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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September 24, 2026

바나나향이 난다는데…일본 ‘정부미 사케’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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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 주류 매장에 정부 비축미로 만든 일본술(가운데 숫자 ‘35’가 적힌 술)이 진열돼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일본 한 주류 매장에 정부 비축미로 만든 일본술(가운데 숫자 ‘35’가 적힌 술)이 진열돼 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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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비축미로 만든 니혼슈(사케)는 저도 처음 본 것 같아요.”

지난 16일 일본 도쿄 주류전문점 한 직원은 니혼슈 ‘겐큐조조 35 비치쿠마이’(연구양조 비축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매장에 진열된 이 술 앞에는 군마현 양조업체인 쓰치다주조가 “5년 전 (정부가 수매했던) ‘옛날옛날옛날옛날 쌀’을 재료로 술을 만든다는 건 절망적 조건”이라면서도 “100% 비축미를 썼지만 쌀이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해 바나나 혹은 멜론맛 처럼 고급 니혼슈에서 느낄 수 있는 풍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사케’는 모든 술을 두루 일컫는 말이고, 쌀·누룩·물을 주재료로 만든 맑은 술은 대개 ‘니혼슈’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추석 같은 명절 때 음복용 청주 계열 술을 흔히 ‘정종’으로 부르는데, 이 역시 유명한 니혼슈 제품의 하나인 ‘마사무네’(정종·正宗)가 한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보통명사처럼 굳어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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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겐큐조조 35’는 심각한 흉작이나 쌀 공급 부족에 대비해 정부가 평소 묵혀 놓는 비축미(한국의 정부미)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쌀값이 급등하는 ‘쌀 파동’ 대책으로 비축미를 대규모 방출했는데, 이후 돌연 가격이 크게 떨어지자 골칫거리가 된 비축미를 양조업체들이 이례적으로 니혼슈 원료로 썼다.

쓰치다주조는 당시 정부가 제시한 최소 쌀 판매량인 10t을 구입한 뒤 우선 700㎏ 정도로 연구·판매를 겸하는 술을 만들었다. 이 양조업체는 “식감이 좋지 않고 (술 만들기에) 다루기 어렵다고 알려진 ‘묵은 쌀’로 높은 품질의 술을 만들고 싶었다”며 “술 빚기 전용 쌀이 아니어도, 쌀을 많이 깎아내지 않아도 높은 품질의 니혼슈를 빚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술에서는 품질 좋은 니혼슈에서 나는 과일향과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가장 좋은 등급의 니혼슈가 원재료인 쌀을 50% 이상 깎아내 맛을 극대화하는 반면 ‘겐큐조조 35’는 10% 밖에 깎아내지 않고 술을 만들었다. 그래도 텁텁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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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군마현 마키노주조에서 5년된 비축미로 만든 니혼슈 ‘오사카즈키 고고고고고마이 2020년 비축미’(大盃 古古古古古米 令和2年産備蓄米)라는 이름의 술을 내놨다. 업체는 “쌀을 쪄 고두밥을 만들 때 초 단위까지 수분을 관리해 오히려 오래 숙성된 쌀이 가진 감칠맛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며 “이 정도면 자신 있게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말 그대로 ‘기술의 결정체’”라고 자평했다. 니가타현 미네노하쿠바이주조 역시 정부 비축미 한정판 니혼슈를 ‘미네노하쿠바이 준마이슈 2020년산 정부 비축미 100%’라는 긴 이름으로 시중에 내놨다. 업체 쪽은 “비싼 쌀을 쓰는 것만이 술 빚기의 전부가 아니”라며 “잠들어 있는 쌀에 새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우리 양조장의 사명 중 하나”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니혼슈 재료로 묵은 쌀을 활용하려는 노력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 산하 주류 전문 연구기관인 ‘주류종합연구소’는 지난해 방출된 비축미로 연구용 니혼슈를 만들어 일반인 시음 비교까지 진행했다. 연구소 쪽은 ‘정부 비축미의 주조 특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비축미 아닌 쌀과 견줘) 칼륨 함량이 다소 높았지만 다른 특성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며 “발효가 다소 활발한 경향이 있었지만 완성된 술에서 낡은 쌀 냄새에 대한 지적은 없었으며 술의 품질에도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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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에 칼륨 함량이 높으면 효모의 증식이 과도해져 ‘감칠맛이 적고 밋밋한 술’이 되기 쉬운데 제조 능력으로 충분히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주조업계 관련 컨설팅회사 ‘쿠라쿠’는 “(원재료의) 기술적 과제는 해결됐다 해도 양조업체가 브랜드로서 ‘품질 보증’과 술에 어떤 ‘스토리’를 부여할지가 비축미 술 보급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실험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비축미 니혼슈’가 흔히 일반 음식점에서 판매되거나, 명절·제사 때 음복용으로 쓰일 만큼 당장 보편화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본에도 한국의 추석 같은 명절 때 신에게 바친 술을 참가자들이 나눠마시는 ‘오미키’라는 문화도 있다. 하지만 청주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 가성비 좋은 술이 많은 데다, 아직 실험적으로 만들어져 대량 생산도 이뤄지지 않았다. 또 현재 시중에 등장한 ‘비축미 니혼슈’들은 가격 경쟁력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주류 매장에 등장한 ‘비축미 니혼슈’ 값은 720㎖ 짜리 한 병당 1400∼2000엔(1만2000~1만8000원) 수준이다. 술빚기 전용 쌀로 쓰면서도 가성비를 높인 다른 일반 니혼슈와 견줘 특별히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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