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문학상] 정지상 작가 "쓰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장편소설 '김K 정전'으로 제14회 수림문학상 당선
"민원의 답변과 행위 주체 탐구…비용 누가 치러야 하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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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장편소설 '김K 정전'으로 제14회 수림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지상(32) 작가가 28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6.9.30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김K 정전'은 누군가의 옳은 말에 답해야 하는 비용을 누가 치러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제14회 수림문학상 당선작인 장편소설 '김K 정전'은 사소한 잘못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정정을 요구하는 어느 '민원왕'의 행적을 다룬 소설이다.
'김K 정전'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정지상(32) 작가를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작가는 실제 직장이나 학교, 병원 등 사회 곳곳에서 영역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왕'들에게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민왕원들이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란 것이다.
소설은 '민원 중독자' 김K의 실종으로 시작한다.
김K의 실종은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고, 그의 직장동료 박M은 김K가 제기한 민원의 당사자들을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한다.
그러나 김K란 인물은 선하거나 악하거나 어느 한 방향으로만 수렴되지 않는다.
그가 제기한 민원은 분명 타당했고, 어떤 잘못들은 바로잡혀야 했다. 하지만 민원 과정에서 질문에 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점짜리 리뷰를 받은 식당 주인은 의욕을 잃었고, 민원이 제기된 기간제 교사는 재계약을 두려워하게 됐으며, 상담원과 경비원은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정 작가는 이를 비용의 문제로 치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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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장편소설 '김K 정전'으로 제14회 수림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지상(32) 작가가 28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6.9.30 ryousanta@yna.co.kr
"질문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아요. 물어봐서 '아니면 말고'일 뿐이죠. 그런데 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뉴얼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데서부터 비용이 발생합니다."
또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것도, 답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답하는 사람은 언제나 비용의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어 작가는 "결정하는 사람과 집행하는 사람은 늘 다르기 마련"이라며 사회 구조의 문제도 짚었다.
그는 민원이 제기·접수·해결되는 과정을 보면 "질문 주체와 답변 주체 그리고 행위 주체 모두가 갈라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며 "이런 문제들을 끝까지 정밀하게 해부해 보자는 생각에서 작품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틀린 자리로 옳은 말을 보냈다"는 소설 속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은 작가의 문제의식을 압축한 문장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옳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 그 행위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해주는가.
그러면서도 작가는 한 사람의 삶을 쉽게 재단하진 않는다.
소설은 김K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 메일, 상담 기록, 증언, 입장문 등 다양한 기록을 통해 그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는 한 사람의 삶을 납작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시도지만, 동시에 그런 노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작중 인물들의 이름이 김K, 박M, 윤S 식으로 익명화해서 등장하는 것도 이런 한계를 드러내는 설정이다.
작가는 "어떤 면에서 타인은 이해할 수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존재"라며 "그럼에도 한 사람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덜 오해받는 방식으로 드러내야 하는 게 문학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작가로서는 특이한 이력의 보유자다.
199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현재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정보기술(IT) 전문가다.
학창 시절 그저 남들보다 책 읽기를 즐겼을 뿐이라는 그에게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상태가 됐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건강 문제도 있었으며, 어떤 울분과 회한, 슬픔이 뒤엉킨 상태에서 유일한 탈출구가 글쓰기였다고 그는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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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장편소설 '김K 정전'으로 제14회 수림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지상(32) 작가가 28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6.9.30 ryousanta@yna.co.kr
"제가 겪는 상실감과 압박감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글쓰기를 통해 '나도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누군가의 답장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를 소재로 한 웹소설을 썼고, 이 소설이 호응을 얻자 메트릭이란 독립출판사를 세워 출판까지 결심했다.
그렇게 나온 첫 책이 2023년 5월 펴낸 '맹인의 거울'이었고, 작가는 3년 넘게 소설 쓰기와 독립출판의 길을 걸어왔다.
다만 물리학도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진 않았다.
메트릭(Metric)이란 출판사명 역시 미분 기하학의 개념에서 따왔다.
출판사 홈페이지에는 소개가 이렇게 적혀 있다. "질문하고, 정의한다. 세계가 구성되는 방식을 다시 묻는 출판사."
정 작가는 "어떤 계(界)를 바라보고 관찰자와 대상에 대해 질문하고, 정의하고, 정의를 바탕으로 다시 질문하는 것이 물리학의 특성"이라며 "제 문학의 기저에는 물리학이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지금껏 써두고 발표하지 않은 장편이 네 편이 있다며 "독서 시장 참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삶에 밀착해 현장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작품을 계속 써내고 싶다"고 말했다.
kihu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9월30일 09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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