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 없는 신군부의 ‘밀실 고문’…법원 “피해자 증명책임 덜어줘야” 위자료 인정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 새겨진 법원 로고. 한수빈 기자
1980년대 신군부의 비상계엄 당시 불법구금 상태로 ‘밀실 고문’을 당했다는 직접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기보다 국가의 책임을 무겁게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3부(재판장 맹준영)는 1980년 신군부의 ‘계엄포고령 10호’로 인한 불법구금 피해자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위자료 6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발령됐던 1980년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던 A씨는 포고령 10호에 의해 영장 없이 체포됐다. A씨는 93일간 불법 구금됐다가, 출소 후에는 대학에서 제적되고 강제 입영됐다.
앞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심의위원회는 2024년 A씨를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보상금 6468만원을 지급했다. A씨는 국가를 상대로 8000만원 상당 손해배상 소송도 냈다.
1심 법원은 A씨가 구금된 기간 중에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주장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위자료 4250만원만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은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 위자료를 6500만원으로 늘렸다. 2심 재판부는 “밀실에서 이뤄진 가혹행위는 불법성 정도가 매우 중대한 반면 당사자 진술 외에 별도로 명확한 물증을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며 “객관적 증거가 다소 부족해도 이를 원고에게 불리하게 적용해 가혹행위 존재를 일괄 배척하는 건 원고에게 불가능한 것의 증명을 강제하거나 지나친 증명 부담을 지우는 결과”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직접 증거가 없어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피해가 인정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가혹행위가 전부 다 인정되기 어렵더라도 종합해 살펴보면 장기간 원고에게 신체적 및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일련의 인권 침해적 행위들이 계속적, 반복적으로 자행됐음을 어렵지 않게 추단할 수 있다”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책무를 정면으로 위배해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를 자행한 것으로, 불법성 정도가 대단히 심각하고 중대할 뿐 아니라 유사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도 매우 강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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