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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23, 2026

지식이 모여 대만을 키웠다, 자본이 고여 대만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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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모여 대만을 키웠다, 자본이 고여 대만을 가른다

“TSMC는 xxx입니다.”

TSMC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대만인들에게 물었다.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외교적 무기로서 역할, 누군가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 숫자를 강조했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원흉”이라며 반도체 생태계가 남긴 상흔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인공지능(AI)이 불러온 반도체 사이클은 한국에 엄청난 돈을 벌어다주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이 산업을 더 확대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집중시킬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경제적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누구에게 그 과실이 집중될까. 낙오되는 사람이나 피해 보는 이들은 없을까. 그 답을 찾고자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경향>은 지난 8월23~27일 대만 타이베이, 신주, 가오슝을 찾았다. 들뜸과 불안이 공존하는 이 ‘칩이 삼킨 섬’을 2회에 걸쳐 다룬다.

▶자세한 인터뷰 영상은 QR코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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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북서쪽에 위치한 신주는 면적 14.67㎢로 서울 동대문구만 한 도시이지만 대만 명문대생들이 가장 다니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지난달 이곳에서 만난 양밍자오퉁대 석사과정생 인카이쉬(23)와 칭화대 학생 린자이(23)는 신주에 있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인카이쉬는 “대만에서 가장 큰 기업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만족한다”며 “졸업한 뒤에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린자이 역시 “학교에 지원하려는 친구들이 많다. (신주의 일자리를 구하는 데는) 운이 좀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신주는 1980년 미국 실리콘밸리를 본떠 만든 대만 최초의 과학단지, 클러스터다. 이곳에는 지식·인력·기업이 공간적으로 초밀집해 있다. TSMC 본사는 물론 미디어텍(반도체 설계), GUC(반도체 디자인하우스), 글로벌웨이퍼스(반도체 소재) 등 기업이 반경 3~5㎞ 이내에 모여 있다. 단지에서 일하는 사람은 17만명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설계-제작-후공정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분업 생태계이자, 이 자체로 TSMC를 비롯한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구축한 강력한 진입장벽이기도 하다.

기업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은 ‘지식 확산’에 유리하다는 뜻과 같다. 지식 확산이란 한 기업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다른 곳의 생산성과 혁신을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기술 후발주자 국가들이 많이 택하는 방법이다. 대만에는 신주부터 남부 가오슝으로 이어지는 과학단지가 지식 확산을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은 경기 남부를 관통하는 용인·평택·이천·화성·수원이 대표적 반도체 클러스터다.

‘디지타임스’ 회장 콜리 황

‘디지타임스’ 회장 콜리 황

‘반도체 생태계’로 쏠린 지식·인력·자본
대만 역시 ‘양극화’ 숙제
고학력·고임금 노동자 초밀집
이윤 창출 → 지역 소비로 흘러
집값 상승폭 타이베이의 두 배
3.3㎡당 3867만원까지 오를 때
중위소득 연봉 2360만원 그쳐
전문가 “반도체 호황 지속 땐
대만 지역·공간적 격차 심화”

대만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 회장 콜리 황(黃欽勇)은 1976년 장징궈 행정원장의 지시로 ‘신주’에 과학단지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을 방문할 때 그를 단독 면담하고,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투자금을 대줄 만큼 각별한 사이다. 한마디로 황은 대만 반도체 공급망의 설계자이자 글로벌 빅테크 거물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는 신주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보조금을 쓰더라도 (신주 생태계를 복제하는 것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 발언의 배경엔 한국은 대기업 중심,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한 역사가 있다. 황은 “수원 등 한국의 클러스터는 대기업 중심으로 구축됐다. 대만의 과학단지는 다르다. 다양한 기술과 형태의 기업들, 심지어 매출 40만달러 수준의 아주 작은 기업이라도 특화된 기술이 있다면 생태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신주의 강점은 모든 것을 한 회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 회사가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신주는 기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한국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는 다른 과정을 거쳤다. 현재 추진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산단 부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매입해 직접 조성한다. 대만 정부는 기업들이 과학단지 부지를 임대하게 했다. 황은 “반도체 기업들이 땅을 아예 살 수 없도록 국가가 먼저 땅을 수용한 뒤 ‘임대’만 해줬다”며 “돈을 아낄 수 있게 된 기업들은 인재를 유치하고 기술 투자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클러스터는 1980년대부터 미국의 실리콘밸리 인재를 빨아들였고 지금까지 대만 내 고급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 신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고학력자가 많다. 신주과학단지 관리국 통계를 보면 석박사 비중이 41%로 가장 높고, 학사(33.40%), 고졸(13.20%) 등이 뒤를 잇는다. 산학 협력도 강력하다. 칭화대와 양밍자오퉁대가 신주 내 기업들에 연구·개발(R&D) 인재를 공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용인 클러스터의 인원 구성은 이 점에서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학력 인재가 주축이 된 설계(팹리스) 중심의 신주와 달리 용인은 SK하이닉스 등 제조 공장을 기반으로 한 초거대 생산 라인이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용인은 대규모 양산 공장 특성상 장비를 24시간 가동하고 관리하는 학사 엔지니어와 고졸·전문대졸 생산 기술 인력이 대거 필요하다. 팹리스 중심의 대만과 일자리가 다르다”고 말했다.

고졸 일자리는 나쁘고 석박사 일자리는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핵심은 산업단지 안에서 어떤 지식이 만들어지고, 그 지식이 얼마나 많은 기업과 사람에게 퍼져나가느냐에 있다. 용인에서도 신주만큼 지식 확산이 광범위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TSMC 인근에 위치한 신주 북부 주거중심지 주베이시 모습.   신주 | 양다영·손다현 PD

TSMC 인근에 위치한 신주 북부 주거중심지 주베이시 모습. 신주 | 양다영·손다현 PD

원베일리 천국, 주베이시

신주에 모인 고임금 엔지니어들은 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중 일부는 스타트업·벤처를 창업하며 생태계를 확대했다. 대만경제연구원의 2026년 신주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를 보면, 2025년 10월 기준 신주 지역에 스타트업이 678개 있다. 확장된 클러스터에서는 이윤이 창출됐고, 그 돈은 종사자들에게, 다시 지역 내 소비로 흘러갔다. 대만 행정원 주계총처 자료를 보면 2025년 신주시 가구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160만4000대만달러, 한화로 약 7000만원에 달한다. 이는 대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높은 가처분소득은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신주과학단지 인근 주베이시에는 서울 강남의 원베일리 같은 고급 아파트가 대로변을 끼고 수십㎞에 걸쳐 끝없이 이어진다. 아파트 각층에 정원을 매달아놓은 듯한 최고급 건축 사양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급 아파트들의 가격은 대만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지난 16일 대만 연합신문망에 따르면 주베이시의 신축 대형 아파트가 3.3㎡(1평)당 89만9900대만달러(3867만원)까지 올랐다. 신주시 평균 주택 가격은 2016년 평당 17만3000대만달러(743만원)에서 2025년 36만9000대만달러(1585만원)로 113.3%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수도 타이베이시의 주택 가격 상승폭을 두 배가량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 8월 23일 스튜디오 경향이 방문한 대만 신주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의 외관. 신주 | 양다영·손다현 PD 사진 크게보기

지난 8월 23일 스튜디오 경향이 방문한 대만 신주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의 외관. 신주 | 양다영·손다현 PD

흐르지 않는 돈, 심각해지는 양극화

기자를 타이베이에서 신주 주베이까지 태워준 택시기사 JK는 주베이시의 고급 아파트단지를 보며 말했다. “멋진 곳이지만 내 평생 살 수는 없는 곳이다.” 그가 말한 ‘살 수 없다’는 말을 푸념으로만 듣긴 힘들다. 대만 행정원 주계총처의 통계를 보면 2024년 기준 대만 전체 임금 노동자(개인)의 연간 총급여 중위소득(전체 임금 노동자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위치하는 소득)은 54만6000대만달러(약 2360만 원)에 그쳤다.

기자가 대만을 방문하기 바로 며칠 전,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인공지능(AI) 산업 호황에 힘입어 올해 11%대로 예상되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전 국민에게 분배한다고 밝혔다. 분배금은 1인당 한국 돈으로 44만원 정도다. 라이칭더 총통은 전 국민이 성장의 ‘체감’을 느끼도록 하겠다며 취지를 밝혔지만, 극심한 임금 격차에 시달리는 비IT 업계 종사자들의 불만을 달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중앙연구원 소속 린쭝훙(林宗弘) 박사는 대만의 계급적 양극화, 세대 양극화, 정치·정체성 양극화를 오랫동안 연구한 사회학자다. 최근 그는 TSMC가 만든 격차를 눈여겨보고 있다. TSMC로 대표되는 반도체 직군과 비반도체 직군 간 임금 격차는 숱한 매체에서 이미 다뤄진 바 있다. 린 박사는 여기에 더해 세대 간 격차를 말한다. 그는 “대만에는 1997년부터 2016년 사이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잃어버린 세대’가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는 개인용컴퓨터(PC) 붐이 일으킨 신주 기업들의 화려한 독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일반 제조업에서 대규모 자본 유출이 일어났다.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드는 돈(투자금)이 대거 중국으로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신주의 전자산업은 성장했지만 일반 제조업 노동시장의 자본 유출로 인한 붕괴를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또 한 번 반전이 있었다. 2024년 이후 본격화한 AI 붐이다.

린 박사는 “이제 대만으로 자본의 귀환이 이뤄지고 있다. 더 젊은 세대를 위한 취업 시장은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중년이 된 그 이전 세대는 ‘낀 세대’로 희생된 채 남아 있다. 현재 중년층의 임금 인상률은 젊은 세대보다 낮고 평균임금도 한국 중년층보다 낮다.”고 말했다.

반도체 호황이 앞으로 5년 이상 지속한다고 가정할 때, 향후 20~30년에 걸쳐 벌어질 사회적 문제가 있을지 물었다. 그는 “대만이 두 개의 세계로 나뉘는 문제, 양극화가 지역적·공간적 격차로 직접 반영되는 현상이 훨씬 더 심각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게 물었다. 대만에 TSMC는 무엇이냐고. “대만을 스포츠팀이라고 볼 때 가장 뛰어난 에이스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영향력과 관심이 이 한 선수에게 쏠리면서 딜레마가 발생했습니다. 한 명의 에이스만 지원해야 하는지, 아니면 팀 전체를 육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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