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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17, 2026

언론이 ‘물’로 보는 자율규제, 더는 안 된다 [저널리즘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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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16일치 신문협회보 1면 머리기사
2022년 2월16일치 신문협회보 1면 머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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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거의 모든 종이신문의 맨 뒷면에는 발행인, 창간일, 매체 등록번호 등이 담긴 판권란이 있다. 정말 세심한 독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렵겠지만, 판권란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신문윤리위는 국내 언론 3단체(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가 설립한 자율심의기구다. 이 3단체가 공동으로 채택한 신문윤리강령을 바탕으로 강령 준수를 서약한 일간지와 주간지, 통신사들의 기사를 심의한다. 현재 282개 매체(온라인신문 포함)가 서약사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한겨레도 서약사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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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은 미디어 전문가뿐만 아니라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법한 저널리즘 규범을 망라하고 있다. 차별과 편견 금지, 사회적 약자 보호, 왜곡 보도 등으로 인한 명예 훼손 금지, 공정 보도, 사실과 의견 구분, 기사와 광고의 구분, 반론권 보장, 선정 보도 금지, 익명 비방 금지….

이 강령이 제정된 게 1957년, 신문윤리위가 설립된 건 1961년의 일이다. 어언 ‘구력’이 70년에 이른다. 이 정도면 한국에 ‘좋은 저널리즘’이 만개해야 마땅할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언론이 이 강령을 잘 지킨다고 믿는 독자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기자들도 취재·보도 과정에서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그 필연적 귀결이 언론 신뢰도의 끝 모를 추락, 그리고 ‘기레기’ 담론의 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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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윤리위는 뭐 했냐고? 물론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매달 수백건의 기사를 심의해 제재를 내린다. 문제는 제재가 솜방망이에 그쳐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신문윤리위는 지난해 1년 동안 서약사들의 지면과 온라인 기사 5048건을 제재했는데, 가장 낮은 수위인 ‘주의’가 5032건(99.7%)을 차지했다. ‘경고’는 16건에 그쳤고, 그 이상의 제재는 1건도 없었다.

신문윤리위 제재에는 ‘주의’ ‘경고’ ‘공개 경고’ ‘정정’ ‘사과’ 등이 있다. 1년 동안 3회 이상 경고를 받으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99.7%를 차지하는 주의는 불이익이 없어 제재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껏 과징금 제재도 전무하다. 12·3 내란 이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중국 간첩 체포설 등을 보도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스카이데일리도 고작 경고를 받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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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언론이 신문윤리위 제재를 ‘물’로 보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문협회도 ‘현타’(현실 자각)를 느꼈던 걸까? 2022년 2월16일 발행된 신문협회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이 ‘신문윤리위 제재 ‘물’로 보지 마라’였다. 제재를 강화할 예정이니 신경을 써달라는 취지의 기사였다. 그러나 그 뒤로도 달라진 건 없다.

언론계는 그동안 정치권이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언론 규제 방안을 내놓을 때마다 자율규제가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국내 최고 권위의 언론 자율심의기구가 이 모양이니 자율규제 주장에 힘이 실릴 리 만무하다.

언론계는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이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뼈대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이자 ‘통합형 언론 자율규제기구’ 설립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새로운 자율심의기구를 꾸려 신문뿐만 아니라 방송, 인터넷 매체 등 언론중재법에 규정된 모든 언론의 보도물을 심의하되 정정, 노출 중단, 사과, 위자료, 제명 등의 조치를 통해 피해 구제와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구상이었다. 포털 제휴 심사 반영 및 정부 광고 배정 연계 등 인센티브 부여 방안도 제안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로 언론중재법 개정이 중단되자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됐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개정 정보통신망법)이라는 강력한 타율규제의 제도화는 자정의 기회를 무책임하게 날려버린 후과다. 새로운 타율규제가 도입됐으니 이제 언론계의 자정 노력은 쓸모없는 일이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사실 일반 독자 처지에서 언론을 불신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상적인 왜곡 보도다. 허위까지는 아니지만 사실 관계와 맥락을 교묘하게 비틀거나 극히 일부 사실만 과장해 여론을 호도하는 식의 보도 행태 말이다. 징벌적 손배는 악의적인 허위조작 보도를 의율할 수 있을 뿐이다. 왜곡 보도는 법이 아니라 저널리즘 윤리의 문제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의 시대에도 미완의 숙제인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가 여전히 긴요한 이유다. 언론이 신뢰의 위기에서 벗어나 사회적 공기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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