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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9, 2026

영혼과 나비는 너무나도 같은 단어처럼 들렸기에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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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어릴 적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한 사촌의 집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사촌의 집 옆에는 버려진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인 애들이 많이 뛰어놀았다. 그중 어떤 아이 하나와 친해진 적이 있는데 그 애의 아버지가 에세이스트라고 했다. 나는 에세(이)가 뭐냐고 물었다. 그 애는 ‘에세’란 자신의 일기나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고 에세이스트는 그걸 신문이나 잡지에 팔아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사랑에 관한 에세를 쓰고 있는데 벌써 몇달째 제대로 써지지 않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써지지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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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거겠지.”

“음, 꼭 겪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몰라. 그렇다면 쓰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그 아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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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네가 그 에세이를 작문 숙제로 써야 하는 게 아니고?”

“내가?”

“그래, 네가.”

“그건 너겠지.”

그리고 다음 주가 되었을 때 나는 학교에서 그 아이가 받은 작문 숙제를 똑같이 받았다. 사랑에 관한 ‘에세’ 한편 쓰기.

새해 첫날에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백색의 나비 꿈을 꾸었다면 좋을 것이다. 그를 만났을 때 내게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끔. 이건 약속과도 같은 것이고. 좋아. 일년 내내 새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인다. 지금은 8월이고 여름의 한가운데이다. 그러나 곧 선선해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다시 잠에 들자.

사랑에 관한 에세 한편.

지난 겨울, 그를 다시 만났는데 정말 몇년 전처럼 태연하게 밥을 먹고 읽은 책에 관한 얘기하다가 사는 얘기를 하다가 언제나 그렇듯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욕했다. 너 아직도 미술관에 가는 사람들을 싫어하나? 나는 그를 보면 뭔가 오답 노트를 쓰는 기분이 든다거나 그때 찢어서 불에 태운 일기장이 다시 돌아온 기분이 든다. 그와 헤어진 뒤 다른 사람들에게서 같은 무언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마도 영혼의 기스와 그림자, 분투, 영리함, 그의 우울, 불행 전부를 내 것이라고 느꼈던 적이 있을 테다.

그에게 내가 물었다.

“내가 혹시… 어릴 때에도 우울했었나?”

그러자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음… 넌 그때 정말로 네가 누구인지 도통 모르는 사람 같았어.”

그리고 조금 생각하더니 이런 말도 했다.

“그리고 넌 매일마다 좋지 않은 날씨처럼 굴었잖아.”

“내가?”

“그래, 네가.”

“그건 너겠지.”

그렇게 말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어쩌면 그가 나를 필요로 한 것보다 내가 그를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말이 되나.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올해 여름 어느 장소에서 미국 네바다주에 살던 사촌의 집 공터에서 만난 그 아이와 그의 아버지에 관해 떠올렸다.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에세이스트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다. 정말로 그의 아버지는 사랑에 관한 ‘에세’를 쓰는 에세이스트였을까. 얼마 전 갔던 여행에서는 우리의 곁을 계속해서 떠도는 나비를 발견하고, 이 나비는 죽은 친구의 아버지가 환생한 것이라는 농담을 하며 모두 웃었던 적이 있다.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질 않았는데 왜냐하면 영혼과 나비는 너무나도 같은 단어처럼 들렸기에, 부드러운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나비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 같기도 혹은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기에, 그렇게 시작과 끝은 맞닿아있다고 느꼈기에. 가을의 어느 입구 앞에 서자. 곧 조심스럽게 선선해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사랑에 관한 에세. 나는 다시 좋은 날씨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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