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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4, 2026

[책과 삶]교회 떠나, 신천지 밟고, 108배로…목사 딸의 ‘종교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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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딸의 백팔배>는 근본주의적 개신교 가정에서 자란 여성이 종교와 가족이라는 체계에 도전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픽사베이

<목사 딸의 백팔배>는 근본주의적 개신교 가정에서 자란 여성이 종교와 가족이라는 체계에 도전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픽사베이

목사 딸의 백팔배

이정은 지음 | 온다프레스 | 272쪽 | 1만6000원

요지부동의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 부모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는 근본주의적 개신교 성직자이며, 자녀들에게조차 신앙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없다면 어떻게 할까. 아이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는 요즘 육아법의 관점에서 볼 때 자녀 교육이 학대의 선을 넘나든다면 어떨까.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은 <목사 딸의 백팔배>를 두고 “유쾌하고 아름답고 치열한 아버지 살해 과정”이라고 평했지만, 저자 이정은(40)은 아버지를 상징적으로도 죽이지 않는다. 복수하거나 원망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아버지를 어리석거나 무능하거나 답답한 사람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이가 안 좋은 것 같다”는 고1 딸에게 “하나님을 그따위로 믿으니, 신앙이 그 모양이니, 이가 안 좋지!”라고 소리치는 아버지였는데도 말이다.

77학번이던 아버지는 급진적 학생운동가였다. 그는 대학원에 적을 둔 채 가구 공장에 위장 취업을 했으나 노동자들과 어울려도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는 없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인간의 힘으로 혁명을 이뤄내 사람들을 구원하고 천국을 일궈낼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착각”을 깨고, 하나님의 의를 찾기로 했다. 야학 동아리에서 만난 1년 후배였던 엄마는 신앙인이 아니었으나, 결국 남편을 따르기로 했다. 번듯한 교회 건물도, 많은 신도도, 큰 종교적 명성도 없이 고행에 가까운 목회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정은은 이 가정의 장녀였다.

집에서는 ‘인간적인 것’ ‘세속적인 것’이 금지됐다. 텔레비전은 애초에 없었고, 신문도 언젠가부터 끊었다. 딸기 우유가 나오는 급식을 먹는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가 싸주신 소박한 도시락을 꺼냈다. 이정은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새벽 기도를 나갔다. 각종 예배와 공부방 봉사, 부흥회에도 참석했다. 이정은은 “내 시간과 공간만이 아닌 감정까지 통제돼야 했다”고 돌이켰다. 하나님과 부모님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딸의 고등학교 시절을 부모님은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라고 돌이키지만, 이정은은 스스로 이 삶이 ‘흉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을 상대화하는 종교학을 대학 전공으로 택한 것이 작은 방황이었다면, 대학에서 신천지에 빠진 것은 ‘제대로 된 반역’이었다. 대학에서 부모님의 바깥 세상을 처음으로 만난 이정은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고, “명쾌하고 완벽한 수학 공식처럼 들렸던 ‘진리’”를 제시하는 신천지에 매혹됐다. 이정은은 6개월 만에 신천지를 빠져나왔으나 여전히 자신이 “괜찮은 척”하면서 “주어진 삶”을 산다는 걸 알았다.

학문의 세계가 도움이 됐다. 온갖 오류를 잔뜩 떠안은 종교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종교학의 태도는 마음의 여유를 안겼다. 이는 부모님의 언행이 잘못된 것처럼 보여도, 그들의 삶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지배자의 강압 테크놀로지와 피지배자의 자기 테크놀로지가 섬세하게 조합돼 권력이 행사된다는 후기 푸코의 통찰은 부모님의 권력과 자신의 순응이 어떻게 맞물렸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종속은 주체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는 주디스 버틀러의 인식은 부모님을 스스로 떠나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을 덜어주었고, “훈육 담론이 주체를 생산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주체의 탈구성 조건도 함께 구성한다”는 버틀러의 첨언은 전복의 가능성도 함께 열어주었다.

결혼을 앞두고 이정은은 앞으로 아버지의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너를 속이지 마라”는 엄마의 말은 뜻밖의 큰 조언이었다. 이정은은 “상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상대에게 마주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한다.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라는 말에 자신은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갖추든 아니든 그저 자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 후 4~5개월 후부터는 백팔배를 시작했다. 모녀 관계를 고민하는 질문에 대한 법륜 스님의 대답 “어머니가 가시는 길은 어머니 선택이고, 내가 가는 길은 내 선택이다. (…) 각자 상황에 맞춰서 내 길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인생이다”를 듣고 나서였다. ‘객관’의 문제, ‘옳고 그름’의 문제에 얽매여 있던 이정은은 “몸을 구부리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것들에 오만한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깨닫게 됐다.”

“나는 ‘진정하고 올바른 삶’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삶을 부모님이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정하자.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원래 그와 같이 살았어야 할 진짜 삶’ 같은 것은 없다.”

이정은은 백팔배가 “절하는 이의 힘을 빼버린다”는 점에서 좋다고 말한다. 그는 거듭 힘을 뺀 뒤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자그마하지만 좋은 느낌의 힘”으로 살아간다. 세속의 노래를 거의 들은 적이 없었지만,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연습 끝에 부를 수 있게 됐다. 대학 4학년 때까지는 왠지 호사스러워 보여 카페에서 주문하는 것조차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디카페인 커피를 종종 마신다. 죄책감을 애착인형처럼 간직하는 ‘자기 포기적 테크놀로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기 배려적 테크놀로지’를 익혀나갔다. 서울대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누군가의 소용과 어떤 현상의 쓸모”를 재단하는 것이 싫어, 통일교·신천지·JMS 같은 개신교계 신종교 현상을 연구한다.

무엇보다 담당 공무원조차 설득 못하는 노숙자를 몇년간 돌보며 병원으로 인도하는 아버지의 철저한 믿음과 실천을 존경하게 됐다. “삶을 마주하고 껴안는 어떤 순간들에 불현듯 선물처럼” 나타나는 구원은 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이미 주어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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