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더 내고, 이름 바꾸고’…성난 데이터센터 민심에 빅테크 백기 들까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스파크스의 타호·리노 산업단지에 있는 구글 ‘스토리 카운티 캠퍼스’ 데이터센터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미국에서 지역사회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력망 확충 비용을 직접 부담하고 세제 혜택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주민 지원과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시설 명칭까지 바꾸고 나섰다. 막대한 투자와 고용 효과만으로는 주민을 설득하기 어려워지면서 지역사회의 수용성이 AI 인프라의 투자 비용과 입지를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가장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은 곳은 오픈AI다. 오픈AI는 지난 5일(현지시간) ‘전국 지역사회 협약’과 ‘컴퓨트 캠퍼스 정책 청사진’을 발표했다. 직접 소유·운영하는 데이터센터마다 주민과 협약을 맺고 전력·용수 사용량과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한편, 전력망 확충 비용도 직접 부담하기로 했다. 사업이 중단돼도 다른 전력 이용자에게 비용이 전가되지 않도록 보증하고, 약속을 어기면 세제 혜택을 환수할 수 있도록 입법도 제안했다.
데이터센터 명칭도 ‘AI 컴퓨트 캠퍼스’로 바꿨다. 서버 시설이라는 인상을 줄이고 에너지 기반시설과 숙련 일자리에 대한 장기 투자로 부각하려는 전략이다.
세제 혜택 반납하고, 환경단체 설득
지난 7월 18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버그에서 시민들이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전국 동시다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늘리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디나 파월 매코믹 메타 사장은 4일 “주민들이 데이터센터를 비용이 아니라 혜택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타는 데이터센터 세수로 교사 보너스를 지급한 루이지애나주 사례를 소개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교사·소방관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구글도 지난달 미네소타주에서 최대 8000만달러의 재산세 감면 요청을 철회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9월 위스콘신주에서 연간 최대 500만달러의 개발 지원금을 포기했다.
빅테크들은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해 온 환경단체를 설득에도 나섰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 등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구글은 시에라클럽·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 등 환경단체와 전국 단위의 데이터센터 개발 기준을 논의 중이다. 전기요금·물 사용에 따른 주민 부담을 줄이고 사업 결정 과정에 주민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지방정부와의 ‘밀실 합의’ 관행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오라클은 지난 2일 앞으로 주·지방정부에 데이터센터 사업 관련 비밀유지계약을 요구하지 않겠다 밝혔다. 그동안 기업들이 사업 초기 시설 규모와 지원 조건 등을 공개하지 않아 주민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을 의식한 조치다.
경제 활성화만으론 설득 한계…인허가 변수 된 주민 여론
5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 도심의 주의사당 건물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잇따른 양보안은 대규모 투자와 고용 효과만으로는 주민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전력망 확충 비용의 전기요금 전가와 냉각수 사용에 따른 물 부족 우려에 비해 완공 후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주민 반발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데이터센터 입지 자체를 바꾸는 방안도 거론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중간선거 다음 날 직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데이터센터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이해한다면서 사막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오픈AI 경영진은 내년 데이터센터 확충 계획을 수정할지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메타와 앤트로픽 등도 미국 내 규제 강화에 대비해 해외 데이터센터 건설이나 기존 시설 확장을 검토하고 있다. 주민 설득을 위한 비용 부담을 넘어 데이터센터의 입지 전략까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데이터센터 반대 여론이 인허가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주요 건설 거점인 텍사스·조지아·오하이오주에서는 개발 제한을 공약한 민주당 주지사가 당선됐다. 지나 이노호사 텍사스 주지사 당선인은 5일 CNN에 “주민 보호 장치를 마련할 때까지 데이터센터 사업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저명한 테크 투자자 브래드 거스트너는 내년 미국에서 계획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최대 35%가 차질을 빚을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도 2028년 미국 데이터센터 신규 용량의 약 30%가 건설 지연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규제 강화가 건설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BMI는 이날 보고서에서 “건설 제한이 확대되면 빅테크의 설비투자가 줄어들 수 있지만, 자체 전력 확보 의무나 세금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제가 강화되면 오히려 투자비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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