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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1, 2026

왕이 아니라 상처 입은 난민…영웅신화 뒤집은 국립극단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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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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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이 그리스 고전 비극을 통해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본성을 묻는 ‘안트로폴리스’ 5부작의 완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독일 현대연극의 거장 쉼멜페니히의 시선으로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지난해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와 2부 ‘라이오스’를 선보인 데 이어 3부 ‘오이디푸스’(18일까지)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렸다.

‘오이디푸스’의 특징은 텅 빈 무대다. 1·2부의 화려한 장식은 사라지고 텅 빈 공간만 남았다. 5부작 전체 무대 미술을 맡은 임일진은 강량원 연출의 의도에 따라 미니멀리즘으로 황야와 같은 공간을 구현했다. 비어있는 무대는 오이디푸스의 몸을 부각한다. 작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아오카스테와 결혼하는 가혹한 운명, 진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목숨을 끊고 오이디푸스는 제 눈을 찌르는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따른다.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하지만 테베 왕인 오이디푸스에겐 왕관도, 역병의 도시 테베를 구원하는 영웅의 면모도 없다. 발을 절룩이며 낡은 넝마만 걸친 채 폐품 운반 수레를 끌고 등장한 오이디푸스는 영락없는 거지꼴이다. 120분 동안 흉한 몰골로 무대를 서성이며 과장된 대사를 던지고, 동물처럼 웅크린 채 울부짖는다. 신탁의 저주를 피해 고향을 떠났지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난민이며, 부모 콤플렉스와 장애 등 이 세상 모든 취약성을 한몸에 떠안은 ‘소수자’로 설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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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신화를 철저히 전복해 끝없는 편견과 차별을 견뎌온 오이디푸스가 역설적으로 자신 안의 결핍과 취약성 덕분에 타인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존재로 그려낸다. 스스로 눈을 찌르는 행위도 의미가 달라진다. 원작에서의 자기 처벌과 과거에 대한 참회의 의미를 벗어나, 눈앞에 닥친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 시선을 차단하고 사유를 확장할 기회를 발견하는 ‘기쁨의 행위’로 해석한다. 원작에서 사건의 목격자인 테베의 장로와 시민 대표인 합창대도 독수리, 염소, 개, 금강석 등 비인간으로 바꿨다. 고대 그리스의 도덕과 가치관을 대변하던 이들을 짐승의 몸짓으로 인간의 행적을 기록하고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주체로 세운 것이다.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강량원 연출은 지난 30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무대 장식도, 소품도 다 없애고 수치와 상처로 가득 찬 사람의 몸을 무대에 세워 그런 경험을 한 사람만이 다른 이의 고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비인간을 주체로 세운 것에 대해선 “‘당면한 재난을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고대 그리스는 현명하고 완전한 인간이 그 대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런 인간 중심주의가 오히려 재난을 초래한다고 생각한다”며 “인간 밖으로 밀려난 비인간의 관점으로 그것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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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은 4부 ‘이오카스테’(10월28일~11월21일), 5부 ‘안티고네/에필로그’(12월2~26일)로 이어진다. 4부에선 죽음을 맞은 이오카스테를 살려내 왕권을 둘러싼 두 아들의 전쟁을 막으려는 중재자로 만든다. 아무 선택권 없이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며 혼란과 불안을 겪은 이오카스테는 과거 자신에겐 선택권이 없었지만 지금은 평화를 선택할 수 있다며 타협과 공존을 호소한다. 서지혜 연출은 “죽은 이오카스테를 다시 살려내 전쟁의 비극을 반복하는 인간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문명에 대해 질문하는 인물로 등장시켰다”며 “피와 폭력에서 발생한 문명의 역사는 그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동시대에도 반복된다는 강력한 경고로 생각해 낯익은 장면으로 치환했다”고 밝혔다. 되풀이하는 전쟁의 참상과 인간 욕망의 본질에 대한 경고를 담기 위해 테베 성문 전투에 순항 미사일과 저격수, 유엔, 종군기자 등 현대전을 연상하는 요소를 배치한다.

‘이오카스테’ 홍보 사진. 국립극단 제공
‘이오카스테’ 홍보 사진. 국립극단 제공

5부작의 결말인 ‘에필로그/안티고네’에선 개인의 도덕과 양심이 국가권력과 충돌하는 문제를 다룬다. 정영두 연출은 “‘안티고네’에선 나의 신념과 다른 사람의 신념이 부딪힐 때 그것을 푸는 인간의 지혜는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며 “대한민국의 보편 상황, 인간을 대하는 기본자세를 다룰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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