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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16, 2026

[록과 사는 여자들]“음악이 주는 판타지 앞에 나이가 왜 있소”···‘블루스 여제’ 한영애의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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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붐’이 돌아왔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음원 차트에서도 록페스티벌 현장에서도 여성 ‘프론트퍼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 ‘밴드의 꽃’ 으로만 여겨졌던 여성들의 역할은 무대와 사운드를 이끄는 중심축으로 재정의됐다. ‘프론트퍼슨’은 밴드에서 공연을 주도하거나 이미지를 대표하는 중심 인물을 뜻한다. 과거 ‘프론트맨’이라 일컬어지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젠더 중립적인 단어인 ‘프론트퍼슨’을 주로 사용한다. ‘2026 프론트퍼슨 연대기’는 현 시대 여성 음악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록 씬을 기록한다.

가수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가수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한국의 블루스 록’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목소리를 고른다면 단연 한영애를 꼽을 것이다. 1976년 포크그룹 해바라기로 데뷔한 한영애는 연극배우를 거쳐 1986년 1집 <여울목>을 발표하며 솔로 보컬리스트로 거듭났다. 포크·블루스·록을 오가는 음악들은 한영애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만나 국내 음악계에 지문처럼 새겨졌다. 대표곡 ‘누구 없소?’와 ‘코뿔소’ 등이 수록된 2집 <바라본다>(1988)가 50만장 이상 팔리는 등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사람들은 한영애의 목소리에 매료돼 그를 ‘소리의 마녀’ ‘블루스의 여제’라고 불렀다.

블루스 장르가 그를 대표하지만, 한영애는 한 번도 특정 장르에 머문 적 없었다. 정규 3집 <한영애 1992>(1992)는 블루스를 기본으로 재즈, 팝사운드까지 담았다. 4집 <불어오라 바람아>(1995)는 세련된 기타 사운드를, 5집 <난. 다>(1999)에는 테크노를, 6집 <샤키포>(2014)는 당시 팝 트렌드를 담았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그가 발매한 신곡 ‘스노우 레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지난 3일 전국 투어를 진행 중인 한영애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발자취에 대해 “장르에 대한 도전을 염두에 둔 적은 없다”며 “한평생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지만 골몰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수식어를 두고도 “납작한 단어로 설명되는 게 싫어 인터뷰를 꺼린다”는 그의 말처럼, 한영애가 반세기 동안 쌓아온 세계는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한영애 2집 <바라본다> 앨범 커버.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영애 2집 <바라본다> 앨범 커버. 경향신문 자료사진

-올해 ‘스노우 레인’을 발매하며 여러 유튜브, 방송 등에 출연하셨습니다. 변하지 않은 목소리에 놀라는 대중이 많은데, 어떻게 목소리를 유지하는지요.

“그냥 바른생활을 해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제때 밥 세 끼 먹고 그다음에 목을 학대하지 않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50주년을 맞아 콘서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활동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을 경험하기도 하셨을까요.

“음악에 대한 시선과 태도는 세월에 따라 늘 달라집니다.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쓸 수는 없지만 어떻게 삶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경험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무대와 관객은 매번 다르기 때문에 늘 즐겁다고 생각해요.”

가수 한영애.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수 한영애. 경향신문 자료사진

-록이라는 장르의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20대 초반에는 누구나 가슴속에 불덩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그 불덩이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을 해봤던 거고, 그 과정에서 배우든 음악이든 무대 위에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특정 장르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군요.

“장르는 대중들의 몫이고, 저는 여러 가지가 섞인 음악을 좋아해요. 블루스를 들으면 ‘내집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음악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쉽게 ‘록’을 이야기하지만 록의 정체가 뭡니까? 멋져 보이고 자유로운 것? 너무 쉽게 정의하려고 해요. 이제는 21세기에 록이 어떤 음악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정의하는 록은 무엇입니까?

“록의 정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정말 소중하죠. 록이라는 단어가 그저 패셔너블하게 지나가지 않도록요. 제 안에 있던 불덩이를 젊음의 정신이라고 했을 때 그걸 어떻게 발산하고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될 때 쓸 좋은, 이미지화된 단어라고 생각해요. 장르는 그다음일 뿐이죠.”

-사람들이 한영애의 음악은 어떤 장르가 아니라 ‘그저 한영애의 음악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영애의 음악’은 무엇일까요.

“그저 제 음악을 할 뿐이에요. 그 옛날에도 밖에서 ‘언더’다 뭐다 하면 우리는 ‘언더가 뭐야?’ 하면서 음악을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이 뭔지, 어디에 대의를 둘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있어요. 그게 없으면 음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장르에 대한 도전은 염두에 둔 적 없습니다. 음악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골몰했어요.”

-‘코뿔소’나 ‘조율’ 같은 곡의 울림 있는 가사들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어떤 가사가 좋은 가사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연주자가 아니니 가사가 중요해요. 그건 다른 가수에게도 마찬가지겠죠. 무슨 규칙처럼 상징과 은유가 있어야 좋은 건 아니잖아요. 듣는 청자가 감동해야 좋은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가수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가수 한영애. 나무뮤직 제공

-최근 여성 아티스트에게만 붙는 별명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당시 선생님께 붙었던 ‘소리의 마녀’와 같은 별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스스로 ‘나는 여자니까’라는 생각으로 산 적은 별로 없어요. 여성이라 불합리한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그냥 음악을 했어요. 남성과 여성은 다르잖아요. 서로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페미니즘 같은 운동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잖아요.”

-나이를 밝히길 꺼리신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꺼리지 않아요.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요. 이유는 하나예요. 서로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나이는 불필요하다. 저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판타지를 주고 싶어요. 콘서트같이 일상과 떨어진 곳에서 에너지를 받아 다음날 또 일상생활을 하는 거잖아요. 근데 거기에 나이가 왜 필요해요. 음악이면 됐죠. 젊은이들이 내 나이를 보고 내 음악을 안 들을 거라는 걱정은 가끔 해요. 아주 가끔.”

-50년간 음악 활동을 하면서 흔들릴 때도 있었겠지만 심지를 지켜온 게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어떤 음악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을까요.

“제 노래 ‘루씰’ 가사의 마지막을 보면 ‘나도 너처럼 소리를 갖고 싶다’고 제가 썼어요. 루씰은 기타리스트 비비킹(B.B. King) 기타의 애칭인데, 그 특유의 소리 때문에 모두가 비비킹의 노래임을 알아요. 그 말처럼 ‘나도 너처럼 소리를 가지고 싶다’고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요.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음악도 발표하면 모두의 것이 돼요. ‘아직 내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뮤지션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사방팔방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앞으로 한영애의 음악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요.

“음악의 기쁨은 세 끼 밥 먹는 거랑 똑같아요. 밥 먹을 때 기쁘지 않나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보여드릴지는 미지수지만, 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음악으로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음악이 있기에 다시 만날 수 있고 각 세대가 만날 수 있다고 믿어요. 남들이 뭐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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