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서 한강 뷰 아파트로…계급횡단의 모순된 욕망 비추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7년 만의 장편소설 '재이'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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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한국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며 100만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 조남주 작가가 신작 장편 소설 '재이'로 돌아왔다.
장편 기준으로는 '사하맨션' 이후 7년 만의 신작이다.
새 소설은 서울의 한 달동네에서 자란 주인공 재이가 한강 뷰 아파트로 삶의 거처를 옮기기까지 계급 횡단의 이야기가 담겼다.
줄거리를 범박하게 요약하자면 '인간극장'에 나올법한 달동네 소녀의 자수성가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신작은 여느 성공담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우선 달동네의 설화적 가난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극 중 재이는 이렇게 딱 잘라 말한다. "그 시절, 사람들은 순수했고 이웃 사이에는 따뜻한 정이 넘쳤다는 말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147쪽)고.
재이에게 달동네란 가파른 오르막과 재래식 화장실로 상징되는 "불편하고 더럽고 피로한 공간"(12쪽)일 뿐이고,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의 일탈과 악다구니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방치되다시피 자란 재이는 달동네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의 노력에 더해 운도 따른다.
재이는 자신을 응원해주는 선생님을 만나 한 재단의 장학금 수혜자가 되고, 장학금은 명문대 입학과 취업의 기회를 열어준다.
코로나 시기엔 남편과 함께 코인과 부동산 투자로 재산을 불리고, 가난의 경험을 주제로 쓴 책이 흥행하면서 '작가'란 타이틀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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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재이는 성공의 과정에서 계급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되레 자신의 애매한 정체성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우범지대에 사는 모범생이다. 상식과 교양이 없는 명문대생이다.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장학생이다. 스펙이 뒤떨어지는 대기업 사원이다. 나는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사고나 행동 체계가 달랐고, 동시에 내 가족은 내가 쓰는 어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난과 복지에 대해 말하는 부자가 되었다."(56쪽)
작가는 재이에게 들러붙은 끈질긴 가난의 흔적에 현미경을 들이민다. 한 인물의 신분 상승과 계급 의식이 얼마나 많은 자책과 자기변명으로 이뤄졌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실제 재이는 쉽게 응원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가족을 떠난 이기적이고 야박한 딸이면서, 가족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살아남은 독립심 강한 인물이고, 타인을 손쉽게 '손절'하면서도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자기방어적 인물이다. 또 가난을 부끄러워하면서, 그 부끄러움마저도 부끄러워하는 모순적 인물이다.
하지만 작가는 재이의 복잡하고 혼란한 감정을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하진 않는다. 재이가 거둔 성공을 축하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다.
다만 오늘날 '신분 상승'이란 말 뒤에 감춰진 인간의 모순된 욕망을 드러내며, 가난과 부끄러움을 더 솔직한 시선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이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다. 차라리 실패담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불안, 우울, 혼란에 대한 이야기다. 덜컹거리는 사다리, 내 몫의 의자가 없는 테이블, 수시로 불리지만 아무도 다정히 부르지 않는 내 이름. 나는 그것들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231쪽)
문학동네. 232쪽.
kihu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9월17일 08시1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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