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이(異)면]코스피 폭락, 정말 ‘미 민주당 탓’인가…AI 인프라에 날아든 청구서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본점 스크린에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8% 이상 하락해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이후 국내 증시가 이틀 연속 폭락했다. 시장은 민주당의 압승으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선거 이전부터 쌓여온 AI 투자 회의론과 반도체에 쏠린 한국 증시의 구조가 충격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거 전부터 쌓인 AI 투자 불안…민주당 승리가 기름 부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상원 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된 후 로이 쿠퍼 민주당 후보가 손을 번쩍 들며 지지자와 함께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스피는 6일 개장 직후 8% 넘게 떨어지며 5000선이 무너졌다. 한국거래소는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해 20분간 거래를 멈췄다. 전날에도 코스피는 5.28% 떨어졌다. 지난 3일(현지시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하락의 조짐은 선거 전부터 있었다. 미국 AI 관련주는 10월부터 약세를 보였다. 코스피도 개표 전날 3.59% 떨어졌다. 오라클의 200억달러 규모 자금 조달 계획 등 빅테크의 AI 투자 재원 부담이 부각된 탓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당시 “빅테크의 잇따른 회사채 발행은 AI 자금 조달 우려를 자극하며 AI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를 약화시켰다”고 진단했다. 투자금이 언제, 얼마나 수익으로 돌아올지에 대한 의구심이 이미 퍼져 있었다는 얘기다.
선거는 이 회의론을 정치적 위험으로 바꿨다. 미국 10개 주에서 진행된 데이터센터 관련 주민투표 41건 가운데 27건에서 개발 제한·중단 안건이 가결됐다. 개발을 지원하는 나머지 13건은 모두 부결됐다. 전체 41건 중 40건에서 데이터센터 개발에 제동을 거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미국에서 계획된 데이터센터 용량의 약 27%가 몰린 텍사스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을 공약한 민주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됐다. 미국 금융사 웰스파고는 미국에 계획된 데이터센터 용량의 27%가 텍사스에 몰려 있다고 본다. 지나 히노호사 텍사스 주지사 당선인은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텍사스 주민을 보호할 법이 생길 때까지 데이터센터와 관련해 진행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 규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시장의 공포는 커졌다. 뉴욕증시에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12.25% 폭락했다. 다만 같은 날 퀄컴의 실적 전망 부진과 함께, 마이크론이 노사 갈등으로 대만 공장 건설 계획을 보류하는 등 개별 기업의 악재도 겹쳤다. 모든 하락을 규제 우려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텍사스 주지사 당선인 지나 히노호사가 5일(현지시간)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AI 투자 흐름 꺾이진 않을 것”
‘민주당이 AI를 막는다’는 해석은 과장이라는 반론도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지난 5일 낸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민주당 의회의 기조가 충돌하는 만큼 단기간에 연방 차원의 AI 규제 입법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대신 의회가 조사·소환·청문회로 빅테크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데이터센터 반대는 민주당만의 의제도 아니다.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도 지난 9월 전력망과 수자원 부담을 점검할 때까지 데이터센터 관련 인허가를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AI 인프라가 쓰는 막대한 전력과 물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가 쟁점이 된 셈이다.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AI리서치센터장은 “중국과의 AI 선두 경쟁을 감안하면 미국의 AI 투자 흐름 자체가 꺾일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산업계가 경계할 변수는 투자 중단보다 ‘일정 지연’과 ‘비용 상승’이다. 율촌은 송전망 확충 비용을 대형 전력 수요자에게 더 물리는 방향의 논의가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인허가와 전력망 연결이 늦어지면 데이터센터 착공과 서버 설치 일정이 밀릴 수 있다. 이는 국내 기업의 AI 반도체와 관련 장비 공급 시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구축이 늦어지면 ESS용 배터리 수요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미 맺은 장기 공급계약이 있는 만큼 곧바로 실적 악화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난 7월30일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항공기에 탑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반도체 쏠림이 키운 충격
충격을 키운 것은 국내 증시의 쏠림 구조다. 5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뺀 코스피200 지수의 하락률은 약 1.9%에 그쳤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만 3조4000억원가량을 팔아치웠다. AI 투자 기대를 반도체 대형주에 몰아 반영해온 만큼 되돌림도 컸다는 해석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규제 불안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네오클라우드 계약 재검토 소식이 더해지면서 매도 압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AI 수요 자체의 둔화보다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과 투자금 회수 불확실성, 자금 조달 위험이 주가에 더 크게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옵션시장의 수급 불균형도 하락 폭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대미투자 기업에는 의회의 감독이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율촌은 대미투자 감독권을 의회로 가져오는 법안이 국방수권법에 실려 통과되면 대미투자에 참여한 국내 기업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고용 실적과 일정 변경 사유까지 자료 제출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AI 투자가 당장 멈추지는 않더라도 속도와 비용 구조는 달라질 수 있다. 국내 반도체·배터리 업계도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선거는 방아쇠였을 뿐, AI 인프라의 비용 청구서는 이미 날아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