 요소를 접목했다. 뉴욕 레스토랑은 미쉐린 스타를 받았으며, 라스베이거스점 역시 현지인들 사이 이색적인 맛집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 메뉴는 여러 부위의 소고기를 차례로 맛보는 ‘부처스 피스트’(Butcher’s Feast)다. 고기가 나오기 전 송로버섯 향을 더한 소고기 뼈 육수가 입맛을 깨웠다. 이어 한국식 고깃집에서 익숙하게 보던 계절 채소를 절인 반찬과 파무침, 상추, 쌈장이 차례로 놓였다. 반가우면서도 묘한 낯섦이 느껴졌다.

본격적인 고기 차례가 되면 테이블 한쪽 무연 그릴이 분주해진다. 직원들이 부위별 고기를 알맞게 구워 한 점씩 내줬는데, 지방의 양과 육질에 따라 씹는 맛과 풍미가 달라 한 점씩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에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계란찜과 김치찌개, 된장찌개까지 더해지면서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종로의 어느 고깃집에 앉아 있는 듯한 친근함이 밀려왔다.

한국식 고깃집과의 차별점을 꼽자면 와인 리스트다. 이곳은 1200종이 넘는 와인을 갖추고 고기와 와인의 조화를 제안한다. 소주와 맥주를 곁들이던 한국식 고깃집의 식탁이 와인과 함께하는 스테이크하우스로 확장된 셈이다. 한국의 식문화가 미국식 다이닝과 만나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인 ‘하이 스테이크스 베이거스’(High Steaks Vegas)의 시그니처는 구운 골수에 레드와인 어니언 잼과 프리제 샐러드, 사워도 토스트를 곁들여 먹는 본 매로다. 타워 꼭대기에 위치해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김지윤 기자·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인 ‘하이 스테이크스 베이거스’(High Steaks Vegas)의 시그니처는 구운 골수에 레드와인 어니언 잼과 프리제 샐러드, 사워도 토스트를 곁들여 먹는 본 매로다. 타워 꼭대기에 위치해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김지윤 기자·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반대로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다면 리오 호텔 50층의 ‘하이 스테이크스 베이거스’(High Steaks Vegas)를 추천한다. 마스커레이드 타워 꼭대기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라스베이거스 스트립과 계곡이 180도로 펼쳐진다. 낮에는 사막 한가운데 뻗어 나간 도시의 거대한 스케일이 한눈에 들어오고, 해가 지면 주변 건물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선을 사로잡은 메뉴는 큼직한 뼈를 그대로 살린 본 매로였다. 구운 골수에 레드와인 어니언 잼과 프리제 샐러드, 사워도 토스트를 곁들여 먹는 메뉴다. 진하고 고소한 골수를 바삭한 빵에 얹으니 풍미와 식감이 한층 살아났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메뉴는 라이언(Lion)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이색적인 육류 요리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정체는 노루궁뎅이버섯과 비슷한 ‘라이언스 메인 버섯’이었다. 지역 농장인 데저트 문 팜스에서 재배한 버섯을 구워낸 요리라고 한다.

에어리어15(AREA15)에 자리한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Museum of Ice Cream)애소눈 전시물을 눈으로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공간에 들어가 놀거나 곳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에어리어15(AREA15)에 자리한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Museum of Ice Cream)애소눈 전시물을 눈으로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공간에 들어가 놀거나 곳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디저트를 즐기는 방식도 남다르다.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 에어리어15(AREA15)에 자리한 ‘뮤지엄 오브 아이스크림’(Museum of Ice Cream)은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꾸민 체험형 전시 공간이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꾸민 방을 지나면 거대한 스프링클 풀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물을 눈으로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공간에 들어가 놀거나 곳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전시와 놀이, 디저트를 한데 엮은 발상에서 라스베이거스다운 과감함과 유쾌함이 느껴진다. 어른도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공간이다.

네온사인이 도시의 밤을 밝힌다면, 레스토랑의 식탁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춘다. 라스베이거스는 화려함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맛과 이야기가 오래 남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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