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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8, 2026

“비겁? 그럼 맞서다 망할까?”…조선의 사대주의는 전략이었다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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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 갔다가 조선으로 돌아가는 사신을 전송하는 광경을 묘사한 송조천객귀국시장(送朝天客歸國詩章)의 일부.

명나라에 갔다가 조선으로 돌아가는 사신을 전송하는 광경을 묘사한 송조천객귀국시장(送朝天客歸國詩章)의 일부.

조선의 사대를 굴종으로만 이해해온 오랜 통념을 해체하는 책이 출간됐다. 신간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이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섬겨야 했던 비운의 역사, 조공책봉에 따른 굴욕의 시간으로만 사대를 이해하지 않고, 조선이 ‘사대의 질서’를 능숙하게 활용해 자신들의 삶을 도모했다고 해석하는 책이다. 제국으로서의 명(明)의 이념을 수용하되, 그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자신들의 위치를 ‘협상’했다는 시선이 담긴 책. 이유는 뭘까.

건국 초기, 조선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명의 국력은 조선을 압도했다. 대충 추산해도 명은 조선보다 모든 면에서 20배의 국력이었다. 거대한 이웃을 자력으로 맞선다는 것은 현실적 선택지가 아니었다. ‘표전문 사건’은 조선이 처한 위태로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명 태조 홍무제는 조선이 보낸 외교 서한을 두고 “겉보기에는 예의에 맞는 것 같지만 부주의, 경솔함, 무례, 모욕이 뒤섞였다”고 대로하며 문서 작성자를 압송하라고 요구했다. 신생 왕조 조선을 신뢰하지 않았던 홍무제에게 조선은 질서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화(華)의 타자’였다.

외교문서의 문구 하나하나가 양국 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들 만큼 힘의 격차는 컸다. 이런 시대에 조선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당대 ‘조선의 과제’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명나라의 잠재적인 영토 회복 야망을 물리쳐야 했다. 보편적 권위의 상징에 대한 제국의 질투 어린 독점을 해소하고, 공동의 국경을 둘러싼 갈등은 피하고, 경제적 정치적 접근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쉽게 말해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왕권을 보존하고 명의 주장을 제한하는 포용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도발적인 주장, 책의 제목에도 나오는 ‘역설’이 시작된다.

책에 따르면 조선은 명의 질서가 사용하는 언어와 방식을 능숙하게 구사함으로써 그 안에서 자신들 운신의 폭을 넓힐 여지를 만들어냈다. 세조와 여진을 둘러싼 사건은 그 역설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조선 북방 세력의 균형은 흔들렸다. 김종서의 후임자였던 이징옥은 여진의 지원을 받아 세조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반란이 진압돼도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세조는 여진의 충샨이란 자에게 조선 관직을 내려 그들을 회유하려 했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진다. 1459년 명이 사신 진가유를 보내 세조를 문책한 것.

왜 그랬을까. 충샨 역시 명을 섬기는 신하이므로 세조의 관직 하사는 명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세조는 그 자리에서 황제의 질책에 순응하는 유순한 봉신(封臣)의 모습을 보인다. 명의 사서는 세조가 “겁먹은 채로, 잘못을 기꺼이 인정했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문책 이후의 행보였다. 겉으론 황제의 체면을 세워줬지만 조선은 북방 정책을 쉽게 바꾸지 않않았다는 것. 충성스러운 제후로서 복종의 언행으로 납작 엎드렸으되, 자신들이 움직일 공간을 남겨둠으로써 스스로의 정치 현실을 만들어냈다. 이때 “세조의 사대는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며, 이 선택은 조선에 가장 유용한 전략이었다고 저자는 본다.

병자호란에서 패배한 조선 인조는 1637년 1월30일(음력) 청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례(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굴욕적 강화협정을 맺는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병자호란에서 패배한 조선 인조는 1637년 1월30일(음력) 청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례(삼궤구고두례)를 행하고 굴욕적 강화협정을 맺는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

조선이 행한 사대의 언어는 문서와 의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저자는 조선과 명이 주고받은 시(詩)에 주목한다. 당시 시작(詩作)은 외교와 불가분의 관계였다. 조선은 시문에서 쌍방 간 서열을 확실히 했고 조선이 질서 내에서 자신들이 차지할 자리를 확보하려 했다. ‘황화집(皇華集)’이 그 증거물이다.

1449년 처음 1권이 나온 뒤 1633년까지 무려 200여 년간 25차례, 총 50권이 출간된 황화집은 그저 양국 고관대작들이 풍월을 읊은 책이 아니었다. 명 사신이 우월감을 만끽하는 시를 읊으면 조선 관료는 이에 대한 화답시를 올렸고, 이 시문은 금속활자로 수십 부를 빠르게 인쇄해 명에 선물용으로 바쳐졌다. 황화집은 조선 조정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전략이었다. 명 황실에 대한 조선의 충성과 복종을 재확인해주면서(수직적 통합), 동일한 문자로 소통하는 양국의 문화적 전통을 연결했다(수평적 통합). 이로써 “우리는 황제를 인정하며, 황제의 질서 내에서 정당한 자리를 확보한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화집은 알아서 꼬리를 흔드는 아첨의 기록이 아니게 된다.

이 책이 “우리에겐 사대는 필요하다”며 사대의 정신을 복권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조선의 사대는 굴종의 동의어가 아니었고, 사대의 반대말이 자주도 아니었음을 책은 주장한다. 사대의 반의어를 ‘자주’로 보는 건 단순하다고, 역사적 실상을 지나치게 이분법으로 봐선 안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을 덮으면 김훈 소설 ‘남한산성’을 재독하게 된다. 명대와 청대가 다르지만 최명길의 말은 조선의 현실을 움켜쥔다. “창의를 불러 모은다고 꼭 화친의 말길을 끊어야 하는 것이겠사옵니까. 군신이 함께 피를 흘리더라도 적게 흘리는 편이 이로울 터인데, 의를 세운다고 이(利)를 버려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외교란 고개를 숙이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무엇이 지켜졌는가로 평가받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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