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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0, 2026

다큐영화 ‘회생’ 만든 김면우 감독, 빚더미에 뛰어들어 빛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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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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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이면우 ‘화염경배’ 중)

새벽 대여섯시 어둑한 출근길에 김면우(31·본명 김현우) 감독은 주문을 외듯, 불경을 읊듯 시 수백편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시라도 외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8년을 하루같이 수원지법 성남지원 앞 법무사 사무소로 출근하며, 쓰고 싶었던 시 대신 각종 법률 서면을 썼다. 얼굴도 안 보고 살던 가족이 남긴 빚의 수렁에 빠져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노년의 여성 노동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식들에게 채무가 전가되는지 확인하는 중년의 사업가를 일로 만나면서, 자신 또한 이 사무소 주인 법무사인 아버지의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김 감독은 자기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 ‘회생’으로 완성했다.

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영화는 지난 4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이비에스(EBS)국제다큐영화제(대상 수상), 디엠제트(DMZ)국제다큐영화제,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섬진강마을영화제 등에서 관객과 만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지난 16일 책장 가득한 법률 서적과 서류뭉치를 비집고 시집들과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는 경기 성남시 법무사 사무소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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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영화로 말하는 게 낯부끄럽기도 하죠. 사무소에 올 때도 아버지를 돕거나 빚을 청산하겠다 이런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에요. 제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워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군에서 막 제대했을 때 어머니한테서 아버지의 빚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아버지 곁에 누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어머니의 얘기에 고작 20대 초반 청년의 눈앞은 캄캄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라구. 나보고 어쩌라구’하며 거부하고 외면했지만, “아버지를 더 미워하다가는 내 마음에 더 큰 병이 날 것 같아서” 아버지 사무소를 찾아갔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동아리에서 영화를 만들거나 문학 작품을 읽는 게 전부였던 그는 서류 심부름을 하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2년 동안은 하루에도 열번씩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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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이 빚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더 괴로워질 뿐이죠. 도리나 책임 같은 말에도 연연하지 않았어요. ‘그래, 다 갚아보자’라는 단순한 생각이 오히려 평안을 줬죠.” 그렇게 시나 영화 같은 단어들을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사무소의 웬만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무원 6년차가 된 2023년 ‘이걸 영화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영화제 제작지원 프로젝트 문을 두드렸다.

영화 ‘회생’을 연출한 김면우 감독.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영화 ‘회생’을 연출한 김면우 감독.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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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영화화에 반대했다. 설득 끝에 타협을 본 게 ‘인터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였다. 화면에는 부자관계인 법무사와 사무원이 업무 내용을 가지고 툭탁거리며 때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자신의 실수를 슬쩍 사과하면서 쌓아가는 관계, 그리고 의뢰인의 무거운 고통이 해결됐을 때 같이 나누는 기쁨 등이 생동감 있게 담겼다.

영화 ‘회생’이 빼어난 건 빚이라는 현실적 소재 때문이 아니다. 감독의 시선은 채무라는 돌덩이 위에 놓인 보이지 않는 삶의 인과관계를 응시한다. 김 감독은 “빚은 단지 삶의 불화와 갈등이 몸 밖으로 드러난 통증에 지나지 않는다”며 “과도한 빚을 진 자가 더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제야 그동안 곪아있던 속살을 마주한다”고 표현했다. 아버지는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다. 사법고시에 계속 떨어지다가 몸에 마비까지 왔다. 그럼에도 쉰살 가까워질 때까지 사법고시 공부를 멈출 수 없었다. 실망한 할아버지와 언젠가부터 안 보고 살았고, 쉰 넘어 시작한 법무사 사무소의 적자를 해결해보려는 의지는 무모한 투자로 이어졌다. 김 감독은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사무소를 찾아온 수많은 사람에게서 오랜 세월 곪아온 속살을 봤다.

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그가 빚이라는 흔하고 괴롭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소재에 철학적 사유를 녹여 넣을 수 있었던 건 비구니인 엄마 덕이기도 했다. 영화를 기획할 때까지만 해도 숨기고 싶었던 감독의 ‘스님’ 엄마는 중반 이후 등장하면서 이 영화가 깊이를 머금고 종착역에 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젊은 시절 출가했다가 절에서 공부하던 아버지를 만나 환속했던 엄마는 김 감독이 6살 때 다시 출가했다. 엄마가 어렸을 적 가족을 버리고 떠났던 엄마의 아버지가 절을 지으면서 남기고 간 빚을 갚기 위해 그 절로 들어간 것이다. 엄마 역시 질긴 빚의 굴레에 놓였지만, 간간이 만나는 엄마 스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건넨 설법은 고단한 삶을 버티며 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영화를 완성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했던 게 엄마였고, 그다음은 극장에 초대한 채권자들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절대로 안 보겠다는 고집을 아직 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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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영화 ‘회생’ 김면우 감독 제공

“영화가 상속채무의 대물림을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빚을 짊어진 한 인간을 이해하게 한다”는 김 감독의 말대로 ‘회생’은 갚아야 할 금액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장편 데뷔작을 세상에 내놓은 김 감독 앞에는 법무사 자격증 공부를 위한 교재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완성될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놓여있다. “요즘도 매일 야근하느라 제대로 공부할 시간도, 뭔가를 쓸 시간도 부족하긴 하지만, 둘 다 해보고 싶습니다. 우선은 사무소 일을 실수 없이 해내면서 빚을 갚아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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